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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Sep 21. 2023

#10 마주하기

소설 연재


제105호 빈소에서 발인제가 끝나고 유가족들은 남은 발인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발인’은 발인제를 한 후 시신이 들어있는 관인 ‘영구’를 장의차에 싣고 화장시설을 거쳐 장지까지 가는 과정을 뜻한다. ‘장지’는 원래 시체를 묻는 땅을 의미하지만, 유골함을 안치하는 봉안시설까지 아울러 말하기도 한다.


재인은 마지막으로 안치실에서 영구를 점검하며 결관이 잘 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빈소로 이동해서 영정사진을 들 1명, 운구할 6명을 확인하고 안내를 시작한다.


“영정사진을 모신 분은 제일 앞으로 나오세요. 그리고 상주님과 가족분들은 그 뒤두 줄로 서서 천천히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출상하겠습니다.”


장례식장 복도에서 운구 차량이 있는 까지 사람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멈춰 선 곳에서 재인은 상주와 운구할 사람들 따로 옆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인이 들어 있는 관이 보인다. 재인은 관보 앞쪽을 살짝 손으로 들어 올리 말한다.


“상주님, 여기 오셔서 고인 성함 확인해 주세요. 맞으신가요?”


상주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재인은 다시 관보를 단정히 덮으며 말한다.


“운구하실 분들은 여기 양쪽으로 세 분씩 서주세요. 아래 보시면 결관된 끈이 보이실 거예요. 그 끈을 손등이 관 쪽, 그리고 손바닥이 본인의 몸 쪽을 향하도록 해서 잡아주세요. 자, 그럼 천천히 관을 들어주시고 운구할 차량까지 이동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하면 들어주세요. 하나, 둘, 셋. 천천히 조심해서 나오세요.”


운구용 리무진의 트렁크가 열리고 고인을 실은 관이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간다. 트렁크 문이 닫히고 재인은 다시 안내한다.


“상주님과 자부님은 리무진에 타주세요. 그리고 나머지 가족분들과 조문객 여러분은 뒤에 준비된 큰 버스에 올라타주시면 됩니다”


사람들이 모두 차량에 올라타는 것을 확인한 후 재인도 버스에 올라탄다. 이동하는 도로 위에는 먼저 출발한 리무진과 그 뒤를 따라가는 버스가 함께 보인다.



***



화장시설에 도착한 재인은 접수처로 가서 미리 예약한 내용을 확인한다. 다행히 일찍 도착해서 시간에 맞춰 화장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그녀는 배정된 화장로 번호를 확인하고 유가족들을 관망실로 안내한다. 관망실은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체를 화장하는 가마인 ‘화장로’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유가족들이 관망실에 앉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창문의 커튼이 걷힌다. 창문 안쪽으로 보이는 화장위쪽에는 ‘준비 중’이라는 노란색 안내 글자가 보이고, 10분 뒤 ‘화장 중’이라는 빨간색 글자로 바뀐다. 그리고 재인은 관망실 맞은편 대기실 이동한다.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관망실 쪽에서 흐느끼거나 통곡하는 소리가 들린다. 화장시간은 고인의 풍채나 관의 재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2시간 안쪽으로 소요된다. 그 시간 동안 유족들의 울음소리는 크게 들리다가 다시 작게 들리고 또 잠시 잠잠해지다가 다시 들린다.


화장이 끝날 때쯤 재인은 다시 관망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창문 커튼이 닫히 유가족들을 수골실로 안내한다. 수골실 안쪽에서 화장이 끝난 유골눈으로 확인시켜 준다. 주검을 태우고 남은 뼛조각들이 보인다. 유가족들은 흐느끼며 눈물샘이 고장 난 듯 눈물을 흘린다. 이내 수골 담당자는 분골작업을 위해 다시 유골을 가지고 들어간다. 분골은 유골을 작은 입자의 가루로 만드는 작업이다.


재인은 처음 유골 본 날 떠오른다. 외할머니의 유골이었다. 생경한 기분었다. 사실 장례를 처음 치르게 되면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다 어색하고 힘겹다. 그리고 재인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장례절차는 유가족들에게 아픈 과정을 계속 반복시키는 걸까.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왜 자꾸만 이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것일까. 왜 이 세상에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도록 하는 걸까. 빈소 정중앙에 영정사진을 놓아두는 것. 입관하면서 시신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하는 것. 시신을 화장하는 동안 관망실에서 지켜보도록 하는 것. 다 타고 남은 뼛조각을 다시 마주하게 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줌이 된 뼛가루를 또다시 눈으로 확인시키는 것. 왜 이렇게 모든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걸까.’


하지만 이제 재인은 알고 있다. 이 고통스러운 과정은 고인과 제대로 이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은 살아 있는 대로 그대로 계속 굴러가야 한다. 고인과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힘들어도 인정해야 한다.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고인을 건강하게 애도하고 그리워하기 위해서 이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고인이 없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장례는 유가족들의 삶에서 고인을 없애는 절차가 아니다. 오히려 고인과 지금 자신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고 본인의 삶을 이어나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재인은 매번 새로 만나는 유가족을 위해 마음으로 응원다. 그리고 그들이 이 과정을 한 단계씩 차근차근 잘 밟아나가도록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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