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관실에 80대 남성인 고인이 보인다. 재인은 입관을 진행하기 전 메이크업 용품을 혼자 준비하고 있다. 오른쪽에 놓인 트레이에는 각종 화장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면도기, 컨실러, 파운데이션 등이 순서대로 보인다. 재인은 우선 면도기를 집어든다. 고인의 얼굴에 있는 잔털을 정리하며 초임 시절 안미영 팀장에게 메이크업 방법을 배우던 때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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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관실에 60대로 보이는 여성인 고인이 누워있다. 그 옆에는 미영과 재인이 서있다. 미영은 손에 면도기를 든 채 재인에게 말했다.
“가족들이 기억하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우리가 만드는 거니까 신경 많이 써야 해요. 깨끗하고 단정한 얼굴을 마주하면 가족들도 무거운 마음을 조금 덜 수 있을 거예요. 기본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피부 모공이 다 닫히고 근육이 풀려요. 그래서 고인 메이크업은 살아 있는 사람 얼굴에 화장하는 것과 방식이나 순서가 조금 달라요… 어쨌든 핵심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거예요.”
미영은 계속해서 고인 얼굴의 잔털을 정리하며 말했다.
“고인이 여성분일지라도 얼굴 전체에 면도를 해주는 게 좋아요. 자세히 보면 사람 얼굴에는 잔털이 많은데 죽은 사람의 경우 그걸 정리하지 않으면 화장이 더 떠 보이거든요. 인중이나 코털 먼저 정리하고, 그다음 눈썹 주변과 얼굴 전체 잔털을 면도해 줘요.”
이어서 탈지면에 물을 묻힌 후 고인의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그러고 나서 얼굴은 젖은 탈지면으로 닦아줘야 하는데, 손에 힘을 조금 강하게 줘서 문질러 닦아내야 해요. 얼굴에 정리되지 않은 때나 먼지들이 묻어있을 수 있어요.”
미영은 재인에게 컨실러를 건넸다.
“이제 메이크업을 하기 전 단계는 다 끝났어요. 컨실러부터는 재인씨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한 번 해봐요. 내가 옆에서 봐줄게요.”
재인은 컨실러를 받아 들고 고인의 얼굴 전체에 펴 발랐다. 미영은 재인의 손을 보면서 말을 잇는다.
“꼼꼼히 잘하네요. 특히 얼굴에 검버섯이랑 심한 흉터는 조금 더 신경 써서 두껍게 발라도 좋아요. 피부색이랑 맞게만 바르면 큰 문제없어요.”
미영은 재인에게 컨실러를 돌려받고, 다시 파운데이션을 건네준다. 재인은 파운데이션 뚜껑을 열고 스펀지를 고인의 얼굴에 두드렸다. 그리고 미영은 다시 말했다.
“파운데이션도 컨실러 색상이랑 맞추면 돼요. 마지막에 이마, 볼, 코 그리고 턱 부분에는 전체적으로 핑크빛이 도는 파우더를 살짝 얹어주면 좋아요. 그렇게 하면 살아 있는 사람 얼굴에 약간 혈색이 도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거든요. 이제 나머지는 내가 특별히 말하지 않을 테니까 재인씨 스스로 해봐요.”
재인은 아이쉐도우를 들고 고인의 눈두덩이에 브라운색으로 넓게 바른다. 속쌍꺼풀은 손가락으로 살짝 잡아 올려 아래쪽에 아이라이너를 그린다. 그리고 이어서 마스카라를 드는데 미영이 말했다.
“마스카라는 속눈썹이 많은 경우에만 하면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화장하다가 오히려 주변이 검게 묻을 수 있으니까 생략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재인은 간단히 대답한 후 마스카라를 내려놓고 아이브로우를 꺼내 눈썹을 그렸다. 자연스럽게 그리기 위해 연한 갈색을 선택해서 얼굴형에 맞도록 얇게 그렸다. 마지막으로 립스틱을 집어 들었다. 연분홍색의 립스틱 붓이 고인의 입술 위에 살포시 닿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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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은 항상 고인의 얼굴에 메이크업을 할 때마다 미영에게 배웠던 그 시간을 떠올린다. 이제 재인의 눈앞에는 메이크업이 끝난 80대 남성 고인의 모습이 보인다. 재인은 사용한 화장품들을 다시 보관함에 하나씩 정리해 넣고 마지막으로 뚜껑을 닫는다.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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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타닥!
교대근무가 비번인 날 오후, 재인의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시원한 커피 잔이 놓여있다. 그 앞에 앉은 재인은 키보드를 치는 중이다. 화면에는 작성 중인 문서파일이 비친다.
서비스 명칭: 사망 프로필
서비스 내용: 죽기 3일 전 사망 예정 날짜 안내
서비스 방식: 이메일로 안내
서비스 가입: 본인인증절차 진행 및 증명사진 제출
서비스 비용: 매월 5,000원
서비스 해지: 언제든지 가능
자유게시판: 이용제한 없음. 비밀글 작성 가능.
* 미성년자 가입 불가
재인은 팔짱을 끼고 노트북 화면을 보며 곰곰이 생각한다.
‘이 정도 기준만 설정하면 괜찮을 거 같은데… 죽는 날짜를 너무 일찍 알면 두려울 것 같고… 인생 전체 계획이 크게 뒤틀릴 수 있으니까… 3일 전쯤 알려주는 게 좋겠다… 그럼 죽기 전에 미리 가족이나 지인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기에 충분하겠지… 또… 내 정체가 드러나는 건 조심스러우니까 안내는 이메일로 하고…’
그녀는 팔짱을 풀고 오른쪽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면서 다시 생각을 이어간다.
‘죽는 날짜도 개인정보에 해당하니까 당사자만 안내받도록 본인인증절차를 거치게 하고… 또… 내가 이용자 얼굴을 봐야 머리 위숫자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증명사진을 제출하게 하고… 흠… 진짜 필요한 사람들만 가입하도록 하려면 비용으로 어느 정도 진입장벽을 만들어야 하는데… 매월 5,000원이면 나름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지…’
이내 커피 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신 후 책상에 내려놓는다.
‘그럼, 나는 이용자가 가입할 때마다 엑셀 파일로 사망 예정 일자를 정리하고… 가까운 날짜부터 오름차순으로 정렬해 놓으면… 해당 날짜에 맞춰서 이메일을 전송하면 되겠다…’
재인은 드디어 생각을 마친다. 그리고 노트북 마우스를 움직여 서비스 홈페이지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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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프로필” 홈페이지를 개설한 지 5일 뒤, 퇴근하고 있는재인의 폰에 진동 알림이 울린다. 드디어 첫 이용자가 가입했다. 알림 메시지를 누르고 서비스 화면으로 들어가자 팝업창이 뜬다.
‘이정한, 1983년생, 증명사진’
팝업창을 눌러 화면을 이동한다. 그리고 사진 속에 보이는 머리 위 숫자를 확인한다.550812.속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