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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Sep 22. 2023

#12 청소

소설 연재


안치실에서 재인, 미영, 민석, 태진이 모두 마스크와 방역복을 착용하고 있다. 시신을 보관하는 안치기를 비롯해 안치실 전체를 청소하는 날이다. 장례식장은 환경미화원이 매일 청소하지만 안치실만큼은 장례지도사 담당이다. 물론 주기적으로 외부에서 특수청소업체가 소독처리를 하러 오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민석은 투명테이프를 들고 나머지 세 명의 손목을 감싸는 작업을 한다. 손목과 방역복 사이 틈으로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방역복을 조아맨 후 고정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모두 팔꿈치까지 오는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마지막으로 방역복의 모자까지 덮어쓴다.


미영은 큰 플라스틱 통에 물 조금 담고 세제를 충분히 푼다. 태진은 수건 여러 장을, 재인은 부드러운 수세미를 그 옆에 가져다 놓는다. 민석은 비어있는 안치기 문을 하나씩 연다. 퀴퀴한 냄새가 새어 나온다.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안치기 문들은 굳게 닫혀 있다.


미영과 민석, 태진과 재인이 한 팀을 이뤄 안치기 내부를 청소하기 시작한다. 미영이 청소기를 들고 안쪽부터 바깥쪽까지 한번 깨끗하게 빨아들인다. 민석은 그 안으로 몸을 구부리고 들어간다. 불편한 자세로 세제를 묻힌 수세미를 사용해 벽면을 깨끗이 문지른다. 그리고 그 위를 다시 마른 수건으로 닦아낸다. 민석의 이마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바깥쪽으로 점차 나오면서 부분 부분 같은 작업을 계속 반복한다.


그동안 미영은 안치기 문쪽을 같은 방식으로 작업한다. 바로 옆 칸 안치기에서는 태진과 재인이 역할을 분담해 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항균 스프레이 작업을 한 후 문을 잠깐 열어 환기를 시킨다.


다음으로 미영은 청소기를 콘센트에 꽂고 바닥 먼지를 빨아들인다. 민석과 재인은 사용한 수건과 청소용품을 세척하고, 태진은 탁자 위를 수건으로 닦는다. 정리가 끝나자 모두 방역복과 마스크를 벗고 깨끗하게 손을 씻은 후 손소독제를 바른다.


넷은 안치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이동한다. 미영과 민석은 자리에 가서 앉는다. 태진과 재인은 가방을 챙겨 사무실 문을 열고 나서며 인사한다.


“퇴근해 보겠습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태진과 재인은 문 밖에 나와 서로 한 번 더 인사한다.

“재인씨, 조심히 들어가요. 나는 차를 가지고 와서.”

“네, 팀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재인이 빠져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었다. 여름이라 어둡지는 않다. 재인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켜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



재인은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큰소리로 인사한다.


“다녀왔습니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빠가 고개를 돌린다.


“고생했다. 이제 날이 좀 덥지?”

“와, 아빠 오늘 나 진짜 힘들었잖아.”

“허허, 그랬어?”

“어, 오늘 안치실 청소하는 날이었어.”


주방에 있던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고야, 오늘 고생했네. 어서 들어와. 오늘 아빠도 일찍 퇴근하셨어. 같이 저녁 먹자.”

“네, 엄마 근데 저 샤워만 얼른 빨리하고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그래, 천천히 씻고 나와. 오늘 저녁 갈비찜이다.”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며 담소를 나눈다.


“와, 엄마 갈비찜 엄청 맛있어요.”

“다행이네, 많이 먹어.”


“아빠, 오늘은 웬일로 일찍 퇴근하셨어요?”

“오늘 외부 일정이 있었는데, 그게 좀 일찍 끝나서 곧바로 집에 왔지.”

“아빠 오늘 농땡이 치셨네?”

“하하, 우리 딸 말 참 이쁘게 해.”


재인과 아빠의 대화를 듣던 엄마는 한 마디 한다.


“당신은 그냥 넘어가요. 어차피 딸한테 이기지도 못할 거.”

“엄마는 또 말씀을 왜 그렇게 하신대. 내가 뭘 어쨌다고. 헤헤.”


식탁 위 큰 접시에 갈비찜 뼈대가 하나씩 쌓이기 시작한다. 아빠는 그 위에 뼈대 하나를 더 얹으며 말한다.


“재인아, 너 요즘 만나는 사람 있냐?”

“왜? 아빠 딸 시집 못 갈까 봐 걱정돼요?”

“당연히 걱정되지. 내 딸이지만 니 성격이 좀 좋냐?”


엄마가 깔깔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 재인아, 그건 아빠 말씀이 백번 맞다.”

“왜 내 성격이 어때서!”

“그거 모르면 너도 문제 있는 거야.”

“사실… 그렇긴 하지. 인정. 헤헤.”


재인은 갈비를 열심히 뜯어먹는다. 아빠는 재인을 보며 다시 묻는다.


“아무튼 지금 만나는 사람 없는 거지?”

“네, 지금은 없어요. 요 근래 소개팅 몇 번 하기는 했는데 잘 안 됐어.”


엄마가 또 한마디 얹는다.


“으유, 남자 놈들이 다 눈깔이 삐었나 보다.”

“엄마! 내가 성격 안 좋고 입 험한 건 아무래도 엄마를 닮은 거 같은데?”

“뭐?”


이어서 아빠가 다시 말한다.


“아빠 친구 아들놈이 있는데, 괜찮더라고. 아빠들끼리는 이야기를 해봤는데 한 번 만나볼래?”

“사진 보여줘 봐요.”

“사진? 잠깐만.”


아빠는 거실장 위에 놓인 휴대폰을 가져와서 친구 SNS 프로필을 넘겨보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얼마 전에 형구가 아들이랑 찍은 사진 올려놨던데. 어디 있더라… 아, 여기 있네! 자, 재인아 한 번 봐.”

“아빠!”

“왜!”

“아니, 아빠 나도 눈 있거든?”

“아빠가 보기엔 멋있기만 한데. 별로냐?”

“긴 말 하지 않겠습니다.”


엄마가 재인을 향해 한 소리 한다.


“야! 너는 사람 내면을 봐야지, 얼굴 먹고살래?”

“엄마가 할 소리는 아니지. 엄마도 아빠 얼굴 보고 골랐잖아.”

“하긴, 얼굴도 좀 뜯어먹고 살아야지. 하하. 여보, 다시 생각해 보니까 당신이 잘못한 거 같아.”


아빠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다.

“우리 집은 딸이랑 엄마랑 아주 똑같아. 아빠는 딱 사윗감으로 마음에 드는데.”


식사를 끝내고 아빠는 싱크대로 가서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엄마는 소파에 가서 앉으며 텔레비전을 켠다. 재인도 따라가서 엄마 다리를 베고 벌러덩 눕는다. 그리고 주방 쪽을 향해 웃으면서 외친다.


“아빠, 설거지 다 하고 나시면 나 냉동실에 아이스크림 하나 갖다 줘요.”


아빠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래, 내 딸 팔자 한 번 좋다. 너는 그냥 평생 나랑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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