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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Sep 25. 2023

#14 영상편지

소설 연재


금동 시립추모공원으로 버스가 한 대 들어온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줄을 지어 선다. 가장 앞에 선 사람이 60대 여성의 영정사진을 들고, 그 바로 뒤에 상주가 선다. 상주 하얀색 천으로 싸인 유골함에 이어진 긴 끈을 목에 걸고, 양손으로 유골함을 받치고 있다. 그 뒤로 남동생과 아내와 딸 그리고 일가친척들이 줄지어 따라간다.


다 같이 건물 2층으로 올라와서 대기하고, 상주와 재인만 접수처로 들어간다. 직원은 유골함을 건네받고 접수처 안쪽으로 가 들어간다. 그리고 이동식 카트 위에 조심히 올려둔 후 접수대로 돌아온다. 재인과 상주는 직원과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재인은 직원에게 예약 번호를 알려주고 직원은 상주에게 말한다.


“화장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 그리고 신청하시는 분 신분증 보여주시겠어요?”


상주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제출한다. 직원은 컴퓨터 화면을 보고 필요한 내용을 키보드로 작성한다. 곧이어 안내서류와 계약서를 출력해서 펼쳐놓고 설명한다.


“예약하신 대로 제2봉안당 5층 4021번 안치단 개인 봉안함으로 배정해 드렸습니다. 관내 신청으로 안치 비용은 200,000원이시고 관리비용은 별도입니다. 처음에는 15년으로 계약하시고 연장은 그 후에 10년 단위로 가능하십니다.”


직원은 이어서 안내한다.


“저희 추모공원 봉안 내부에는 유골함, 이름표, 위패, 액자화된 사진 외에 다른 물건은 넣을 수 없습니다. 사용기간 동안 1회에 한하여 봉안함을 열어 안에 물품을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결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신청을 원하실 때는 신분증과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지고 여기 접수대로 오시면 됩니다.”


상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리고 계약서 내용을 확인하고 아래에 서명한다. 이내 직원은 접수확인증을 건네주며 말한다.


“저희 직원들이 안내해 드릴 테니 따라 올라가셔서 봉안절차 밟으시면 됩니다.”


안쪽에서 다른 직원 2명이 나온다. 한 명은 유골함이 올려진 카트를 끌고, 다른 한 명은 간단한 공구장비를 챙겨 나선다. 상주는 문 앞 의자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와 딸 그리고 동생을 데리고 직원을 따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간다.


재인과 다른 가족들도 뒤따른다. 5층에 도착해서 안쪽으로 기둥 3개를 지나친다. 그리고 멈춰 서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간다. 무수히 많은 유골함들이 유리 봉안함 안쪽으로 비쳐 보인다.


직원 중 한 명이 4021번 봉안함 유리문을 공구를 사용해 연다. 재인은 상주에게 말한다.


“자, 상주님께서는 이제 어머니 유골함을 들어 올려 봉안함 직접 넣어주세요.”


상주는 조심히 유골함을 들어 올려 빈 공간 안쪽으로 밀어 넣고 손을 뺀다. 직원은 위치를 확인하고 봉안함 유리문을 닫고 공구로 단단히 고정시킨다. 함께 따라 올라온 직원 2명은 공구함과 이동식 카드를 다시 가지고 밖으로 조용히 나간다. 재인은 봉안함 앞에 선 가족들에게 말한다.


“이제 가족분들은 잠시 눈을 감고 어머니께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들을 마음으로 건네시길 바랍니다.”


다시금 가족들의 울음과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



발인절차를 모두 끝낸 재인은 한울병원 장례식장 사무실로 돌아온다. 잠깐 앉아서 숨을 돌린다. 허기가 진 재인은 지하 1층 식당가에 있는 작은 카페로 들어간다. 치즈 베이글 하나와 아이스 카페라테를 한 잔 주문해서 구석진 자리에 앉는다. 조금 후 진동벨이 울리고 재인은 카운터로 가서 주문한 메뉴를 가지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그녀는 베이글을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커피도 빨대로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을 켜고 ‘사망 프로필’ 서비스 관리 파일을 열어본다. 가장 상단에 표시된 ‘한지원’ 이용자의 프로필을 확인하고 재인은 베이글을 내려놓는다. 그 후 양손으로 이메일 한 통을 작성해서 전송한다.


‘당신은 3일 뒤 2022년 6월 30일 죽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죽는 날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3일 동안 죽음을 준비하세요.’



***



띠링.


휴대폰 알림이 울린다. 한 가정집 소파에 누워있는 여성이 보인다. 한지원이다. 여성은 재인이 보낸 죽음 예고 안내 메일을 확인한다.


‘당신은 3일 뒤 2022년 6월 30일 죽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죽는 날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3일 동안 죽음을 준비하세요.’


지원은 재작년 폐암 진단을 받았다. 다른 장기에 전이되는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올해는 사용하 약들에 내성이 생겨  다으로 변경하며 치료를 해왔다. 그리고 항암 진행이 더 이상 어려운 상태에 이른 후부터는 가정에서 호스피스 간호를 받아오고 있다.


메일을 확인한 지원은 주방에 있는 남편을 불러 소파 옆에 불러 앉힌다.

“여보… 내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아…”


남편은 말한다.

“그런 소리 하지 마, 괜찮아 내가 계속 옆에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지원은 다시 천천히 말을 이어간다.

“여보… 지금 내 몸상태가 이미 많이 안 좋은 거 알잖아 당신도. 같이 마음의 준비를 하자… 그리고 나 민정이한테 엄마 역할도 많이 못해줬는데… 마지막 인사라도 제대로 하고 싶어… 아직 초등학생 2학년밖에 안 됐는데… 민정이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당신이 좀 도와줘…”


남편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한다.

“알겠어…”


지원은 다시 말한다.

“여보, 방에 예전에 우리가 쓰던 디지털카메라가 있어. 그걸로 나 영상 좀 찍어줘…”


남편은 안방 서랍 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나와 삼각대에 설치하고 소파 앞쪽에 세운 후 아내를 향해 각도를 맞춘다. 촬영을 시작한다. 영상에는 몸이 야윈 지원이 보인다. 그녀가 입을 연다. 온 힘을 다해 얼굴 근육을 움직여 웃어 보이며, 목소리에 최대한 힘을 줘서 말한다.


“민정아, 엄마야. 엄마가 … 이제 아주 긴 여행을 떠날 거야… 민정이가 이제는 엄마가 보고 싶어도 바로 보지 못할 거야…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민정이 마음속에 있을 거야… 엄마가 보고 싶을 때는 눈물 참지 말고… 아빠 품에 안겨서 울어… 눈물 참지 말고 아빠한테 말씀드리고 아빠 앞에서 소리 내서 울어… 대신 엄마랑 한 약속들은 절대 잊으면 안 돼. 알지? 아침, 점심, 저녁 식사 모두 꼭꼭 씹어서 맛있게 먹고, 먹고 나면 양치질 깨끗하게 하고… 그리고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친구들이랑도 즐거운 시간 보내야 해… 엄마는 민정이가 언제 어디에 있든 항상 지켜보고 있을 거니까 씩씩하게 지내야 해…”


남편은 카메라 속 아내의 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지원은 계속 말한다.


“민정아… 엄마가 민정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사랑해 민정아… 엄마가 민정이 옆에 더 오래 있고 싶었는데… 엄마가 그럴 수 없게 됐어… 엄마가 우리 민정이한테 아픈 모습 많이 보여줘서 미안해… 엄마가 많이 아파서 하늘나라로 먼저 여행을 떠나는 거야… 하지만 엄마는 항상 민정이랑 함께 할 거야… 민정이 마음속에서 지낼 거야… 낮에는 태양이 되어서 민정이를 비춰줄 거고, 밤에는 별이 되어서 민정이를 지켜줄 거야… 민정아…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보물… 엄마가 정말 많이 사랑해…”


지원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남편을 향해 말한다.


“여보, 지금 찍은 영상은 내가 하늘나라 가게 되면… 우리 민정이한테 보여줘… 그리고 여보 오늘 우리 저녁 맛있는 거 먹자. 민정이가 돈가스 카레 좋아하니까 당신이 맛있게 요리 좀 해줘… 집에 재료가 없는데 당신이 잠깐 나가서 장 좀 봐와 줄 수 있어? 그동안 나는 민정이한테 남기고 싶은 영상 조금만  찍고 있을게…”


남편이 대답한다.


“알겠어.. 그럼 내가 지금 바로 장 봐올 테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좀 누워 있어…”


남편이 현관문을 나서는 소리가 들린다. 지원은 다시 카메라 화면을 보며 말을 잇는다.


“여보… 이제… 여기부터는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해요… 민정이한테 앞에 영상 보여주고 나면… 여기부터는… 당신 혼자… 있을 때 봐요… 여보… 그동안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당신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요…”


지원은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는다.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당신한테 짜증도 많이 내고 못된 말도 많이 했는데… 정말 미안했어요… 나는… 당신을 만난 게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어… 당신 같은 남편 만나서 정말 행복했어…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야… 내가 해주고 싶은 게 많았는데…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짧았어… 이렇게 짧을 줄 생각도 못했네… 여보… 나 하늘나라 가고 나면 너무 많이 울지는 마… 조금만 슬퍼해… 부탁이야…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했는데 앞으로도 당신이 슬퍼만 할 걸 생각하면 내가 눈을 못 감을 거 같아…”


지원은 숨을 한 번 가다듬으면서 다시 말한다.


“여보… 앞으로 많이 힘들 거야… 민정이가 여자 아이라 당신이 해주지 못하는 일도 생길 거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거야… 내가 그 몫을 다 하지 못하고 가서 정말 미안해… 민정이랑 지내면서 모든 걸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 그냥 민정이한테는 옆당신 같은 멋진 아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큰 힘이 될 거야… 그런 당신 옆에서 민정이는 씩씩하게 잘 클 거야… 여보… 많이 사랑하고 고마워… 그리고 좋은 사람 생기면 꼭 함께 새로운 가정 이루면 좋겠어… 진심이야… 나한테 미안해할 필요 없어… 나도 그러길 바라… 당신은 진짜 멋지고 좋은 사람… 대단한 사람이니까… 꼭 좋은 사람 만날 거야… 나도 하늘에서도 기도할게… 많이 고마웠어 여보… 사랑해…”



***


지원이 죽고 일주일 뒤쯤 남편은 문득 아내가 찍 영상이 떠오른다. 안방에서 카메라를 들고 나와 거실 텔레비전에 연결해서 혼자 영상을 틀어 본다. 드디어 화면에 지원의 모습이 보인다. 남편은 아내가 딸에게 말하는 내용이 끝나고개를 바닥에 떨구며 눈물을 흘린다. 이내 화면을 멈추려는데 다시 아내 목소리가 이어서 들린다.


“여보… 이제… 여기부터는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해요…”


남편은 다시 고개를 들어 화면을 바라본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영상을 끝까지 본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한다.


"여보... 나도 고마웠어... 이제 더 아프지 마... 나랑 민정이 걱정은 하지 말고... 그동안 당신도 최선을 다해서 버텨준 거 잘 알고 있어... 정말 고마웠어... 사랑해... 하늘에서 우리 잊지 말고 계속 지켜봐 줘... 나도 민정이랑 최선 다해서 살아가볼게... 여보...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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