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버스 안에서 재인은 휴대폰을 보고 있다. 화면에는 준영과의 대화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아빠 친구인 형구 아저씨의 아들이다.
‘안녕하세요, 재인씨. 연락이 너무 늦었습니다.’
‘아니에요. 반가워요. 말씀 많이 전해 들었어요.’
‘네, 반가워요. 혹시 이번주 토요일 저녁 시간 되세요?’
‘가능해요. 시간은 오후 6시 어떠세요?’
‘저도 좋아요. 장소는 온하역 근처 괜찮으세요?’
재인은 오랜만의 소개팅에 괜히 마음이 설렌다. 잠시 생각한 후 메시지를 이어서 작성한다.
‘저희 집에서는 가까운데, 준영씨는요?’
‘괜찮아요. 그럼 제가 식사 장소는 조금 더 찾아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연락 기다릴게요.’
‘네,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재인은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 하차벨을 누른다.
재인은 버스에서 내려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들리고 조금 뒤 휴대폰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재인은 걸어가면서 말한다.
“엄마, 저 지금 퇴근길인데 서점 좀 들러서 책 좀 읽고 갈게요. 오늘 저녁은 생각 없어서, 아빠랑 엄마 먼저 식사하고 계세요.”
전화를 끊고 조금 더 걸어서 동네책방으로 들어선다. 기준이 밝게 인사한다.
“어서 오세요.”
재인은 인사를 한 후 카운터에서 메뉴를 주문하며 카드를 건넨다.
“흑임자 마카롱 하나랑, 아이스 카페라테 한 잔 주세요.”
기준은 결제하며 대답한다.
“카드 받았습니다. 6,500원 결제하겠습니다. 오늘은 저녁 늦은 시간에 오셨네요.”
재인도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네, 퇴근하면서 잠깐 들렀어요.”
재인은 카드를 챙겨 넣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자리를 잡고 가방만 놓아둔 채 서점을 돌아다니며 책을 둘러본다. 창가 쪽 벽면에 있는 코너로 가서 이 책 저 책을 꺼내 목차를 읽어 본다. 이내 책 두 권을 골라 자리로 돌아온다. 주문한 메뉴는 이미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재인은 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먼저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다른 한 권은 옆에 살짝 밀어둔다. 책을 읽는 동안 틈틈이 마카롱도 잊지 않고 베어 먹는다. 잠시 후 재인은 잠깐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운다. 그 사이 책방 주인인 기준은 다른 테이블로 메뉴를 가져다주면서 재인의 자리 위에 놓인 두 책을 눈으로 흘깃 본다.
기준의 시선에 비친 두 책의 제목은 ‘연애 척척박사’와 ‘소개팅에서 남자를 사로잡는 방법’이다. 기준은 눈과 입으로 살짝 웃으며 지나친다. 재인은 이내 자리로 돌아와 읽고 있던 책을 다시 집어 든다. 그녀는 이번에는 애프터 신청을 꼭 받고야 말겠다는 다짐으로 열심히 읽어 내려간다.
카운터로 돌아온 기준은 재인쪽을 한 번 돌아보며 귀엽다는 듯이 웃는다.
***
토요일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난 재인은 거실로 나온다. 부모님은 아침 일찍 할머니댁에 가셔서 집 안이 조용하다. 재인은 주방 쪽 다용도실에서 비스킷 과자를 한 봉투 들고 뜯으면서 소파에 앉는다. 그리고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켠다. 재인은 예능 방송을 보고 깔깔 웃으며 과자를 먹는다. 프로그램이 한 편 끝나자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노트북을 켠다.
신문 기사를 이것저것 누르며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사망 프로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다. 이제 자연스럽게 화면 우측 상단의 이용자 수를 확인해 본다. 서비스를 운영한 지 이제 막 한 달이 지나가는 시점인데, 벌써 이용자 수가 300명이 넘어간다. 재인은 마우스를 움직여 그동안 확인하지 못한 자유게시판 화면으로 들어간다. 총 16개의 게시글이 보인다.
서비스에 대해 막연하게 비판하는 글도 있고, 신내림을 받은 무당인지 묻는 내용도 있었다. 그중3개 정도의 글은 실제로 이 서비스가 사람의 죽는 날짜를 맞췄다는 후기글이었다. 재인은 서비스를 시작하고 벌써 7명에게 죽는 날짜를 알려주는 이메일을 보낸 상태다.
해당 글들을 클릭해서 들어가 보니 서비스 이용자인 당사자가 아니라, 죽은 당사자의 가족 혹은 지인이 익명으로 작성한 글들이었다. 각 조회수가 거의 4,000회 이상으로 꽤 높았다.
재인은 생각한다.
‘알림을 받은 이용자 중에 주변에 이 서비스에 대해 말한 후에 돌아가신 분들이 있었나 보네…’
개중에 한 게시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익명) 여기서 알려준 날짜에 제 친구가 진짜 죽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는 날짜를 미리 알 수 있는 거죠?’
재인은 답을 해줄 수없었다.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을 말한다고 한들 사람들이 믿어주지도 않을 테고, 또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 어떤역풍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재인은 노트북 화면을 덮고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는 그동안 밀린 잠에 빠져든다.
시간이 흐르고 낮 2시쯤 되자 현관문 열리고 아빠 목소리가 들린다.
“재인아. 아빠, 엄마 왔다. 할머니께서 너 주라고 맛있는 거 많이 싸주셨어. 나와 봐.”
재인은 인기척을 듣고 잠에서 깬 후 주방 식탁으로 나온다. 아빠는 재인의 모습을 보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