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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Sep 25. 2023

#13 이메일

소설 연재


주말 오전, 재인은 노트북을 보고 있다. 사망 프로필 홈페이지 오른쪽 상단에 이용자 수가 보인다. 2주 만에 벌써 78명이 됐다. 그녀는 신규 이용자 접수 화면으로 이동한다. 3명의 추가 명단이 보인다.


‘김규연, 1964년생, 증명사진’

‘이준빈, 2000년생, 증명사진’

‘연동윤, 1982년생, 증명사진’


재인은 한 명씩 증명사진을 눌러보며 머리 위 숫자를 확인한다. 그리고 혼잣말로 되뇌며 그들의 죽는 날짜를 이용자 관리 파일에 기록한다.


“김규연, 481013. 이준빈, 220623. 연동윤, 531210. 이준빈… 220623… 이준빈… 22… 06… 23… 8일 남았네…”


재인은 신규 이용자들의 프로필을 기록한 후 노트북을 덮는다. 잠옷을 입은 채 방문을 열고 나가 부엌으로 간다.


커피머신 앞에 서서 전원을 킨 후 머리 위 찬장을 열며 거실 쪽을 향해 말한다.

“아빠, 엄마! 시원한 커피 한 잔 어때요?”


아빠가 대답한다.

“우리 딸이 타주는 거면 뭐든 좋지.”


엄마도 이어서 말한다.

“재인아, 엄마는 커피 말고 시원한 우유 한잔 부탁해.”


재인은 유리잔 3개를 꺼내서 내려놓고 커피머신에 캡슐을 넣는다. 집안에는 향긋한 에스프레소 향이 퍼진다. 시원한 생수와 얼음까지 함께 넣고 아이스아메리카노 2잔을 만든다. 마지막 잔에는 하얀 우유를 듬뿍 따라 붓고 쟁반에 담아 거실로 가져간다.


“자, 드세요. 아빠는 커피, 엄마는 우유.”


아빠는 발톱을 깎다 말고 커피잔을 받아 들며 한 잔 시원하게 마신다.

“재인아, 커피 너무 맛있다. 아까 아침을 너무 배부르게 먹었는지 속이 좀 더부룩했는데 커피 마시니까 좀 내려가는 거 같다.”


엄마도 소파에서 우유를 한 모금하면서 재인에게 말을 건넨다.

“땡큐, 우유도 고소하니 맛있다. 재인아 근데 며칠 전에 아빠가 말씀하신 형구 아저씨 아들 진짜 별로야?”


계속해서 대화가 이어진다.


“왜요?”

“아니… 엄마가 보기에도 괜찮아 보여서. 대학 졸업하고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대. 아빠 말씀으로는 성격 무던하고 실제로 보면 키도 훤칠하니 괜찮다고 하시더라고.”


아빠가 재인을 쳐다보며 말한다.

“근데 재인이 너 싫으면 억지로 보지는 말고.”


재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대답한다.


“음… 그래요? 근데 아빠 친구분 아들이면… 나중에 불편해지면 어떡해요? 잘 되면 좋겠지만… 잘 안 되면 아빠랑 형구 아저씨랑 괜히 어색해지실 수도 있잖아요.”

“아빠 걱정해서 그러는 거면, 한 번 편하게 만나봐. 우리도 다 연애하고 결혼해 봤는데 이런 게 억지로 되는 게 아니야. 잘 안 돼도 아빠들은 그냥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생각하지. 형구 아저씨랑 아빠도 무조건 잘 될 거라 생각하고 소개해주려는 건 아니야. 그냥 자식들이 다 컸고, 서로 잘 알고 하니까 소개 한 번 해줄까 싶었던 거지.”

“흠… 그럼 아빠 믿고 그냥… 한 번 만나볼게요, 헤헤.”



***



22년 6월 20일 저녁. 한 편의점 계산대에 세 남자가 서있다. 직원이 맥주와 소주 바코드를 하나씩 찍으며 말다.

“신분증 보여주세요.”


그중 한 남자가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다.

‘주민등록증, 이준빈, 000313-3xxxxxx, 서울특별시 도래솔구 도담9길 83…’


편의점 직원은 신분증을 눈으로 확인하고 카드를 받아 다. 결제를 마친 세 남자는 문을 열고 나와 바로 옆 펜션으로 들어다. 제주도의 한 펜션 방 안에서 준빈과 동호 그리고 경석은 치킨을 뜯어먹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다.


준빈은 닭날개를 한 입 베어 물며 대화를 시작다.

“야, 진짜 이번 학기 다들 고생했어. 나는 복학하고 첫 학기라 그런가 공부하는 게 너무 적응 안 되더라.”


경석과 동호도 번갈아가며 대답한다.

“그래도 우리 다 같이 미리 제주도 비행기표 끊은 건 진짜 잘한 듯.”

“그니까, 가격 쌀 때 표 잘 구했지. 근데 벌써 내일 다시 서울 올라가야 해.”

“2박 3일이 너무 훅 지나갔어. 그래도 너네랑 오니까 잘 놀다 간다.”


다시 준빈이 말다.


“진짜 재밌었다. 너네는 이번 방학 때 뭐 할 거야. 나는 영어 공부하면서 토익 성적 좀 올려놓으려고.”


동호와 경석이 다시 번갈아 대답다.

“나는 이번에는 마케팅 회사에서 인턴 하면서 시간 보낼 거 같아.”

“글쎄… 난 아직 별 계획 없는데… 아마 아르바이트하면서 돈 좀 모아야 할 거 같아.”

일단 오늘까지는 마음 편하게 놀자. 자, 짠!”


세명은 맥주잔을 부딪히며 술을 시원하게 한 모금씩 들이다. 다 같이 수다를 떠는 동안 갑자기 준빈의 휴대폰에 알람이 울다.


준빈이 이메일을 확인하고는 웃으면서 입을 연다.

“아, 맞다. 너네 사망 프로필이라는 사이트 알아?”


동호와 경석은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준빈을 쳐다본다.


준빈은 말을 이어다.

“내가 얼마 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 사이트를 알게 됐거든? 근데 죽는 날짜를 3일 전에 알려준다더라? 그래서 재미 삼아서 사이트에 가입해서 신청을 했는데 방금 그 알림 메일이 왔어. 이거 좀 봐.”


준빈은 화면 속 이메일을 친구들에게 보여다. 화면에는 다음 문장이 선명하게 비다.


‘당신은 3일 뒤 2022년 6월 23일 죽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죽는 날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3일 동안 죽음을 준비하세요.’


동호와 경석은 화면을 확인한 후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대화를 이어다.


“하하, 준빈아! 너 군대 다녀오더니 갑자기 무슨 사주 같은 거 보러 다니냐?”

“야, 이런 건 사주가 아니라 그 뭐지… 타로? 신점? 뭐 그런 거 아니냐? 그거 다 그냥 반신반의로 믿는 거야.”


준빈이 웃으며 말한다.


“나도 그냥 재미로 한 번 가입해 봤어. 근데 진짜 누가 관리를 하긴 하는 가봐. 이 사이트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경석과 동호가 다시 말을 얹는다.


“인마, 그냥 술이나 더 마셔.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냐. 그럼 너 3일 뒤에 죽냐?”

“하하, 야 그럼 이거는 무슨 이별 여행인 거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네.”


준빈은 멋쩍어한다.


“그렇지? 하긴… 야, 아무튼 이거 마저 다 마시고 내일 여행 마지막 날 일정 어떻게 짤지나 같이 고민해 보자.”



***



2022년 6월 23일 저녁. 한성대학병원 장례식장 빈소가 보인다. 정중앙에는 국화꽃에 둘러싸인 준빈의 영정사진이 비친다.



***



며칠 뒤 닭갈비집에서 동호와 경석이를 포함해 준빈과 같은 대학교 동아리 친구였던 호준과 인성 그리고 동혁이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나는 진짜 혼란스러워… 준빈이가 죽었다니, 아직도 실감이 안 나…”

“그러게…”

“근데 준빈이가 건강이 원래 좀 안 좋았었나?”

“아냐, 준빈이 엄청 건강했지. 준빈이가 우리 중에 체력도 제일 좋았잖아.”


경석이가 입을 연다.


“하… 근데 나는 계속 뭔가 걸리는 게 있어… 사실 나랑 동호랑 준빈이랑 셋이서 얼마 전에 제주도 여행을 같이 다녀왔거든. 아무 일 없이 잘 놀다가 올라왔는데… 이틀 뒤에 부고 문자를 받았어… 근데…”


인성이가 경석이를 쳐다본다.


“왜 그래… 경석아 너 울어?”


경석이가 울먹이면서 술을 한 잔 마시고 다시 말을 잇는다.


“근데… 우리가 여행 마지막 전날 밤에 같이 술을 마실 때 준빈이가 이상한 소리를 했어… 자기가 3일 뒤에 죽는다는 이메일을 받았다는 거야. 근데 진짜로 그날 준빈이가… 준빈이가 죽었어… 나는 장난인 줄 알았어… 안 믿었지…”


호준과 동호가 이어서 말한다.


“근데 준빈이가 자기 죽는 날짜를 어떻게 미리 알아?”

“준빈이가 얼마 전에 어떤 사이트를 가입했는데… 그 사이트에서 죽기 3일 전에 미리 알려준다고 해서 자기가 가입을 해봤대. 근데 우리랑 같이 있는 날 메일로 알림을 받았어. 경석이랑 나랑도 준빈이가 보여줘서 그 이메일을 확인했었거든… 근데 진짜로 2023년 6월 23일에 죽는다는 내용이었어.”


인성이가 다시 묻는다.


“진짜? 그 사이트 이름이 뭔데?”


동호와 경석이 대답한다.


“뭐였지…”

“그게… 사망 프로필…”


인성이가 휴대폰을 열어 인터넷 검색창에 “사망 프로필”을 검색해서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찬찬히 살펴보며 다시 말을 이어간다.


“진짜 이런 사이트가 있네… 근데… 사람 죽는 날을 누가 미리 아는 게 가능한가? 벌써 이 서비스에 가입한 이용자수도 100명 가까이 되는 거 같아.”


호준이가 의자를 옆으로 당겨 앉아, 인성이가 들고 있는 휴대폰 화면을 보면서 말한다.


“여기 보니까, 자유게시판이… 있는데 여기 한 번 글 써볼까? 이 사이트 운영하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니야. 우연의 일치로 맞춘 건지… 사람 죽는 날짜를 미리 안다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하는데… 이 사람 신내림 받은 사람… 뭐… 그런 건가?”


술에 취한 호준이 잠깐 생각하다가 주머니에서 본인 휴대폰을 꺼낸다. 같은 사이트에 접속해서 익명으로 자유게시판에 글을 작성한다. 호준의 휴대폰 화면 속 내용이 비친다.


‘(익명) 여기서 알려준 날짜에 제 친구가 진짜 죽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는 날짜를 미리 알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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