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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Sep 26. 2023

#16 대화

소설 연재


하늘하늘한 연분홍색 여름 원피스를 입은 재인이 구두 소리를 내며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들어선다. 카운터에서 예약자 이름을 말하고, 직원이 자리를 안내해 준다. 따라 들어간 재인의 눈에는 남색 반팔 카라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보인다.


준영이 일어서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재인씨.”


재인도 인사하며 같이 자리에 앉는다.

“안녕하세요, 준영씨. 일찍 오셨네요. 많이 기다리셨어요?”


준영이 답한다.

“아니에요. 저도 조금 전에 왔어요.”


재인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준영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다. 분명 아빠가 보여준 사진에서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자기만의 세상이 있을 법한 범생이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적당한 두께의 눈썹 그리고 쌍꺼풀은 없지만 적당한 크기의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속으로 웃으면서 생각했다.


‘안 나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하여간에 부모님들은 참 사진을 못 찍으셔. 아니 이렇게 괜찮은 아들을…  형구 아저씨는 왜 그런 사진을 SNS에 올려놓으셨지?’


준영이 말을 잇는다.


“아버지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네, 저도요. 실제로 뵈니까 인상이 참 좋으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하하… 저희 그럼 메뉴부터 주문할까요? 여기가 저도 추천을 받은 곳인데 스테이크가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준영은 메뉴판을 재인 쪽을 향해 펼쳐놓으며 이야기한다. 재인이 말한다.


“정말요? 음… 그럼 우리 스테이크랑 파스타 시켜서 같이 나눠 먹는 건 어때요?”

“네, 좋아요. 그럼 샐러드도 하나 시켜서 같이 먹어요.”

“네.”


준영은 직원을 불러 식사를 주문한다. 곧이어 물과 식전 빵이 먼저 테이블 위에 놓인다.


“재인씨, 드세요.”

“네, 준영씨도 같이 드세요.”


각자 빵을 한 조각씩 접시로 옮겨 담으며 대화를 나눈다.


“준영씨, 여기 식당 분위기가 너무 좋네요. 좋은 곳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마음에 드신다니까, 다행이네요. 오시는데 불편하지는 않으셨어요?”

“네, 저는 가까워서 금방 왔어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아무래도 아버지들께서 주선을 해주신 자리라 재인씨가 많이 부담이 되셨을 것 같아요.”

“아, 아니에요. 괜히 저희 때문에 아버지들께서 불편해지시는 일이 생길까 봐 조금 조심스러운 것 빼고는 괜찮아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재인은 괜히 마음이 두근거린다. 속으로 생각한다.


‘뭐야, 뭐야, 이거 뭐야? 지금 그럴 일 없다고 한 거… 맞지? 오, 그럼 사귀자는 이야기인가? 그래서 아빠들이 걱정할 필요 없다는 뜻인가?’


금방 사랑에 빠지는 재인의 오랜 지병이 다시 도진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벌써 신혼여행 첫날밤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내 며칠 전에 동네책방에서 읽었던 책의 내용을 기억해 낸다.


‘소개팅에서 과욕은 금물, 설레발치지 말 것. 오버해서 생각하면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니 주의할 것.’


그 사이 직원이 샐러드와 안심스테이크도 테이블 위에 가져다준다. 재인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와, 너무 맛있을 거 같아요.”

“제가, 스테이크 썰어드릴게요. 샐러드 먼저 드시고 계세요.”

“아니에요. 같이 먹어요.”


준영이 스테이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재인씨는 주말에 보통 뭐 하세요?”

“음… 저는 퍼즐 맞추는 거 좋아하고… 또 동네책방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책 읽는 거 좋아해요. 준영씨는요?”

“퍼즐 좋아하시는구나. 쉽지 않은데 잘 맞추시나 봐요.”

“잘하는 건 아닌데, 그냥 시간도 잘 가고 잡생각도 안 할 수 있어서 저는 좋더라고요.”

“좋은 취미네요. 저도 주말에 시간 여유 있을 때는 책 읽는 거 좋아해요. 근데 저는 재인씨처럼 서점에 직접 가지는 않고 보통 주문배송해서 집에서 읽기는 해요.”

“아 그러시구나. 하긴 요즘은 배송도 빨리 되니까 편하게 읽으시면 좋죠.”

“네, 그런데 다음에 기회 되면 재인씨가 가시는 책방도 한 번 가보고 싶네요.”


재인은 눌러놨던 지병이 다시 도지는 걸 느낀다. 머릿속에서는 또 혼자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뭐야… 나랑 지금 책방 같이 가자는 거야? 이거 호감 표시 맞지? 오늘 분위기 좀 괜찮네.’


재인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한다.

“아, 좋죠. 저는 근데 큰 서점보다는 그냥 집 근처에 작은 책방을 자주 가요. 가까이 있는 곳은 그냥 퇴근하면서 잠깐 들르기도 편하고 또 주말에도 멀리 안 나가도 되고요. 또 주말에는 그냥 모자 눌러쓰고 막 머리도 안 감고…”


재인은 멈칫한다.

‘아… 아니 머리 안 감는 이야기를 내가 지금 왜 한 거야… 아… 잘 돼 가고 있었는데… 하… 머리를 주말에 안 감고 서점 가는 이야기를… 이 놈의 입방정… 빨리 수습하자.’


“아니… 그게 아니고… 주말에는 그냥 편하게 가면 좋으니까요…”

“하하, 주말에는 편한 게 최고죠. 재인씨는 교대근무하신다고 들었는데 대단하신 것 같아요.”

“대단하긴요. 처음에는 저도 교대근무하는 게 쉽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적응해서 괜찮은 것 같아요.”

“그래도 대단하세요. 저희 아버지께서 재인씨 칭찬을 항상 많이 하세요.”

“정말요? 민망하네요. 그냥 제 적성에 맞는 일을 잘 찾은 것 같아요. 준영씨는 혹시 어떤 일을 하세요?”

“아, 저는 제약회사 다니고 있어요. 연구개발 부서에서 일하고 있어요.”

“우와, 정말요? 멋지시네요.”

“에이, 멋지긴요. 저도 그냥 나름대로 잘 적응해서 다니고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 메뉴인 날치알 로제파스타가 서빙된다. 재인과 준영은 그렇게 가볍지도 또 무겁지도 않은 이야기들로 대화 주제를 조금씩 바꿔가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식사를 마치고 준영이 계산을 한다.


“준영씨, 덕분에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아니에요. 제가 재인씨 덕분에 즐거운 시간 보냈어요. 저, 혹시 괜찮으시면 여기 옆에 괜찮은 카페가 있는데 커피 한 잔 하고 가시겠어요?”

“네, 좋아요.”


둘은 레스토랑에서 나와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작은 카페로 들어간다.


“준영씨, 뭐 좋아하세요? 커피는 제가 대접할게요.”

“커피까지 제가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에이, 저도 눈치코치는 있어요.”

“하하, 그럼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부탁드려요.”

“네, 그럼 저는 아이스 카페라테 마실게요. 치즈케이크도 하나 시켜서 같이 나눠 먹어요.”


재인이 결제를 하고 같이 안쪽 자리로 이동한다. 조금 후 진동벨이 울리고 준영이 일어서서 메뉴를 가지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재인씨, 잘 마실게요.”

“네, 맛있게 드세요. 제가 오히려 너무 맛있는 걸 얻어먹어서…”

“아니에요. 재인씨. 아참, 재인씨는 혹시 운동 좋아하세요?”

“운동이요? 저는 음… 즐겨하는 운동이 있지는 않은데… 혹시 준영씨는 운동 좋아하세요?”

“네, 저는 운동 좋아해요. 농구나 축구도 좋아해요. 그런데 직장 다니고부터는 사람들 인원 모으기가 쉽지 않아서 잘 안 하게 되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볼링이나 탁구는 언제든지 하기 편한 거 같아요.”


재인은 치즈케이크를 한 입 떠먹으면서 다시 말한다.


“와, 탁구도 잘하세요? 저는 탁구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아직 해본 적은 없어요.”

“그래요? 괜찮으시면 탁구는 다음에 저랑 같이 치러 가요. 저도 잘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그럼 다음에 기회 되면 알려주세요.”

“좋아요. 그리고 재인씨… 혹시 내일 일요일인데 뭐 하세요?”

“아, 내일이요?”

“네, 혹시 내일 다른 일정 없으시면 저랑 사진 전시회 가실래요? 제가 표가 2장이 생겼는데 재인씨랑 같이 가고 싶어서요…”


재인은 마음속으로 환호를 지른다.


‘됐다, 됐어! 애프터 받았다. 딱 좋다. 딱 좋아. 아, 잠깐… 이거 바로 좋다고 해야 해… 말아야 해? 연애척척박사 책에서 뭐라고 했더라… 아, 몰라. 기억 안 나. 좋은데 어떡해. 그냥 좋다고 해야겠다.’


재인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입을 다문채 미소로 숨긴다.


“아 불편하시면…”

“아니에요. 좋아요. 같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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