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한울병원 입구 정류소에 도착한다. 그녀는 카드를 찍고 뒷문으로 내려서 병원으로 걸어 들어간다.
***
미영과 재인은 무연고자의 입관을 준비하고 있다. ‘무연고자’는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장례를 포기한 고인을 말한다. 오늘 입관할 고인은 가족이 있기는 하지만 정해진 기간 내에 연락이 되지 않아 장례를 포기한 것으로 보고 무연고로 입관을 진행하는 경우다.
미영과 재인은 먼저 고인에게 입힐 장례 용품들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재인이 팔을 벌리고 선 후, 미영이 재인에게 수의를 순서대로 입히며 모양을 잡는다. 수의는 시신에 입히기 전 미리 형태를 만들어 놓아야 나중에 고인에게 입힐 때 작업이 용이하다.
미영이 재인에게 말을 건다.
“이렇게 무연고자 입관을 할 때면 매번 마음이 무거워. 보통 장례절차와 다르게 모든 걸 간소화해서 진행해야 하니까…”
“팀장님도요? 저는 팀장님만큼 오래 일하시면 무덤덤해지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냐,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사람이 일을 하면서 익숙해지고 무뎌지는 부분도 있는데… 입관하는 날은 여전히 새롭고 신경 쓰이고 그래. 또 외상이 많은 고인에게 염습할 때는 더 힘들고.”
재인은 미영이 입혀준 수의에 팔을 더 깊숙이 한번 집어넣어 옷 모양새를 다듬는다.
“맞아요. 그리고 저는 특히 가족들이 모두 장례절차를 포기해서 무연고 장례로 진행되는 경우에 생각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어떤 사연이 있길래… 가족 간에 어떤 갈등이 쌓이고 얽혀서… 마지막 가는 길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인생이 끝나는 건지…”
“그래, 우리가 모든 사연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마지막이 이렇게 외로운 것도 참 슬퍼. 그래서 우리 같은 장례지도사들은 그냥 마음 다해서 입관 절차를 진행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
그 후 재인은 입었던 수의를 모양 그대로 한꺼번에 벗어서 옆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무연고자의 경우 가족들의 의견을 물어볼 수 없기 때문에 국가지원금에 맞춰 임의로 절차를 진행한다. 이어서 둘은 절차에 따라 염습을 한 후 양손을 모으고 시신 양쪽에 선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마음으로 인사를 전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시간에 걸친 염습 과정을 마치고 고인을 관 안에 눕힌다. 바닥면에는 한지를 여러 장 겹쳐 만든 꽃이 수북이 깔려있다. 마지막으로 관 뚜껑인 천판을 단단히 닫고 한쪽 옆면에 고인의 이름을 유성펜으로 새긴다.
***
띠링.
고급 세단 차량의 상석에 탄 남성의 휴대폰 알림이 울린다. 65세 심규필이다. 중소기업 대표로 승승장구하며 경제적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여유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휴대폰을 열어 이메일함을 확인한다.
‘당신은 3일 뒤 2022년 7월 29일 죽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죽는 날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3일 동안 죽음을 준비하세요.’
조금 뒤 고급 주택빌라에 세단이 멈춰 서고 그는 운전석을 향해 말한다.
“김기사,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주말 잘 보내. 그동안 고생했어.”
규필이 집으로 들어오자 가사도우미가 인사를 건넨다.
“다녀오셨어요. 식사 바로 준비할까요?”
그는 대답한다.
“아니, 오늘 저녁은 됐어요.”
그는 소파에 가서 앉아 가만히 생각한다. 창밖을 내다보며 휴대폰을 꺼내든다. 그리고 별거하고 있는 아내와 결혼한 아들과 딸에게 문자를 한 통씩 보낸다.
‘몸이 많이 안 좋네. 나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이번 주말에 집에 와서 식사 한 끼 다 같이 하자고.”
이내 다시 생각에 잠겨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아내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젊을 때는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집을 챙기지 못했고, 조금 먹고살 수 있겠다 싶을 때는 회사 일이 바빠서 바깥으로 돌았다. 그러는 동안 아내는 혼자 자식들을 키웠다. 그는 자식과 특별한 추억이 없다. 아들과 딸이 다 결혼한 후 아내는 규필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규필은 받아들일 수 없어서 거절했다. 아내는 그 길로 짐을 챙겨 친정으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별거 중이다.
규필은 가사도우미를 불러 말한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 다 같이 오랜만에 식사할 거 같으니,장 좀 충분히 봐 놔요.”
***
규필의 아내 정인은 휴대폰을 확인한 후 받은 문자를 삭제한다. 이어서 아들 정후에게서 전화가 온다.
“엄마, 아버지 문자 받으셨어요?”
“그래.”
“가실 거예요?”
“엄마는 안 간다. 너랑 지민이 가고 싶으면 나 신경 쓰지 말고 편히 다녀와.”
“조금 전에 지민이랑도 전화했는데 저랑 지민이도 갈 생각 없어요. 가면 할 말도 없죠. 필요할 때 없었는데 왜 자꾸 나이가 드시면서 아버지 노릇 하시려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안 가요. 아버지 돌아가신다 해도 눈 깜짝도 안 해요.”
“그래, 너네도 마음 편한 대로 해.”
“네, 엄마. 내일 아내랑 같이 엄마나 뵈러 내려갈게요. 우리끼리 식사나 한 끼 해요.”
***
토요일 아침, 잠에서 깬 규필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광고 문자 외에는 다른 알람이 온 게 없었다. 식탁으로 나와 홀로 아침 식사를 한다.
가사도우미가 묻는다.
“그럼 오늘 점심 식사를 가족분들 모두 드실 양으로 준비하면 될까요?”
규필이 대답한다.
“아니, 오늘 저녁이나 내일이 될 것 같네.”
규필은 식사를 끝내고 아무 말 없이 소파에 가서 앉는다. 고요한 집에 텔레비전 소리만 요란하게 들린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점심과 저녁 모두 홀로 식사한다. 어느새 해가 뉘엿거리기 시작한다.
다음날 아침 규필은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다시 침대 옆에 놓인 휴대폰을 든다.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규필은 전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보낸다. 다시 저녁이 되고 힘 없이 침대에 눕는다.
***
규필의 아내 정인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울린다. 전화기 너머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여기 별진구 경찰서입니다. 심규필 씨 배우자 김정인님 되십니까?”
“네.”
“심규필씨가 2022년 7월 29일 사망하셨습니다. 장례절차를 진행하실 수 있도록 가족분께 연락드립니다.”
“…”
“여보세요?”
“… 장례절차는 따로 진행하지 않겠습니다. 가족들과 이미 오래전부터 교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 김정인님께서는 심규필씨에 관한 시신인수를 거부하시는 입장이십니까?”
“네.”
“그렇다면, 동순위 상속인이신 자녀분들께도 연락드리겠습니다.”
관할 경찰서에서는 규필의 아들 정후와 딸 지민에게도 전화를 건다. 같은 내용의 통화가 반복된다. 그날 오후 관할구청에서 정인과 규필 그리고 지민에게 동일한 메시지가 전달된다.
‘2022년 8월 15일까지 별진구청에 방문하셔서 故심규필씨에 관한 시체포기각서 및 위임서류를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족분들의 동의 절차가 완료되면 故심규필씨는 무연고자로 확정될 예정입니다.’
정인과 정후 그리고 지민의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이 흘러간다. 정인은 창가에 앉아서 커피 한 잔을, 정후는 아내와 저녁 식사를, 지민은 유치원에서 하원한 딸아이와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