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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Sep 28. 2023

#19 암전

소설 연재


8월의 어느 여름밤, 재인과 준영은 한강 야시장을 거닐고 있다. 적당한 어둠이 내려앉고 수많은 조명들이 공원을 비춘다. 부스마다 제각기 다른 상품을 진열해놓고 있다. 푸드트럭부터 각종 액세서리 그리고 인테리어 소품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간단히 공예 체험을 해볼 수 있는 부스들도 보인다. 다른 한쪽에서는 인디밴드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재인과 준영도 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준영이 한 부스에 멈춰 서서 재인에게 손짓한다.

“재인씨, 여기 예쁜 팔찌들이 있는데 같이 구경해 봐요.”


재인이 준영 옆에 바짝 붙어 선다.

“와, 진짜 예쁘네요. 핸드메이드 작품인 거 같아요.”


준영이 검정 매듭팔찌를 하나 집어 든다. 중앙의 은색 각인바에는 ‘Life is a choice’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재인씨 이거 어때요? 인생은… 선택이다.”


재인은 똑같은 팔찌를 하나 더 찾아서 집어 올린다.

“오, 문구도 좋은데요? 준영씨, 그럼 우리 이거 똑같은 거 같이 할까요?”


준영은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재인의 왼쪽 팔목에 직접 팔찌를 끼워준다. 재인도 준영의 오른쪽 팔목에 팔찌를 채워준다. 그리고 다시 다른 부스들도 조금 더 둘러보고는 카페에 들른다. 시원한 커피를 주문해서 빈 벤치를 찾으며 산책한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둘은 강을 바라보고 나란히 벤치에 앉는다. 재인은 목이 마른 지 손에 든 커피를 시원하게 마시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준영이 말을 꺼낸다.


“재인씨…”

“네!”

“우리 벌써 알고 지낸 지 한 달 가까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와… 그러네요…”


재인은 준영을 쳐다본다.


“재인씨… 우리 한 번…”

“좋아요!”

“네?”

“좋다고요.



***



한 영상 플랫폼에서 실시간 방송이 진행되고 있다. 약 10만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한 남성이 유쾌하게 말하고 있다. 34세 최준한이다.


“여러분, 며칠 전에 제가 곧 죽는다는 이메일을 받았어요. 혹시 ‘사망 프로필’이라는 사이트 아세요? 제가 거기 가입한 지가 조금 됐어요. 죽기 3일 전에 미리 알려주는 서비스래요. 이 사이트 자유게시판에 보면 진짜로 여기에서 알려준 날짜에 죽었다는 후기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어요. 제가 또 누굽니까. 이런 건 궁금해서 못 참죠. 하하. 지금이… 저녁 7시네요. 제가 오늘 자정이 넘을 때까지 라이브 방송 켜놓을게요. 이 알림이 맞다면 저는 라이브 방송하면서 죽는 거겠죠? 하하. 설마, 그럴 일이 있겠어요? 아무튼 원래대로 저는 게임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고 그리고 3시간이 지난다. 게임은 계속해서 진행된다.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댓글도 끊임없이 달리며 방송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라이브 방송이 꺼진다. 시계는 저녁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을 가리킨다.



***



준한의 집 안의 모든 전기가 갑자기 꺼진다. 그는 당황하며 헤드셋을 벗는다.


“뭐야.”


책상 옆에 있던 휴대폰 화면을 켜고 불빛을 이용해서 일어선다. 뒤돌아서는 순간 복부로 날카로운 무언가가 깊숙이 들어온다.


윽!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준한은 폰을 떨어뜨린다. 이내 칼이 뽑히고 다시 준한의 가슴으로 깊게 들어와서 꽂힌다. 그는 힘 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조용히 흐느끼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한쪽 벽면에 기대앉아 피가 흠뻑 묻은 손으로 휴대폰을 꺼낸다. 그리고 숫자 버튼을 눌러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제가… 사람을… 죽였는데요…”



***



다음날 인터넷은 살인 사건 기사로 도배된다.


‘서울 모람시 한 빌라에서 사람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한 여성 A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A씨는 이날 피해자가 거주하는 빌라에 무단침입해 누전차단기를 내린 후 30대 남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A씨는 범행 직후 스스로 경찰에 신고하여 자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피해자는 과거 연인 관계였던 A씨와의 성관계 영상을 불법촬영하고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며 최근까지도 금전적인 대가를 요구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자세한 범행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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