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안 Oct 02. 2023

#20 죽음

소설 연재


재인은 지하 장례용품 보관실에서 재고 수량을 확인하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온다. 문을 열고 들어와 벽면 화이트보드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다시 문 밖을 나서 70대 남성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는 102호 빈소 식당으로 향한다. 장례도우미들은 한쪽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서빙을 하고 있다.


검은색 차림의 조문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식탁 위에는 빨간 육개장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육과 모둠전 그리고 갖은 밑반찬과 인절미에 수박까지 한 상 가득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먹는 것만 생각하면 축제날과 다름없다.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이 주메뉴로 나오는 이유는 우리나라 토속신앙과 관련이 깊다. 옛사람들은 붉은색이 잡귀를 물리치고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잡귀가 꼬이는 장례식장에서 고인뿐만 아니라 문상객에게도 잡귀가 붙는 것을 막기 위함에서 시작됐다. 아직도 장례식장을 다녀오면 잡귀가 들러붙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을 들르거나 소금을 뿌리고 들어가는 문화가 남아있다.


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장례도우미와 대화를 나눈다.


“지금 몇 인분 정도 남았나요?”

“잠시만요… 한… 50인분 정도 남은 것 같은데요. 음식이 금방 금방 줄어들고 있어서 한 번 확인해봐야 할 것 같네요.”


재인은 식당에서 빈소로 연결된 문을 열고 들어간다. 조문객들의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 고인의 딸만 따로 옆으로 불러 조용히 묻는다.


“지금 음식이 한 50인분 정도 남았어요. 아직 시간이 일러서 저녁이랑 새벽에 오시는 문상객들까지 고려하면 최소 50인분 정도는 더 추가하셔야 할 거 같아요. 많다고 생각되시면 계속 30인분씩 추가하셔도 괜찮습니다. 상주님과 한번 상의해 보신 후에 식당에 계시는 도우미분께 전달해 주세요. 그럼 제가 확인하는 대로 추가 주문해 놓겠습니다.”


재인은 인사를 하고 다시 식당으로 연결된 문을 빠져나온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태진을 만나 같이 늦은 점심 식사를 하러 이동한다. 병원 직원 식당에서 재인은 허기진 배를 채우며 태진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은 일처리 할 게 많아서 식사가 늦어졌더니 배가 너무 고팠어요.”

“그러게, 오늘은 일이 좀 많네.”

“선배, 그런데 만약에 상을 당하면 문상객들이 얼마나 올지 예상하기가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빈소는 음식이 많이 남기도 하고, 또 어떤 빈소는 예상보다 손님이 훨씬 많이 와서 계속 추가주문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니까,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고인이 생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교류하고 살았는지까지는 다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 나는 가족이 아니라 내가 당장 죽는다고 해도 내 장례식에 몇 명이나 찾아와 줄지 솔직히 예상 못하겠어.”

“맞아요. 그것도 그러네요. 102호 빈소는 어제부터 계속 음식이 부족해서 추가주문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래도 문상객이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게 나은 것 같아요. 덜 적적해 보이기도 하고 또 남아있는 유가족들이 생각하기에도 고인이 살아계실 때 잘 사셨나 보다… 하는… 뭐 그런 생각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이번에는 고인의 자녀분 가족들이 많으시더라고요. 남은 가족끼리 서로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외동이라 가족들이 많은 게 가끔 부럽더라고요.


재인과 태진은 식사를 끝내고 퇴식구에 식기를 반납한다. 식당에서 빠져나온 태진은 말한다.

“재인아, 나는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은행일 볼 게 좀 있어서 잠시 밖에 좀 다녀올게. 먼저 들어가.”


재인은 대답한다.

“네, 선배. 다녀오세요. 저도 음료 한 잔 마시고 사무실 복귀하려고요.”


재인은 카페에서 시원한 요거트 스무디를 하나 사서 휴게실로 이동한다. 빈 테이블의 의자에 앉아서 넋 놓고 음료를 쭉 빨아 마신다. 답답한 기운이 내려가고 목이 시원해지자 그녀는 의자 뒤로 기대앉는다. 그때 조금 떨어진 옆 테이블에서 다소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102호 빈소의 둘째 아들 내외다. 재인은 모른 척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음료를 마신다. 


아내는 남편에게 신경질을 낸다.


“당신, 이번에는 처신 제대로 해요.”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이제 아버님 돌아가셨으니까 어머니 혼자 남으셨잖아요.”

“그런데?”

“그런데는 뭐가 그런데예요. 당신이 또 아무 말 못 하고 가만히 있으면 형님네는 당연히 우리한테 어머니 모시라고 떠밀듯 넘길 거라고요.”

“...”


남편은 깊은 한숨을 쉬며 하늘을 쳐다본다.


“왜 아무 말이 없어요. 난 이때까지 참은 걸로 충분해요. 저쪽은 장남이라는 이유로 물려받은 것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잖아요. 근데 왜 맨날 뭘 받을 때만 장남이고, 아닐 때는 뒤로 쏙 빠져요? 난 어머니랑 같이 절대 못살아요. 그동안 아버님이랑 어머님 편찮으실 때마다 우리 집에 오셔서 지내셨잖아요. 그리고 또 아주버님은 곧 해외로 발령 난다면서요! 그럼 또 어머님 모시는 것도 우리 몫 되는 거 아녜요?”

“그럼, 날더러 뭘 어떻게 하라고.”

“발인까지 끝나고 나면 당신이 이번에는 제대로 말해요. 아주버님네가 어머니 모시도록 하라고요. 아니면 요양원에 모시고 비용을 그쪽에서 부담하라고 해요. 이번에 당신이 또 우유부단하게 있다가는 우리가 짐 다 떠안게 될 거예요. 안 봐도 비디오예요. 만약 그렇게 되면 난 이제 당신이랑 안 살아요. 못 살아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장례 끝나자마자 아주버님께 가서 확실하게 이야기해요.”


아내와 대화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남편은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아내도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뒤따라 나간다. 재인의 예상은 이번에도 빗나갔다. 장례식장에서도 가족들끼리 서로 의지만 되는 건 아니다. 장례지도사로 일하면서 유가족들의 대화를 잠깐씩 듣게 된다. 겉보기에 다복해 보여도 실상은 반대인 경우도 많다. 가족 간에 쉬쉬하던 문제가 고인의 죽음을 계기로 크게 불거지기도 하고, 고인이 미처 해결하지 못하고 남겨둔 문제를 남은 가족이 떠안고 고통스러워하는 경우 등 다양하다.


재인은 생각한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또 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두 문제가 정말 다른 문제인 것인지 결국은 같은 문제인 것인지.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한다면, 또 잘 사는 건 어떻게 사는 것인지.



***



교대근무가 비번인 날 아침, 재인은 책상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사망 프로필 홈페이지 오른쪽 상단에 표시된 이용자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벌써 2,000명이 넘는다. 이번달 재인의 통장에는 장례지도사로서 얻는 소득 외에 사망 프로필 서비스 수입으로만 1,000만 원이 넘게 들어왔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월 5,000원의 이용가를 책정하기는 했지만 예상치 못한 큰 금액이다.


재인은 자유게시판과 다양한 SNS를 통해 이 서비스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보고 듣는다. 도움을 받아서 고맙다는 사람도 있지만 심한 수위로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또 사실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덧붙여 함부로 말을 만드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조용히 살아온 재인으로서는 많은 관심이 부담스럽다. 혹시나 자신의 정체가 들킬까 걱정도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갑자기 큰돈을 버는 것에 대해 알 수 없는 죄책감도 느낀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수단으로 돈을 버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런데 왜 장례지도사로 일하면서 돈을 버는 것과 이 서비스로 돈을 버는 것 사이에 이렇게 큰 차이가 느껴지는지 재인 본인도 정확히는 모른다. 그녀는 고민한다. 언제까지 이 서비스를 할 수 있을지 또 해야 할지. 하지만 아직까지 그만 둘 생각은 없다.


재인은 정신을 차리고 노트북 화면을 이동해 이메일 한 통을 보낸다. 수신자는 38세 박정남.


‘당신은 3일 뒤 2022년 8월 19일 죽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죽는 날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3일 동안 죽음을 준비하세요.’

이전 20화 #19 암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