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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Oct 02. 2023

#21 불길

소설 연재


띠링.


남의 휴대폰 알림이 울림과 동시에 소방서 안에는 경보음과 함께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진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주황색 제복을 입은 정남과 동료 소방관들이 계단을 두세 칸씩을 성큼성큼 뛰어 내려온다. 소방복을 빠르게 입고 안전장비를 챙긴 후 119 구조대 차량에 탑승한다. 차량은 사이렌을 정신없이 울리며 도로를 나선다. 정남이 가지고 있는 무전기에서 전파가 수신된다.


“인명 구조를 최우선으로 할 수 있도록!”


화재현장으로 달려가는 길, 차 안에서 소방관들은 각자 마지막으로 방독면을 착용한다. 방화복과 장비의 무게만 해도 25kg이나 된다. 몸과 마음에 엄청난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정남은 소방대원들에게 말한다.


“이번 화재 현장은 지하층이니까 현장에 진입할 때 불길 역류하는 거 다들 조심해.”



***



화재를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소방서로 복귀한다. 정남은 환복한 후 대원들과 함께 식당 조리실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 출동을 다녀온 후 먹는 라면은 산해진미 부럽지 않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는 다시 사무실로 올라간다. 정남은 휴대폰을 확인한다. 출동 전 미처 확인하지 못한 이메일을 열어 본다.


‘당신은 3일 뒤 2022년 8월 19일 죽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죽는 날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3일 동안 죽음을 준비하세요.’



***



주말 아침에도 정남은 새벽같이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뛰며 체력을 보강한다. 집에 올라와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가족들을 위해 아침상을 차린다. 아내가 눈을 비비며 방을 나온다.


“일어났어?”

“응, 여보 또 아침 다 차려놨네.”

“뭐, 별 거 아닌데. 다윤이는 아직 자?”

“응 다윤이는 좀 더 자게 내버려 두자.”


정남과 아내는 식탁에 마주 보고 앉는다.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그리고 두부조림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한다. 아내가 정남을 쳐다보며 말한다.


“여보, 근데 내일 휴가 내면 안 돼?”

“하하, 그게 무슨 소리야. 출근해야지.”

“아니… 그건 아는데…”

“왜?”

“그게… 내가 그냥 좀 안 좋은 꿈을 꿨는데 기분이 이상해서… 요즘 당신 출동도 많아지고 또 체력도 떨어진 게 눈에 너무 보여서… 이래 저래 걱정이 되네…”


정남은 계란말이를 집어 먹는다. 그리고 자신이 내일 죽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일 없는 듯이 식사한다. 정남은 화재현장에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선배들을 봐왔기 때문에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해오고 있다. 그는 생각한다. 죽는 날짜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마지막까지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소방관으로서 그때그때 맡은 일 최선을 다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정남이 아내에게 묻는다.


“오늘 날도 더운데 다윤이랑 우리 다 같이 물놀이나 갔다 올까?”

“좋지. 다윤이 좋아하겠다.”


정남은 식사를 끝내고 도시락을 준비한다. 딸이 좋아하는 유부초밥과 과일을 챙긴다.


조금 뒤 방에서 초등학생 다윤이 눈을 비비며 나온다.

“아빠!”


정남은 반갑게 웃으며 돌아본다.

우리 다윤이, 일어났어?



***



다음날 소방서에 또다시 경보음과 함께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진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정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신속하게 계단을 따라 뛰어내려 간다. 안전장비와 소방복을 빠르게 챙기고 구조대 차량에 탑승한다. 새벽 이른 시간, 한 상가 건물에 화재가 크게 발생하여 출동 중이다.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붉은 불길이 3, 4층 창밖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다.


정남과 소방대원들 모두 곧바로 진화를 시도하며 상가 내부로 진입한다. 화마는 걷잡을 수 없이 건물 전체로 확산된다. 새빨간 불길과 그을린 연기가 가득하고 이웃 주민들은 그 건물을 둘러싸 올려다보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소방대원들은 건물 내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며 시민들을 한 명씩 구출해내고 있다. 그리고 정남은 끝내 그 뜨거운 불길 속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



장례식이 끝나고 정남의 아내는 딸과 함께 친정에서 지내고 있다. 다윤이 작은방에서 잠들자 아내는 안방으로 건너온다. 정남의 아내가 눈물이 가득 담긴 슬픈 목소리로 친정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나는 그 사람 하나도 안 멋있어… 다들 명예롭다고, 존경스럽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명예 필요 없어… 고맙다는 인사도 필요 없어… 그 사람이 시민 한 명 더 구하겠다고 마지막까지 불길 속에서 있었던 거 상상하면 난 그게 더 상처야… 한 명 더 구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나는… 우리 다윤이는…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친정 엄마가 아내를 다독인다.


“그래도 어쩌겠니… 너도 알고 결혼한 거잖아… 소방관인 거 모르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너랑 다윤이는 또 살아가면 되는 거야… 살아가면 돼… 살아갈 수 있어… 서방 그만하면 최선 다했어… 너한테도 충분히 잘했고 다윤이한테도… 그리고 우리한테도 모자람 없이 다했어…”


아내는 연신 바닥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한다.


“알고 결혼했지…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늘 사명감 넘칠 필요는 없었잖아. 그 사람은 항상 현장에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이었어… 난 같이 사는 동안도 늘 조마조마했어… 그 대단한 거 꼭 그 사람이 할 필요 없었잖아… 현장 근무도 그만큼 했으면 그만하길 바랐어… 이제 가족들 생각해서 박봉이라도 상관없다고… 내근직으로 이동하라고도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꼭 현장에 출동하지 않더라도 소방관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은 많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왜 꼭 그 사람이 그 일을 고집스럽게 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어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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