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안 Oct 05. 2023

#22 연락

소설 연재


“재인아!”


골목 끝에서 준영이 뛰어 온다. 재인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재인은 준영과 함께 누리봄 동네책방으로 들어선다.


진욱이 인사한다.

“어서 오세요.”


재인과 준영도 인사한 후 카운터 앞에 서서 메뉴판을 구경한다.


“오빠는 뭐 마실 거야?”

“음…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는 아이스 카페라테.”

“조각케이크도 시키자 우리.”

“그럴까? 음… 여기는 바스크 치즈케이크랑 마카롱이 맛있어.”

“그럼 치즈케이크 먹을까?”


재인이 진욱에게 카드를 내밀자, 준영이 막아선다.


“내가 살게.”

“아니야, 이번엔 내가 살게. 매번 오빠가 사줬잖아. 그리고 여기 우리 동네거든?”


진욱은 재인이 건네준 카드를 받아 들고 결제하며 말한다.


“13,400원 결제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네, 잘 지내셨죠?”

“그럼요. 메뉴는 준비되는 대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준영과 재인은 안쪽 시원한 자리로 들어간다.


“여기가 내가 말했던 책방이야.”

“분위기도 차분하고 좋네.”

“그렇지? 대형서점처럼 크지는 않지만 책도 다양하고 좋아. 그리고 서점 사장님이 책 후기 글을 진열대 앞에 다 적어놓으셔서 참고하기도 좋아.”

“그렇구나.


진욱이 그 사이 커피와 케이크를 준비해서 테이블로 가져온다.

“맛있게 드세요.”


재인과 준영도 인사한 후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신다.


“오빠, 이 케이크 한 번 먹어와. 진짜 맛있어.”

“같이 먹자.”


둘은 케이크도 한 입씩 베어 먹는다.


“와, 진짜 맛있네”

“그렇지.”


준영은 재인을 웃으면서 빤히 본다.


“왜?”

“너 보고 있으면 그냥 웃음이 나. 재인아 너는 항상 뭐가 그렇게 재밌어?”

“응?”

“아니, 너는 늘 행복해 보여. 사소한 것도 재밌어하고… 그래서 너 옆에 있으면 나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져.”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나보고 지금 생각 없어 보인다고 놀리는 거지?”

“하하. 아니, 그게 아니라.”


재인과 준영은 계속해서 담소를 나눈다.


“아참, 재인아 지난주에 연락이 잘 안 된 때 있었잖아…”

“아, 그날 민아랑 이야기하고 있어서 휴대폰을 바로 못 봤어.”

“그때 많이 걱정했었어.”

“에이, 걱정은 무슨. 나 그날 오빠한테 민아 만나러 간다고 미리 말도 했었잖아.”

“그래도… 두 시간 가까이 연락이 안 되니까 걱정되더라고.”

“미안해. 근데 나는 누구 만날 때는 그 사람한테 집중하는 편이라 휴대폰을 바로 못 볼 때가 있어.”

“응… 그래도…”

“알았어, 그럼 앞으로는 나도 휴대폰 잘 확인하도록 조금 더 신경 써볼게.”

“고마워.”

“그럼 이제 우리 서점 좀 둘러볼까? 여기 책 종류도 많으니까 한 권씩 골라오자!”


준영과 재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점을 둘러본다.



***



띠링.


‘당신은 3일 뒤 2022년 9월 5일 죽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죽는 날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3일 동안 죽음을 준비하세요.’


58세 김순자의 휴대폰 알림이 울린다. 순자는 식탁에 앉아 이메일을 확인한다. 그리고 한숨을 크게 내몰아 쉰다. 안색이 어두워진 채 일어서서 설거지를 하려고 고무장갑을 낀다.


그때 딸 명지가 다가와 순자를 부른다. 명지는 30세다.

“엄… 엄… 마…”


순자는 답한다.

“응, 명지야. 엄마 설거지만 하고 갈게.”


명지는 다시 거실로 돌아간다. 순자는 딸 명지가 지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때부터 늘 기도해 온 한 가지가 있다. 명지보다 더도 덜도 말고 딱 하루만 더 사는 것이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라면 다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명지 아빠와는 이혼한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순자는 전남편과의 기억을 회상한다.



***



“명지 엄마, 이제 명지한테 그만 좀 집착해. 지금까지 명지한테 들어간 치료비만 도대체 얼마야. 그리고 당신이 명지한테만 매달려있으면 우리 생활이 너무 어려워.”

“그럼 어떡해. 명지한테 도움이 된다는데.”

“이제 인정해야지. 명지는 지적장애 1급이야. 더 나아질 수 있는 게 없다고. 우리도 살아야지 이제.”

“그럼 당신이 명지한테 더 관심을 가지던가.


둘의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나도 아빠야. 나도 명지가 신경 쓰여. 하지만 우리도 살아야지. 균형은 맞춰야 할 거 아니야. 놀이치료니 음악치료니 미술치료니 그거 다 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 그리고 당신 나에 대해서는 생각해 봤어?”

“내가 뭐. 내가 뭘 어쨌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그럼 애가 아픈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우리 시간도 보내야지. 우리도 살아야지. 우리가 건강해야지 명지도 잘 키워낼 거 아니야. 내가 볼 때 당신도 정신과 상담받아야 해. 당신도 지금 정상 아니야. 치료가 필요하다고. 당신 예전과 달라.”

“상황이 달라졌는데, 그럼 나도 달라져야지. 그게 정상이지. 같으면 그게 오히려 비정상인 거 아니야?”



***



순자와 남편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남편은 아이를 시설에 입소시키자고 늘 요구했고 순자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했다. 가능하면 가정에서 보육하려고 애쓰고 노력했다. 남편은 이런 상황과 순자의 태도를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요구했다. 순자는 남편이 무심한 아빠라고만 생각했다. 또 자신이 명지를 대하는 양육태도만 정답이라 확신했다. 기억을 멈추고 순자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


‘시간 되면 한 번 만나요. 이야기할 게 있어요.’



***



한 카페 테이블에 순자와 남편이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순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연다.


“잘 지냈어요?”

“나야, 뭐 그렇지.”

“매달 잊지 않고 생활비 보내줘서 고마워요.”

“아니야, 많이도 못 보내주는데. 나도 형편이 나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명지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계속 보내줘서 고마웠어요.”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순자가 조심스럽게 남편을 쳐다본다.


“저… 혹시 우리 명지… 좀 부탁해도…”

“부탁한다는 게… 무슨…”

“내가 사정이 생겨서 명지를 돌보기가 어려운데 이제부터는 당신이…”

“미안해… 그건 어려워… 당신도 알잖아…”

“알죠… 새 가정 꾸린 거… 그렇지만 명지도 당신 자식이잖아요…”

“미안해…”

“미안하다고만 하지 말고 이제라도…”

“미안해…”


순자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당신 그때 왜 나랑 명지 버리고 갔어요…”


그리고 남편도 눈시울이 붉히며 말한다.


“버리고 가지 않았어. 당신이 날 밀어냈어… 난 당신 옆에서 늘 죄책감만 느끼며 살았었어. 당신이 나를 밀어낸 거야. 나도 내 나름 최선을 다했어. 하지만 늘 당신이 원하는 기준에는 못 미쳤지. 그렇지만 내가 노력하지 않았던 건 아니야. 그런데 당신은 늘 날 비난했지. 왜 명지한테 더 관심을 가지지 않냐, 왜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냐, 왜 당신은 명지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냐, 왜 당신은… 왜 당신은…. 내가 당신과 살면서 들은 말들은 다 그런 종류였어. 내가 명지에 대한 어떤 생각을 이야기하면 당신은 늘 나보고 틀렸다고만 했어.”


남편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른다.


“당신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나도 명지 아빠야. 나름대로 고민했었어. 당신은 명지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자고 했어. 하지만 나는 명지도 살고 우리도 살 수 있게 다른 방법들도 찾아보자고, 균형을 맞춰보자고 이야기했어. 부부가 제대로 서야 명지를 잘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날이 갈수록 당신은 명지에게만 집착했어. 나는 당신과 명지 사이에 들어갈 틈이 없었어.


남편은 담담히 말을 이어간다.


“나도 명지한테 해주고 싶은 건 많았어. 하지만 내가 그만한 능력이 안 되는 걸 어떡해. 그런데 당신은 명지에게 늘 새로운 경험을 시켜줘야 한다면서 이런저런 비용을 늘리기 시작했어. 또 명지 같은 아이들은 언제 긴급한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며 생활비에 많은 부분을 떼서 적금까지 들기도 했어. 당신이 명지를 걱정하며 했던 모든 행동들 중에 나와 먼저 상의한 것들은 단 하나도 없었어. 다른 의견을 내면 나는 부성애 없는 아빠가 될 뿐이었지. 당신한테는.”


순자는 처음으로 남편의 속마음을 들었다. 이혼할 때도 듣지 못한 속이야기다. 순자는 자신만 옳은 줄 알고 살았다. 정답은 오직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순자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남편을 내편으로 만들지 못한 건 어쩌면 자기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고.



***



집에 돌아온 순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화면에는 여러 신문기사의 제목이 떠있다.


‘중증장애 아들 25년 돌보다 살해한 엄마’

‘자녀 살해 후 자살한 발달장애인 부모’

‘발달장애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한 아빠’

‘장애인 가족의 자녀 살해 비극’


조금 뒤 순자는 컴퓨터를 고 거실로 나간다. 명지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



다음 날 명지가 주간 센터에 가있는 동안 순자는 동네 철물점에서 밧줄을 구매한다. 명지가 오기 전 밧줄을 여러 방식으로 매듭지어 본다. 매듭을 지었다 다시 풀고 지었다 다시 풀고를 반복한다. 그리고 작은방 두 번째 서랍 속에 넣어둔다.


명지가 집에 돌아오자 순자는 간식으로 머핀과 우유를 챙겨준다. 그리고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 명지의 눈을 바라본다. 순자는 조용히 눈물을 삼킨다. 아무것도 모르는 명지는 순자를 보고 웃는다. 순자는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아낸다.


저녁이 되고 명지 옷을 갈아입힌 후 침대에 눕힌다. 명지가 잠들고 순자는 밧줄을 넣어놓은 서랍을 연다. 밧줄 옆에는 각종 통장들과 도장이 보인다. 순자는 밧줄만 조용히 들고 나와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쪽지에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간다.


‘30살, 오명지. 제 딸을 부탁합니다. 안방 두 번째 칸 서랍에는 통장이 있습니다. 명지를 위해 사용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



다음날 옆집 이웃 아주머니가 밑반찬을 가져다주러 순자네 집 문을 두드린다. 문은 굳게 닫혀있다. 며칠 동안 인기척이 없자 걱정된 이웃은 경찰서에 연락한다. 출동한 경찰의 눈에 보이는 건 침대에 누워있는 순자와 과자를 먹고 있는 명지 그리고 주방 식탁 위에 올려진 쪽지 한 장이다.

이전 22화 #21 불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