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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Oct 05. 2023

#23 가족

소설 연재


상담실에 재인과 30대 남성이 보인다. 재인이 묻는다.


“그럼 가족분들 외에 다른 조문객은 받지 않으신다는 말씀이시죠?”

“네, 빈소도 하루만 사용해서 소규모 가족장례로 치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댁에서 주무시고, 이튿날인 내일 장례식장으로 바로 오시면 됩니다. 작게 분향실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입관은 내일 9시에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



다음날 입관실에서 재인이 유가족들에게 안내한다. 가족들 앞에는 60대로 보이는 남성 고인이 누워있다.


“자, 이제 고인을 직접 보면서 이야기하실 수 있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마음에 담아뒀던 이야기나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이야기 또 기뻤던 이야기와 사랑했던 이야기. 고인이 마음 편히 가실 수 있도록 한분씩 목소리를 들려주시면서 고별인사 하시길 바랍니다.”


아들이 고인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연다.

“아버지,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했어요. 제 아버지가 아버지셔서 참 행복했어요.”


아내가 고인의 다리 쪽을 만지며 말을 잇는다.

“당신… 우리랑 조금 더 시간 보내다 가지… 뭐가 급하다고 이렇게 일찍 가요…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고… 고마웠어요… 내가 부족했던 게 있다면 당신이 이해해 줘요…”


마지막으로 딸이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한다.

“아빠… 그동안 너무 고생하셨어요. 제가 이제 효도해드리고 싶었는데… 아빠… 하늘나라에 가서는 편히 쉬세요… 아빠… 고마워요…”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하지만 그 어떤 입관식보다 따뜻한 공기가 흐른다. 재인은 기분이 이상하다. 큰 울음소리 없이도 이렇게 충만하게 고인을 애도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입관식이 끝나고 재인은 가족들을 분향실로 안내한다. 그리고 다시 나와서 복도 안쪽 간이 의자에 잠깐 앉는다. 가족들이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가 새어 나온다.


“어머니, 그동안 아버지 간병하시느라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아버지도 어머니께 많이 감사해하실 거예요.”

“아니다, 내가 뭐 특별 한 것도 없는데.”

“고생하신 건 맞죠. 엄마 정말 고생 많았어요. 아빠도 이제 고통 없는 곳으로 가셨으니까 편하실 거야.”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아내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그리고 아들이 다시 말한다.


“그래도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이렇게 가족장으로 작게 장례를 치르기 잘한 것 같아요. 아버지를 가장 많이 알고 추억할 수 있는 가족끼리 조용히 이렇게 보내는 것도 참 좋네요. 편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고요.”


아내와 딸이 이어서 말한다.

“그래도 엄마는 좀 아쉽기는 해. 일반 장례로 치렀으면 조문객들도 많이 오고 아버지도 더 행복해하셨을 텐데.”

“그래도 아빠가 원하신 방식이니까, 우리가 이렇게 아빠 추억하는 걸 더 좋아하실 거야.”


아내는 딸을 쳐다보며 말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럴 거예요. 엄마.”


재인은 입가에 흐뭇 미소를 살짝 머금으며 일어서서 사무실로 향한다.



***



띠링.


24세 문동준의 휴대폰 알림이 울린다. 동준은 알림 소리를 듣지 못하고 고깃집에서 한참 불판을 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다. 자정이 되고 동준은 식당을 마감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휴대폰을 확인한다.


‘당신은 3일 뒤 2022년 9월 21일 죽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죽는 날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3일 동안 죽음을 준비하세요.’


동준은 작은 원룸에 들어서서 신발을 벗고 곧장 침대에 드러눕는다. 다시 휴대폰을 들어 이메일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어서 모바일 통장 잔고를 확인한다. 2,000만 원 남짓이 있다. 동준은 같은 보육원에서 자란 한 살 동생 민혁에게 전화를 한다.


“민혁아, 내일이랑 모레 이틀 비워놔. 주말 동안 형이랑 놀자.”



***



다음날 동준은 민혁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 데리고 간다.


“형, 여기는 왜?”

“그냥 따라와.”


동준은 프런트 데스크에서 체크인을 하고 동준을 스위트룸으로 데려간다. 민혁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창가로 간다.


“와… 형… 서울이 한눈에 다 보여…”

“민혁아 우리 이틀 동안 신나게 놀자.”

“형 같은 짠돌이가 웬일이야. 너무 큰돈 쓰는 거 아니야?”

“괜찮아, 일단 우리 점심부터 먹으러 가자.”


뷔페식당으로 내려민혁과 동준은 접시에 음식을 하나씩 담는다. 각자 커피도 한잔씩 내려 자리에 앉는다. 다양하고 화려한 음식을 맛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와, 배부르다. 민혁아 많이 먹었냐?”

“응, 형. 너무 맛있어. 지금 배 터질 거 같아.”

“그럼 됐어, 우리 올라가서 낮잠이나 한숨 자자.”


방으로 올라온 동준과 민혁은 넓은 방에서 대자로 드러눕는다.


“민혁아…”

“응, 형.”

“너는 부모가 있었으면 어떨 거 같냐?”

“음… 모르지… 난 있어보질 않았으니까.”

“민혁이 너는 아예 기억이 없다고 했나?”

“응, 나는 전혀.”


동준은 고개를 잠깐 돌려 민혁을 바라본다.


“하긴 나도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갑자기 왜 그래 형?”

“그냥. 부모가 있었으면 어떨까 하고. 어떤 부모였을까. 부모랑 같이 살았으면 내 인생이 더 나았을까… 아니면 더 힘들었을까…”

“음…”


둘은 답이 없는 대화를 나누다 슬며시 잠에 빠져든다. 두어 시간이 지나고 동준이 눈을 뜬다. 민혁은 이미 일어나서 물을 한잔 마시며 휴대폰을 보고 있다.


“민혁아, 벌써 일어났어? 더 자지. 너도 매일 아르바이트하느라 피곤할 텐데.”

“형, 나도 잘 잤어. 이따 또 밤에 자면 되지.”


동준과 민혁은 호텔에서 수영도 하고 스파에서 마사지도 받으며 여유로운 주말을 보낸다. 마지막날 밤 동준은 최고급 와인과 안주를 룸서비스로 주문한다. 둘은 창가에 앉아 야경을 구경하며 술잔을 기울인다. 그러다 동준은 옷장 가방으로 가서 봉투를 하나 꺼낸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민혁에게 건넨다.


“민혁아, 이거 받아.”

“이게 뭐야, 형?”

“현금으로 천만 원이야.”

“...”


민혁은 당황하며 봉투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민혁아, 이거 받아서 통장에 잘 넣어둬.”

“형, 갑자기 왜 그래… 걱정되게…”

“민혁아, 형이 당분간 어디 다녀올 거야. 형 없어도 지금처럼 씩씩하게 너 몫 열심히 하면서 살아. 알겠지?”

“형…”


동준은 와인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민혁아…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보육원에서 지낼 때부터 지금까지 너를 내 친동생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너 덕분에 나도 이 세상에 의지할 사람 하나 있어서 참 든든했다. 고마워.”

“형, 왜 그래. 나도 마찬가지지. 아니, 형이 오히려 나를 더 챙겨줬지. 형… 무슨 다른 생각하는 거 아니지? 갑자기 왜 그래… 나 무서워… 그리고 나 이 돈 안 받아. 못 받아. 형이 힘들게 아끼면서 모은 돈을 내가 어떻게 받아.”

“민혁아, 형 부탁이야. 이 돈 잘 챙겨놓고. 진짜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 자, 받아 어서.”


민혁은 알듯 모를듯한 표정으로 동준을 빤히 바라보다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둘은 가만히 창가를 바라본다. 유독 까맣고 깨끗한 밤하늘에는 별들이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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