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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Oct 05. 2023

#24 이슈

소설 연재


재인은 퇴근 후 집에서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엄마가 요리한 고등어찌개를 중심으로 맛있는 밑반찬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이 식탁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재인과 아빠가 인사하고 엄마가 대답한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여보.”

“차린 건 많지만, 조금만 드세요.”


아빠가 빙그레 웃으면서 엄마를 쳐다본다. 그리고 재인과 번갈아가며 말한다.


“당신은 참 독특해. 아니 도대체 그런 말장난을 어떻게 생각해 내는 거야?”

“아빠, 저건 엄마 취미활동이잖아요. 계속 자기계발하시나 보죠. 헤헤.”

“그래, 맞다. 하하”


그리고 엄마가 재인에게 묻는다.


“재인아, 요즘 준영이랑 잘 만나고 있어?”


재인이 고등어 살 점을 크게 한 덩이 집어서 입에 넣는다.


“응, 엄마. 잘 만나고 있지.”

“어떻게 잘 만나는데?”

“엄마, 그 음흉한 눈빛 좀 안 하면 안 돼?”


아빠도 재인을 쳐다본다.


“왜, 아빠도 궁금한데.”


엄마는 고등어 뼈를 발라 아빠 밥 위에 살 한 점을 올려준다.


“나 다 컸어. 할 거 알아서 다 해. 왜.”

“알아서 뭘 하는데? 응? 엄마도 좀 듣자. 요즘 애들은 어떻게 연애하는지.”

“낮에 할 거, 밤에 할 거 알아서 다 찾아서 야무지게 잘하지. 엄마 딸이 또 누구야.”


아빠가 다시 말을 얹는다.


“하이고, 퍽이나. 너 연애 제대로 하는 게 이번이 처음 아니냐? 준영이나 되니까 너 같은 성질 받아주는 거야. 너 잘해라, 준영이한테.”


재인이 아빠를 웃으면서 째려본다.


“아빠는 누구 아빠야, 도대체. 어우, 엄마 아빠 이제 그만하시고 식사들 하세요.”

“하하, 그만 놀릴게. 알았어.”


이어서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말한다.


“하하. 그래, 당신이 좀 심했다.”

“아니, 시작은 당신이 했잖아.”


재인은 계란말이를 케첩에 듬뿍 찍어 먹는다. 그녀가 입을 오물거리며 말하자, 아빠와 엄마도 대화를 이어간다.


“근데 준영 오빠는 연락 안 되는 걸 되게 힘들어해요.”

“그래? 네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런데, 저도 연락을 아주 안 하는 편도 아닌데… 아무튼 연락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

“아직 연애 초기라 그럴 수도 있어. 연락 잘해줄 때, 복 받은 줄 알아.”

“음… 그런가?”


저녁 식사가 끝나고 각자 막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거실로 간다. 엄마는 소파에 앉고 재인은 엄마 다리를 베고 눕는다. 아빠는 바닥에 앉아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켠다. 채널을 돌리다가 시사 프로그램 ‘그것을 알아보자’에서 멈춘다. 사회자 멘트가 들린다.


“최근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사망 프로필'이라는 명칭의 온라인 서비스에 대한 게시글들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데요. 죽는 날짜를 3일 전에 미리 알려준다는 이 서비스에 대한 내용이 공개돼 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항간에는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운영하는 사이트라는 소문도 있는데, 이 서비스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재인은 순간 놀란 마음을 감추고 모른 척 계속 시청한다. 프로그램에서 실제 후기글을 올린 당사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장면들을 순서대로 송출한다. 취재진이 먼저 질문하고 여러 제보자들의 모습이 비춰진다.


“작성하신 내용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저랑 제 동기가 같이 이 서비스에 가입했었어요. 그런데 얼마 뒤 제 동기가 이 서비스를 통해 이메일 알림을 받았거든요. 3일 뒤 죽는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내용이었어요. 저희는 다 장난이라 생각했죠. 처음부터 그냥 호기심에 가입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그 동기가 3일 뒤에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갔어요…”


“제 아내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데 죽기 며칠 전부터 이상한 소리를 했어요… 마치 곧 없어질 사람처럼 제게 이런저런 말들을 했죠. 저희 딸에 대한 부탁도 했었고 또 저에게도 미리 하고 싶은 말들을 갑자기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죽고 나서 우연히 카드 명세서를 확인했는데 ‘사망 프로필’ 서비스로 빠져나간 금액이 매달 청구되었더라고요.”


“제 누나가 지난달에 죽었어요. 죽기 3일 전 가족들을 모두 불러놓고 자기가 3일 뒤에 죽는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어요. 그리고 이미 누나가 암으로 투병 중에 있었기 때문에 그냥 마음이 갑자기 약해져서 그런 말을 하나 보다고… 그렇게만 생각했죠. 그런데 정확히 3일 뒤에 누나가 죽었어요. 그때 누나가 지나가듯 한 말이 기억나요. 사망 프로필이라고. 어떤 서비스를 가입했는데 거기서 죽는 날짜를 미리 알려줬다고요.”


재인은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일어선다.


“아빠, 엄마 저는 오늘 조금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재인은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들고 실시간으로 그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화면 접속한다. 침대 끝에 어정쩡하게 누워서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계속 시청한다. 진행자가 말한다.


“실제로 이 서비스를 통해서 죽는 날짜를 3일 전에 알 수 있었다는 제보자들의 인터뷰가 진짜 사실일까요? 제보자들에게 전달받은 이메일 내용은 다음과 같이 모두 동일한 내용이었습니다.”


‘당신은 3일 뒤 0000년 00월 00일 죽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죽는 날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3일 동안 죽음을 준비하세요.’


갑자기 휴대폰에 메시지 알림이 뜬다. 민아의 연락이다.


‘재인아, 괜찮아? 너무 신경 쓰지 마. 다들 믿기 어려운 일이라 신기해서 그럴 거야. 너 걱정돼서 연락해.’


민아는 유일하게 재인의 비밀스러운 능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



3년 전 재인은 민아의 동생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재인아, 미안한데 우리 영화 보기 전에 잠깐 내 동생 만나도 돼? 뭐 좀 전해줄 게 있어서.”

“그래.”


곧이어 민아의 동생이 멀리서 걸어왔다.


“이거 밑반찬인데 엄마가 전해 주래. 너 자취해도 집에 자주자주 좀 들러라.”

“아, 알겠어. 누나, 고마워.”

“인사해, 여기는 내 친구 재인이, 알지?”

“안녕하세요.”

“응, 안녕.”


동생과 헤어지고 민아와 재인은 영화를 보러 걸어가는 중이었다. 재인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민아 동생의 머리 위에 떠있던 숫자가 너무 가까운 날짜였고 또 다른 사람들과 달리 숫자가 두 개로 보였기 때문이다. 191028 그리고 191101. 정확히 5일 그리고 9일 남은 날이었다. 재인은 가족도 모르게 자신의 비밀을 지켜왔다.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인 민아의 동생이 죽는 날짜를 보고 모른 척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영화관에서 2시간 넘게 앉아 있었지만,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상영이 끝나고 재인은 민아에게 조심스럽게 말한다.


“민아야… 오늘 날씨도 좋은데 우리 여기 옆에 공원 산책이나 잠깐 할까?”

“좋지, 그럼 산책 좀 하다가 우리 저녁 먹으러 가자.”


사람이 한적한 나무 아래 벤치 쪽에 자리를 잡는다.


“민아야…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 믿어줄 수 있어?”

“응? 어떤 거?”

“어… 내가 지금부터 너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네가 믿어줬으면 좋겠어서…”

“알겠어, 뭔데 이렇게 뜸을 들여?”


재인이 침을 꼴깍 삼키며 민아를 보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민아야… 사실… 내가 사람들 죽는 날짜가 보여…”

“무슨 말이야, 그게?”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어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죽는 날짜가 같이 보여…”

“야, 장난치지 마.”

“장난 아니야.”


재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민아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민아야, 나 정말 장난 아니야. 그리고 이 말을 너한테 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하는 게 맞는지, 안 하는 게 맞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 우리 가족도 모르는 사실이야… 그런데… 너한테만 처음 말하는 거야…”

“응… 알겠어…”

“민아야…”

“응… 말해…”


재인이 잠깐 침묵을 지킨 후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민아야… 있잖아… 너 남동생 말이야…”

“응, 재한이. 재한이 왜?”

“재한이가… 5일 뒤에 죽을 것 같아.”

“...”

“네가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는데… 믿어주면 좋겠어…”

“아니.. 재한이가 왜…”


민아는 어리둥절하고 또 무서운 감정 그 사이 어딘가의 표정을 지으며 재인을 바라본다. 재인이 대답한다.


“왜 죽는지는 나도 잘 몰라… 그냥 나는 죽는 날짜만 보여… 아까 재한이 잠깐 봤잖아… 그런데 재한이가 이번 달 10월 28일에 죽는다고 보여…”

“...”

“그런데 있잖아… 지금 내 말 안 믿어도 되는데… 나중에 혹시라도 후회할까 봐 말하는 거야… 그리고 믿든 안 믿든 내가 한 말에 대해서는 비밀 지켜줘… 민아야 부탁해…”


민아는 재인을 보고 혼란스러운 듯 대답한다.


“알겠어… 지금 근데 이게 무슨 상황인지 나는 잘 모르겠어 재인아… 재인이 네가 무슨 소리하는지 사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일단 비밀은 꼭 지킬게.”

“민아야.. 근데… 우리 외할머니도 내가 돌아가시는 날짜를 미리 알았어. 그리고 내가 예상한 그날 정확히 돌아가셨어… 민아 너 그냥 나한테 한 번 져준다 생각하고 집에 돌아가면 재한이 불러서 가족들과 같이 시간 꼭 보내.”


그리고 재인은 다시 한번 숨을 고른 후 말한다.


“그런데 지금 나도 조금 혼란스러운 게… 재한이는 특이하게 날짜가 두 개가 보여… 일단 가장 가까운 날짜가 10월 28일고, 그다음 보이는 숫자가 11월 1일이야. 그런데 나도 이렇게 숫자가 두 개로 보이는 경우는 처음이라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어.”



***



며칠 뒤 10월 28일 새벽 민아한테서 전화가 왔다.


“흑… 흑흑… 재인아… 재한이가… 오토바이 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지금 병원이야…”

“민아야… 어떡해…”

“재한이 지금 혼수상태야…”

“민아야… 내가 오늘 야간 근무라 일 끝나자마자 너 있는 곳으로 갈게.”



***



병원 중환자실 앞 의자에 민아가 앉아 있었다. 재인은 뛰어가서 민아를 안는다.


“재인아… 재한이가…”

“민아야… 더 이야기 안 해도 돼…”


재인이는 민아를 더 꼭 끌어안았다.



***



며칠 뒤 11월 1일 민아로부터 문자 알림이 왔다. 아래에는 부고 안내도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재인아… 재한이… 결국 못 버티고 갔어… 하늘나라에…


<부고>

故 고재한 님

빈소: 바오 장례식장 102호실

발인: 2019년 11월 3일 오전 9시

장지: 그루잠 추모공원’



***



재인은 침대에서 일어나 이어폰을 뺀다. 그리고 책상 의자에 앉아서 민아와 계속 문자를 주고받는다.


‘재인아, 아무튼 괜찮은 거지?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리고 원래 그것을 알아보자 프로그램이 내용을 자극적으로 뽑잖아.

‘민아야, 먼저 연락 줘서 고마워… 사실 나도 지금 그 프로그램 보다가 놀라서 방에 들어왔어…’

‘재인아, 나는 네가 분명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한테 힘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 나도 그때 네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럼… 재한이랑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했을 거야… 나처럼 너한테 그리고 사망 프로필 서비스에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거야. 난 니 편인 거 알지? 힘들면 나한테 연락해. 꼭.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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