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지안 May 27. 2023

자랑하고 싶은 순간을 꿈꾸며

올해 1학년 담임을 맡았다. 우리 반에는 울트라급 막강 파워인 A군, B군, C군이 있다. 한 학급에 그런 아이가 한 명만 있어도 담임은 1년을 힘들게 보낸다. 그런데 세 명이나 있다. 그 아래 단계 슈퍼급도 세 명이다. 남학생 아홉 명 중에서 온전하게 학교생활에 참여하는 아이는 딱 한 명뿐이다. 지금까지의 교직 생활 중에서 제일 난이도가 높은 아이들을 끌고 가고 있다.    

  

밥을 역대급으로 늦게 먹는 아이가 있어서 학기 초에는 그 아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 있다가 같이 교실로 돌아왔다. 먼저 교실에 온 아이들 중 남학생들이 장난감을 사방으로 던지고 놀아서 여기저기 장난감이 흩어져 교실 바닥이 아수라장이 되어 있곤 했다. 블럭도 던지고 공깃돌도 던지고 조립 장난감도 던지고 뭐든지 여러 곳으로 뿔뿔이 던져 놓았다.   

  

이게 나 혼자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구나 판단 하에 학부모님들께 읍소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행동도 처음 하는 일이다. 그동안 학급 운영을 하며 밴드에 사진을 올려 아이들의 모습은 보여드려도 딱히 할 말이 있지는 않았다. 올해 1학년은 예외다. 학부모님들이 학교에서 하는 아이들의 양상을 반드시 아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부모님들 반응도 각기 다르다. 전화로 아이의 행동을 물어보시며 신경 쓰는 분이 있고, 자기 아이 말만 듣는 분도 있다. 자기 아이 말을 우선시하는 분은 당연히 울트라급 파워 0군의 부모님이다. 여기서 느끼게 된다. 아이는 절대 부모의 범주를 벗어나서 성장하지 않는다. 아이는 부모의 말과 행동을 보며 복사와 붙여넣기로 자란다. 부모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순간이다.   

   

아이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갑자기 솟아난 존재도 아니다. 나름대로 자기네 가정의 울타리에서 지금까지 길러진 존재이다. 부모와 함께 생활하며, 부모의 말을 듣고, 부모의 행동을 보며 그것을 체화해 가는 것이다. 내 자식이 나를 보고 따라 하고 있다고 의식을 한다면 모든 부모들이 조금이라도 더 낫게 언행하지 않을까?   

  

난 자식들이 어릴 때 아이들이 나의 감독관이라고 생각했다. 올바르게 키우고 싶어서 올바르게 행동했고 행여 어른들의 대화로 아이들의 생각이 오염될까 봐 단 한 번도 아이들 앞에서 어른의 현실적인 대화나 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지인은 내가 너무 열심히 키워서 지금의 젊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부모의 자연스러운 언행, 일찍 노출된 현실도 사실 나름대로 공부가 되긴 할 것이다. 너무나 급격하게 달라진 요즘 1학년 어린아이들의 실태를 보며 굳이 그 원인을 부모들에게서 찾는 내가 잘못된 것일까?     


나도 마음이 무겁다. 내가 담임을 맡은 1년간은 스스로 반쪽짜리 부모라는 신념으로 지금껏 살아왔고 그렇게 아이들을 가슴으로 품었다. 아이들은 그 마음을 느껴주었고 쑥쑥 잘 자라주었다. 내가 잘해서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그동안 좋은 아이들을 만난 것이었던 모양이다. 이제 최고의 위기를 만나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중이다. 이 도전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사랑스럽고 차분한 아이들로 자라나게 할까, 깊은 고민이 그림자처럼 날 붙들고 있다.    

  

현재 있는 곳에서 최고를 하지 않고는 이직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의 경력을 무색하게 할 만큼의 위기와 도전을 만나 나는 노력 중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내가 글자욱을 남기는 어딘가에 우리 1학년 아이들의 성장을 자랑하는 그 순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20대는 벚꽃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