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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opal Jan 16. 2019

[책] 공간에 대해

공간의 기분,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공간의 기분(김종완)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읽은 책. 
공간 디자인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세히 설명한 이 책은,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후 한국에서 브랜드 전략 및 공간 디자인 전문 회사인 종킴디자인스튜디오를 만들어 수장으로 있는 김종완 디자이너님이 쓰셨다. 

책 앞부분 그가 어떻게 공간 디자이너가 되었는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책 전체 중 이 부분이 제일 흥미로웠다. 그의 커리어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학창 시절 때부터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짧지만 꼭 하나의 수필을 읽는 것과도 같았다. 

책 내용은 그가 작업했던 16군데의 공간이 어떻게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디자인으로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 나온다. 공간 디자인이나 건축 등에는 완전 문외한이라, 이 책을 읽으며 한 공간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어가는지도 얼핏 알게 되었다. 

개인 사무실, 쿠킹 클래스, 반려동물 호텔부터 고급 브랜드의 매장까지 각 공간의 특색과 브랜드의 이미지에 맞게 디자인하는 그의 철학이 매우 멋있다 생각 들었다. 
요새는 경험을 판다라는 말이 비교적 흔해져서 무엇이 좋은 경험인지 무엇이 그렇지 않은 경험인지 경계선조차 애매해진 것 같다. 물론 좋지 않은 경험을 제공해주려 하진 않겠지만, 그 경험의 특색도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공간이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
김종완 디자이너는 그러한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러한 철학에 맞추어 공간을 디자인하고 있다. 

이는 비단 공간에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 사람을 위하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읽었으면 하는 좋은 책이다. 



공간은 사람을 움직인다(콜린 엘러드)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공간의 기분과 비슷하면서 다른 책이다. 
공간은 최종적으로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결론에는 똑같이 도달하지만, 콜린 엘러드는 공간 디자이너가 아닌 인지신경과학자이다. 
즉, 심리 지리학(psycho-geography)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챕터는 크게 '공간 속의 자연 / 사랑의 장소 / 욕망의 장소 / 지루한 장소 / 불안한 장소 / 경외의 장소 / 공간과 기술'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챕터의 주제에 맞게 어떤 공간과 지리를 맞닥뜨렸을 때 각각의 감정을 느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람은 자연환경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긴장이 완화되는데, 이는 비단 진짜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미디어 등 다른 매개체를 통해 가짜 자연환경을 보더라도 마찬가지의 심리가 적용됨을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조건이 있는데, 원체 자연환경에 많이 노출이 되는 상황에서 일 혹은 생활하는 사람들은 가짜 자연환경을 보게 되면 큰 반응이 없지만 노출이 되지 않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가짜 자연환경을 보았을 때 실제 자연환경을 본 것처럼 뇌가 반응한다는 점이었다. 

또한 사람은 어떠한 디자인의 건물에 이끌리는지,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일으키는지 등 꽤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이 다뤄지고 있다.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저자의 이력처럼 뇌과학과 심리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70%이다. 
그래서 유명한 뇌과학자인 정재승 님이 감수를 해주셨다. 

단순히 '좋아해서' 혹은 '이끌려서' 특정한 장소를 좋아하게 됐다는 취향설보다는, 우리의 뇌가 근본적으로 어떤 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굉장히 논리적으로 풀어낸 책이라 나도 모르게 읽는 내내 오, 하며 고개를 수시로 끄덕거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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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기분에서는 감성과 철학이,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에서는 과학과 이론이 들어가 있다. 
이 두 가지 책을 다 읽으면 공간에 대한 마스터링이 다 될 것 같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 
감성과 철학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고, 과학과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평균을 무조건적으로 맹신할 수도 없기 때문. 

하지만 두 책 모두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위한 공간에 대해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람을 위한'이라는 말이 얼마나 뻔하고 흔하게 쓰이는지 알고 있지만, 
최소한 이 두 저자는 진심을 다해 이야기하고 있다. 

공간이 나에게 주는 가장 큰 매력은, 지속성이다. 
물론 경험과 추억 등 감성적인 측면도 크지만 공간은 최소한 (지어진 후 한 명도 들어오지 않은 채로 철거되지 않는 이상) 꾸준히 지속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많은 기억을 선사한다. 
책이나 영화 혹은 음악과 미술과도 비슷한 맥락일지 모르겠지만 공간은 조금 다르다. 
책, 영화, 음악, 미술과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것도 결국은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어떠한 공간에서 행해지느냐에 따라서도 좋은 책이 누군가에게는 슬픈 책이 될 수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 혹은 음악과 미술이 아무런 잔상도 남기지 않은 채로 흐트러져 버릴 수도 있다. 
그것은 공간과, 그 안에서 겪는 시간의 경험 차이일 테다. 

최근 코엑스나 롯데타워 같은 대형 복합 문화공간뿐만 아니라, 을지로, 종로, 성수동, 망원동 등 다양한 동네에서 소규모 자본으로 이루어진 여러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테마도 제각각, 콘셉트도 제각각이다. 
대표적인 동네로 경리단길이 거론되며 젠트리피케이션의 큰 피해를 입은 상권으로 부정적인 시각도 늘어나지만 위 언급한 핫한 동네들은 여전히 언제 가도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오히려 언제 없어질지 몰라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꾸준히 더 다양한 공간들이 생겨나, 지속 가능한 훌륭한 곳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 

여하튼, 공간에 대해 정반대의 시선에서 바라본 두 책을 읽고 나니 앞으로는 좋은 공간에 가면 핸드폰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더 차근히 둘러보고 마음껏 그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여유를 선물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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