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는 미스터리 한 그래피티 작가이다. 그의 신상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그의 나이나 사는 곳 혹은 인종까지로 모두 추측에 불과하다. 한 가수가 공연을 할 때마다 그 지역에 뱅크시 그림이 나타난다며 그가 가수일 것이라는 재밌는 설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정확히 밝혀진 건 없다.
그래피티가 불법인 해외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당당히 활동하는 것도 힘들뿐더러 그의 그림은 기존 미술계와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는 경향이 짙어, 그가 누군지 드러나게 되면 여러 모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다양한 방법으로 그의 센스가 더해져 미술계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여러 운동(?)을 했는데, 우선 그의 다큐멘터리 두 개를 보고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1.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스포 X)
이 다큐멘터리는 뱅크시가 직접 만든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이미 제목만으로, 뱅크시가 기존 미술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살짝 엿볼 수 있다.
뱅크시 본인에 관한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그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는 그의 친구 '티에리'의 이야기를 통해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티에리는 카메라와 영상 촬영을 사랑하는 인물로서 우연한 기회로 그래피티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그 짜릿함에 반해서일까. 그는 점차 다양한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소개받아 그들의 작업 과정을 촬영하게 되고 그러다 미스터리한 인물, 뱅크시와 만나게 된다.
티에리는 이 이후, 더 이상 아티스트들을 촬영하는 카메라 맨이 아니게 된다. 뱅크시와 두터운 친분을 쌓은 그는 지나가듯이 흘린 뱅크시의 한 마디로 인해 인생이 바뀌게 된다. 아티스트를 사랑한 이가 스스로 아티스트를 자처하게 되고, 뱅크시가 그렇게 싫어하던 미술계 자본주의 시장에 코어로 우뚝 서게 된다. 이 또한 성장이라면 참으로 커다란 성장일 테다. 이 '성장'에 대해 뱅크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다큐멘터리 마지막 부분에 그가 직설적으로 언급한다.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는 아직 확실한 답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영화다. 2010년에 개봉한 이 다큐멘터리는 뱅크시가 연출한 첫 작품이었음에도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2. 뱅크시를 구하라(스포 O)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를 보고 난 후 뱅크시에 대한 관심이 커져, 넷플릭스에 별생각 없이 검색창에 뱅크시라고 쳤다가 발견한 다큐멘터리. 이 다큐는 마치 자본주의에 반발하는 뱅크시와 그런 그를 자본주의 세계로 끌어들이려는 세력과의 치열한 전쟁영화와도 같았다. 뱅크시의 얼굴은 당연히 나오지 않고, 그의 반대세력인 케슬러라는 분이 주로 등장한다.
뱅크시가 그린 그림을 벽 통째로 떼어내 경매에 내놔 어마어마한 거금을 벌었던 분이다. 그리고 이 수익금은 뱅크시에게 가지 않았다. 반발하는 뱅크시에게, '본인도 남의 사유재산에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를 비난하는 것은 모순적인 일'이라고 대응한다. 심지어 뱅크시가 본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케슬러.
이 분과 또 다른 대립점에서 뱅크시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가 나온다.
브라이언은 뱅크시가 그림을 그린 건물에 정부가 그림을 없애라는 명령을 내리자, 건물주와 상의해 벽을 떼어내 미술관에 길이 보존하려 노력하는 분이다. 70만 달러에 이 그림을 사겠다는 개인 콜렉터의 요청도 무시하고, 뱅크시의 예술성을 널리 알리려는 취지로 이 그림을 전시해줄 수 있는 미술관을 찾아 고군분투한다.
물론 브라이언을 향한 비난도 많다. 그림을 그냥 뒀어야 한다는 둥, 없어지면 없어지는 대로 뒀어야 한다는 둥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뱅크시의 그림이 한 점이라도 남아 누구나 오래 볼 수 있다고 하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이 또한 뱅크시의 직접적인 동의는 받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였는지, 나름 좋은 취지에 모순이 생긴다. 미술관 측에서는 뱅크시가 직접 그렸다는 증명이 있어야 그림을 걸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곧 뱅크시가 스스로 나 불법 행위했어요 라고 직접 시인하라는 것과도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술관을 찾지 못한 브라이언은 그림을 투어 시키기로 결정하고, 전시에 두 가지 조건을 건다.
1. 입장료가 공짜일 것
2. 그래피티의 가치를 높일 것
다큐멘터리 전체적으로 케슬러와 브라이언은 정반대 입장에서 뱅크시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정작 뱅크시 본인은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가 직접 인터뷰를 하진 않았지만, 아래 말들을 통해 뱅크시의 철학을 확인할 수 있다.
Imagine a city where graffiti wasn't illegal.
그래피티가 불법이 아닌 도시를 상상해봐.
A city where everybody could draw whatever they liked,
자기가 좋아하는 건 뭐든 그릴 수 있고,
where every street was awash with a million colors and little phrases.
도시의 거리를 다양한 색과 짧은 글로 가득 차 있지.
Where standing at the bus stop was never boring,
버스 정류장에 서 있어도 지루하지 않고,
a city that felt like a party where everyone was invited.
모두가 파티에 초대받은 것처럼 느껴지는 도시
Imagine a city like that...
그런 도시를 상상해봐.
and stop leaning against the wall
그리고 벽에 기대지 마
- it's wet.
페인트가 마르지 않았거든.
- BANKSY
다큐멘터리 맨 마지막에 나오는 이 말들을 보면서 그가 그리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가 생각이 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뻔했다. 뜬금없는 말이지만 유명한 철학자 칸트는 미학은 곧 유쾌함이라고 했다. 유쾌함을 사서, 자기만의 소유로 두려고 하는 행위는 나쁜 일은 아니지만 어쩌면 유쾌함을 있는 그대로 보고 함께 즐기는 것이 그 유쾌함을 만든 이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나에게 뱅크시는 실체모를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아닌 철학자가 되어 버렸다.
3. 기타 뱅크시의 센스 있는 행동들
https://www.youtube.com/watch?v=7mxJT2uXtrE
위 두 개의 다큐멘터리에서도 확인했듯이 뱅크시의 작품 가격과 인기는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는 그의 작품을 길거리에 단돈 60불에 파는 깜짝 이벤트를 벌였다. 오전 일찍 장사를 시작하지만, 사람들은 무심하게 지나친다. 그러다 오후 3:30분, 드디어 한 여성이 그의 작품을 구매한다. 50% 할인된 가격으로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eXKE0nAMmg4
올해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 뱅크시의 <Girl with balloon> 작품이 경매에서 낙찰되자마자 작품은 곧 기다렸다는 듯이 잘게 잘린다. 그는 혹시나 이 작품이 경매에서 팔릴 때를 대비해 미리 분쇄기를 설치해 놓았다고 밝혔다. 낙찰 금액이 무려 한화로 15억 4천만 원에 달했는데, 낙찰자는 같은 가격에 찢긴 그림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소더비의 현대미술 책임자 알렉스는, '경매 도중 창조된 역사상 첫 예술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https://www.instagram.com/p/BomXijJhArX/?utm_source=ig_embed
사건 이후 뱅크시가 올린 인스타그램 영상과 그의 말.
The urge to destroy is also a creative urge - Picasso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 또한 창조의 욕망 - 피카소
또한 지난 2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원격 조종할 수 있는 배를 만들고 있으며 배의 무게를 비슷하게 맞추는 사람에게 이 배를 넘길 것이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https://www.instagram.com/p/Bq2Zmo9lMmh/?utm_source=ig_web_button_share_sheet
무게를 맞추기 위해 2파운드, 한화 약 3천 원의 돈을 내야 하며 모든 수익금은 난민 지원에 쓰일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