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_12
나 책 좀 읽어~라고 말하는 사람들..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문학과 비문학을 막론하고 적어도 하루끼와 히가시노를 알고 있다면 그것으로 그 사람의 독서경험의 기준이 되는 것 같다. 한국으로 빗대어보면 조정래, 황석영 같은 존재같이 느껴져서 일 거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판타지 소설 작가로 유명하다.
용의자 X의 헌신, 분신, 환야 등이 대표작인데, 특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을 만큼 큰 관심을 받은 책이다. 보통 판타지 소설이라고 하면 좀 잔인하기도 하고, 때로는 숨 막히는 긴장감을 상상하게 되는데, 히가시노는(특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죽음이나 폭력적인 부분이 아닌 잔잔하게 흐르는 사랑을 바닥에 깔고 있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나중에 보면 어떤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기본적인 판타지 소설의 스토리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만, 히가시노는 그 연결고리들 마저 따뜻함으로 짜여 있다.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기에, 히가시노의 소설은 언제나 읽는 재미가 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어설프고 인간적인 3명의 친구들로 이뤄진 잡 도둑 일행이, 우연하게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곳에 숨어 들어가면서, 과거로부터 날아오는 편지를 접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잡화점의 주인인 할아버지가 생전에 고민상담을 해주었던 이야기들이 판타지적으로 이들에게 이어지면서, 그 고민을 담은 편지 주인들의 사연들에 대한 이야기가 과거와 미래를 넘나 든다.
전반부에서 가볍게 읽었던 편지 속 고민들의 사연들이, 후반부에서는 그들이 서로 연관된 이야기를 풀어주면서 더욱 재미를 더해간다.
어설픈 3명의 잡 도둑이 전달한 답장의 내용에 의해, 과거의 사람들의 운명이 바뀌어버리는 판타지 소설이다 보니, 자칫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내용으로 치부해버리고, 의미 없이 책을 덮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민을 담아 상담을 요청한 사람들이 가진 어떠한 중대한 결정은 이미 그들에게 정답이 있음을 보여주기에, 잡 도둑 3인의 상담이 그리 절대적으로 보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내 인생에서 누군가의 조언이 큰 힘이 되긴 하지만, 결국 인생의 갈림길에서 걸어 나가야 하는 방향은 내가 결정한다는 교훈을 따뜻하게 전달해주는 것이 책에서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스마트폰이며 SNS의 발달로 손편지가 무척이나 귀해진 세상에서..
때로는 우연히 얻게 되는 선물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 건조한 삶에서..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음 따뜻해지는 기적'이라는 것을 기대하고 늘 상상하며,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