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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실장 Jun 17. 2021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2021_07(스물두 번째 서평)

가끔 분에 넘치게도 코스요리 같은 것을 먹을 때가 있다. 

고객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법인카드로 부담 없이 즐길 때도 있고, 좋아하는 후배나 동기들 앞에서 어쭙잖게 허세를 부리고 싶을 때도 있다. 레스토랑에서 플레이팅이 아주 멋스럽게 된 접시를 가져다주며 생전 처음 듣는 음식의 이름과 다채로운 재료를 이용한 조리법을 간단하게 설명을 해줄 때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나 같은 촌스러움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는 사람에게는 음식 앞에서 그 설명이 끝나기까지 어색한 미소와 눈 맞춤을 하는 것이 어색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학습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어쭙잖은 허세를 부려야 하는 자리에서는 더욱더... 


주문에 따라 메인 요리가 스테이크나 스파게티면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참치의 어느 희귀한 부분이기도 하며, 어떤 때는 살짝 덜 익혀진 소의 부드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 메인 요리를 먹기 위해 앞에서 먹었던 요리들은 입맛을 돋우는 훌륭한 애피타이저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막연한 기다림이 되기도 한다. 오히려 나의 경우는 메인 요리의 간절함으로 인해 허겁지겁 빠른 시간에 의미 없이 먹어치우기도 한다. 우걱우걱 스럽게.. 


나에게 단편집은 코스요리와 같다. 단편집 보다는 장편을 주로 읽는 편이긴 하지만, 긴 이야기들에 파묻혀 몇 권을 읽고 난 뒤엔 잠시 휴게소를 들리듯 단편집을 손에 집는다. 특히나, 벽돌같이 두껍고 내용 또한 술술 소화되지 않는 어려운 책을 완독해야 할 때면, 중간에 꼭 한 번씩 쉬어주는 시간을 가진다. 벽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메인으로 섭취하기 위해서, 조금은 가볍고 소화가 잘 되는 애피타이저를 먹듯이..

이번에도 역시 단편집을 펼친 목적은 [쉼]이다. 


김영하 작가가 TV 프로그램에 나와 이름을 알리기 전부터, 그가 내놓는 다양한 메뉴를 좋아했다. SF, 로맨스, 미스터리 등 장르의 벽을 수시로 넘나들고 장편, 중편, 단편 가릴 거 없이 쏟아내는 그의 이야기들을 읽을 때면 잠시 나 스스로가 발랄해짐을 느낀다. 확실히 통념적인 것들을 벗어난 발랄함이 그의 책에는 있다. 


자신을 로봇이라 주장하는 남자와의 만남, 동창과 보낸 예상 밖의 하룻밤 등의 이야기들은, 현재의 우리들 삶 속에 존재하는 재료들을 가지고 신비롭고 절묘하게 만들어낸 뭔가 기이한 맛의 애피타이저들이다. 분명 뭔가 미스터리 한 맛인데, 그 맛들이 나쁘지는 않다. 


단편소설의 정수를 보여주는 김영하의 이야기에서 찐한 여운을 남긴 내용을 남겨본다. 

비 오는 날 비좁은 지하철. 그 안에서 겪는 젖은 우산들의 비린내와 역겨운 군내들을 견디는 한 여자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려본다.


삶이란 별게 아니다. 젖은 우산이 살갗에 달라붙어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나자 한결 견딜만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녀는 그 문구를 계속 되뇌었다. 삶, 젖은 우산, 살갗, 참고 견딘다. 삶, 젖은 우산, 살갗, 참고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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