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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Apr 25. 2023

범종. 쇳물 붓는 날

3년 만에 재개된 작업  

첫 주철장 선생님을 만나고 코로나로 우리가 촬영하는 종의 수출길이 막혔다.

중국으로 가는 종이였는데, 해당 절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다른 종목의 선생님들을 촬영해야 했다.

'다 뜻이 있겠지, 첫 선생님이신데 오래 보려고 그런가 보다'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3년,

저번 달부터 다시 작업이 시작되어서 지난주에 세 번 촬영을 갔었고 이번주 금요일에는 드디어 쇳물을 붓는 날이다. 다른 작업과 다르게 쇳물 붓는 날은 선생님께서 미리 날짜를 정하시고 작업을 하신다. 그래서 직접 나에게 전화를 주시곤 금요일에 쇳물 부을거다라고 일러주셨다.


쇳물 붓는 날이 중요한 이유는 몇 달에 걸쳐 작업한 내형틀과 외형틀이 쇳물 붓는 작업 도중 터져버리면 다시 처음부터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이 날은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흐른다. 영상에 담는 그림들도 정적인 기존의 작업과 달리 분주하고 뜨거운 작업들로 이어진다. 다른 종의 쇳물을 부을 때 답사 겸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해당 절의 스님들이 오셔서 기도를 하기도 하셨다. (대부분의 미디어는 이 장면을 촬영해 간다.)

용해를 기다리는 쇠
쇳물을 만드는 작업 구리와 주석이 녹는다.


첫 작업은 용해로에 쇠를 녹이는 작업으로 시작한다. 1,000도가 넘는 온도,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 정도의 불길이 치솟는다. 어느 정도 쇳물이 녹으면 위에 뜬 불순물을 걸러내 순수한 쇳물에 가깝게 한다.

우리가 촬영한 종은 무게가 20톤 정도 하는데 아마 이곳의 화구를 모두 쓰다시피 할 것 같다. 거세게 치솟는 불길과 다르게 종소리는 점잖다. 아마도 종은 불의 힘에 결코 지지 않고 차분하게 삭이어 불의 기운을 흡수한듯하다. (화를 삭이면 우리도 점잖은 인격이 되려나?)


컷구성.

1. 여러 개의 화구에 치솟는 불길 (full shot)

2. 빠르게 변화하는 불길의 모양 (고속), (close up)

3. 화면을 가득 채우는 불길 (zoom in)

4. insert cut (흔들리는 불길 뒤로 보이는 주철장/다른 선생님들의 기다리는 풍경)


영상의 초반부는 거센 불길의 에너지와 때를 기다리는 장인들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긴장감을 형성하면 좋겠다. 이제 쇳물의 온도가 적정 온도에 다다르면 이 화구들을 한데 모으는 작업이 진행된다.


큰 틀로 옮겨지는 쇳물 1.2.3.4

쇳물을 한 번 붓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종의 무게 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쇳물을 큰 틀에 담아둔다.


컷구성.

1. 이동하는 화구들 (full shot)

2. 이동틀에 쇳물을 옮기면서 튀어나오는 불씨들

3. 쇳물이 이동하는 씬을 빠른 편집감으로 리듬을 고조시키자.


대형 틀에 쇳물이 모아지면 적정 온도가 되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하다. 쇳물의 적정온도는 1,000도에서 1,100도 사이로 기억하는데 이때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쇳물 붓는 날 가운데 조용해지는 때가 이때인데, 쇳물을 붓기 전 온도가 식기 위한 마지막 기다림이다. 갑자기 조용해진 탓일까? 공장에 풍경이 순간 사진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뜨거운 쇳물을 이리저리 옮긴 선생님들은 잠깐 걸터앉아 쉬기도 하고 뿌옇게 날린 먼지가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에 아른거리기도 한다. "끼익 끼익" 방금 전까지 틀을 옮긴 크레인 고리가 빈 허공에 천천히 진자운동을 한다. 열댓 명의 사람들은 조용히 온도가 맞춰질 때까지 잠깐의 휴전을 갖는다.

인서트 컷구성.

1. 대기하는 선생님들의 close up

2. 어두운 공장으로 스미는 햇살과 그 햇살에 비치는 먼지

3. 온도를 체크하는 기계의 온도 close up (점점 온도가 내려간다는 것을 보여주자)

4. 부으라고 하는 선생님의 신호


앞단의 빠른 편집감과 달리 차분한 호흡으로 전개하고 이때 음악이 깔리거나 아예 없어도 좋을 거 같다.

온도를 확인한 선생님의 신호에 레버를 돌려 쇳물이 들어가게 한다. 쇳물은 위에서 붓는 방식이 아닌 아래에서 차오르는 방식으로 하는데 여러 번의 연구 끝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기존에 위로 붓는 방식은 가스가 빠져나가기 힘들어 종 표면과 내부에 기포나 불순물들이 섞이게 됐는데 종의 미감뿐만 아니라 소리에도 영향을 미쳐 가스를 밀어내고 밑에서 차오르는 지금의 방식을 고안해 내셨다.

대형 틀에서 쇳물이 들어가면서 종의 거푸집에서 매캐한 검은 연기가 터져 나온다. 이제 쇳물이 이 구멍으로 차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시선집중. 모든 사람들은 행여나 있을 사고를 염두하면서 쇳물이 차오르는 때를 기다린다.


   
 

컷구성.

1. 대형틀 쇳물 붓는 레버 close up

2. 거푸집의 구멍으로 터져 나오는 연기

3. 아래의 종을 바라보는 같은 각도의 선생님들

4. 구멍으로 올라오는 쇳물


이번 화의 가제는 <쇳물 붓는 날>이 좋을 것 같다.

구성을 고민하다가 느낀 것이 그래도 선생님을 자주 뵙고 현장에 자주 가니 자연스럽게 과정을 익히고 그 과정 안에서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찍을지 감각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다큐는 적어도 3년 이상 대상과 친해져야 무슨 말을 할지 나온다고 하더니 왜 그런지 이유를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지금 찍는 이 작업들이 공장사람들에게는 매일의 반복이고 대중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자명한 사실은 수천 년을 이어온 이 전통이라는 것이 많지 않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술로 겨우 이어져 내려왔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사람의 손으로 이어온 문화가 다시 천년을 살아내는데 우리의 영상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그리고 우리 식구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쇳물 붓는 촬영이 있는 금요일. 아마 정신없이 찍다가 끝이 나겠지만 잠깐이라도 나의 염원을 저기 식어가는 쇳물에 살짝 넣어봐야겠다.


신이 있다면 내 기도를 들어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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