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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Jul 27. 2024

시골버스_삼척편 Ep3

2018년 떠났던 오래된 여행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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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가 나갈 수도 없지 않은가...?’ 


그 말이 더 무서워서 이곳의 정체를 잠깐 의심했지만, “나도 한여름에 창문 다 열고 대문 다 열고자도 아무 일 없대요”라고 하신다. “할머니 하루 더 묵을게요. 또 카드예요” 긴 세월 아무 일 없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또 바로 마음이 넘어갔다. 


배낭에 노트와 물 한 병을 넣었다. 여분의 필름도 챙기고 카메라를 집어 들어 반셔터를 눌러보았다. 이런,,, 배터리가 다 됐는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옛날 필름 카메라에 들어가는 구하기 힘든 배터리여서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둘째 날인데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으면 심봉사가 된 채로 도계를 정처 없이 떠돌 운명이었다. 나는 심청이 대신 문구점을 찾아야 했다. 


우선 ‘태백장 여관’ 바로 앞 문구점에 들렀다. 찾던 배터리는 없었다. 사장님은 ‘만물사’라는 곳을 알려주셨다. 거기는 이름처럼 없는 게 없을 거라고 하시면서 미로 같은 길을 설명해 주신다. 중간쯤 오다가 길이 헷갈려 다른 문구점에 들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터리도 보여드렸지만, 여기도 그 배터리는 없었다. 다시 ‘만물사’로 향했다.

#만물이 있는 만물사

드디어 보이는 간판. 반가운 마음에 여기에 오게 된 긴 여정부터 늘어놓았다. 주인 아주머니는 땀에 젖은 나에게 선풍기부터 돌려주신다. 한쪽 구석, 먼지 쌓인 박스에서 배터리를 찾으셨다. 다시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심봉사, 다시 눈을 떴다! “어머니 여기 탄광촌 가보려고 하는데요?” 탄광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아 저 위에 탄광촌? 까막 동네라고 저 위에 있어요. 까마귀처럼 검다 그래서 까막 동네!” ‘까막 동네라..’ 이름만 들어도 어떤 동네일지가 그려진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 그냥 ‘탄광촌’이라는 명사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의 정서가 되어버린다. 

  

까마귀처럼 검다 그래서 지어진 이름 ‘까막 동네’


방전된 배터리로 시작해 만물사에 도착하기까지 사뭇 이 사람들의 마음이 고마워진다. 핸드폰으로 길을 찾거나 물어보았다면,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핸드폰엔 넓은 정보가 있지만, 사람에게는 깊은 배려가 있음을 또 한 번 느꼈다. 


#까막동네 초입


이렇게 ‘시골버스’의 규칙이 하나 더 만들었다. 
1. 핸드폰으로 길을 찾지 말 것. 
2.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갈 것.

#까막동네

 ‘만물사’에서 나와 ‘까막 동네’까지 십여 분을 걸었다. 한낮의 온도는 39도를 넘어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도계를 가로지르는 철길은 뜨겁게 달궈졌다. 마을은 단층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양이다. 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탄가루들이 셋집살이를 하고 있다. 곧게 뻗은 골목이 아닌 굽이도는 골목길.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풍경이 나올지 기대하게 된다. 조심히 조용히 마을을 바라보았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마을 정자에 하나둘씩 모인다. 여기 계신 분들은 예전 탄광이 한창일 때 이곳에서 평생을 바친 노동자들이라고 한다. 어른들의 연세만큼이나 마을도 검버섯이 피어있었다. ‘막장인생’ 요즘 말로는 험한 의미가 담겨버렸지만,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길을 일컫는다. 볕이라고는 한 줌도 들어오지 않는 이 막장에서 갱도를 뚫고 탄을 실어 나르는 삶을 감히 내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치열한 삶의 현장과는 반대로 너무나 조용한 마을이 마치 마지막 라운드를 모두 마친 링처럼 고요했다. 마을 어르신에게 탄광 가는 길을 물어보고 탄광으로 향했다. 마음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까막동네


#탄광촌

삶의 현장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입구 앞에서만 사진을 찍었다. 아직 운영이 되고 있는 듯 일하시는 분들도 보이고, 거대한 기계는 굉음을 내며 검은 탄을 실어 날랐다. 햇빛 사이로 검은 탄가루들이 반짝였다. 입구에 꽃이 피어 있었는데 그 위로도 탄가루들이 내려앉았다. 이곳 사람들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아쉬웠지만 더 들어가기에는 용기가 나질 않아서 다시 동네로 발을 돌렸다. 한 열 발자국 정도 걸었을까? 이대로 가면 후회할 것 같아 다시 발걸음을 돌려 그 안으로 들어갔다. 밝게 인사하고 당차게 소개해도 나가라고 하면 그때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카메라를 꺼내고 담기 시작했다.

#탄을 뒤덮은 꽃
#탄광 풍경
#탄광 풍경

탄광의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어느 아저씨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쫄보라 긴장한 채로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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