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떠났던 오래된 여행글.
해 질 녘에야 도계역에 도착했다. 늦기 전에 숙소를 구해야 했지만, 그것보다 오래된 나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도계의 집들이 세트장처럼 펼쳐져 있었다. 세로로 높은 서울의 아파트가 아닌 가로로 길게 늘어진 도계의 아파트. 땅부자가 아닌 하늘 부자. 이것이 도계의 첫 인사였다.
불과 도계에 도착한 지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잘 왔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건, 멈춰버린 동네가 나를 같이 멈추게 한 까닭이다. 서울에서 쌓아 올린 걱정 조각들이 정신없게 아른거리다가 여기 도계에서 무너져 내린다. 생각을 멈추고 마을을 바라본다.
‘시골버스’를 하면서 어디에서 묵을지 걱정하지 않았다. 걷다 보면 오늘은 여기라고 말해주는 곳이 늘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백장 여관’이 나타났다. 시설 좋은 곳은 근처에 있지만, 그곳에는 사람도 없고 이야기도 없을게 분명하여 이곳으로 들어갔다. 한여름에 가장 걱정되는 건 에어컨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서울깍쟁이 티 내듯 “에어컨 있어요?”라고 여쭤보았다. 할머니는 대답 대신 문을 열고 보여주셨다. “요즘 에어컨 없는 곳이 어딨 대요?” 하신다.
눈으로 한 번, 말로 한 번 혼이 났다. “도배도 엊그제 해서 이렇게 깨끗하대요” 할머니는 자려면 자고 말라면 말라는 식으로 한마디를 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할머니 카드 되나요?” “카드? 그거 긁으면 되지” 첫날, 묘하게 쿨한 할머니가 계시는 ‘태백장 여관’에서 묵게 되었다.
다행히 서울의 열대야는 아직 도계까지 쫓아오지 못했나 보다. 선선한 날씨에 숨이 트이는 저녁을 맞이했다. 슬 잠을 자려고 문을 잠그려는데 문이 잠기지 않았다. 안에 하나 더 있는 미닫이문에 의지해서 잠을 청했다. 결국, 선잠으로 아침을 맞았다. 일어나자마자 할머니에게 문이 안 잠긴다고 하니 “밖에서 잠그면 잠긴대요” 하신다...
아하~
'그럼.. 내가 나갈 수도 없지 않은가?!!!??!’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