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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뱀이 꿈틀거린다.

2025년 을사년의 시작

by Director JI

세월이 쏜 화살에 가속도가 붙듯, 시간이 흐를수록 시간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느껴지고 작년의 후회와 올해의 다짐이 무색하듯 벌써 1월의 중반을 훌쩍 넘겨버렸다.


<KULTURE>의 2024년은 전시와 뉴스로 뜻깊었고, 제작한 영상을 업로드한 개수는 하나로 아쉬운 한 해였다. 지금까지 뿌려놓은 씨앗들이 어느 정도 수확되는 한 해였고, 묵묵히 걸어 나갔던 제작에 차질이 있었던 어려운 한 해이기도 했다. 제작일정에 손을 놓고 있던 때에 앞으로 <KULTURE>의 제작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는 한 해가 되기도 했다. 여러 가지 고민들 가운데 처음 다짐이 떠올랐다.

'전통을 대중적으로' 이 고민은 전통씬에 모두가 하는 고민이라고 생각하고 나 역시 '전통'이라는 재료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피할 수 없는 고민이었다. 첫 4년의 제작과 온에어의 반복 속에서 '지금과 같은 톤으로는 대중들에게 접근하기는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좀 더 공감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라는 주제의식에 대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KULTURE 1.0> 버전에서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집중했다고 하면 앞으로 제작되는 이야기는 그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다. 장인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까지 거치는 수많은 손길과 섬세한 기술들 속에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 까닭을 물을 것이고,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버텼던 수많은 고난과 위기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아마 그 과정에서 '혼'이라는 것이 담기겠지.)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어떻게 다른지, 사용자는 어떻게 느끼면서 사용하고 감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총체적으로 보자면 이것은 전통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품질을 향한 헌신'이며 '일 자체가 보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정신적 만족감'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나는 줄곧 장인들을 만나 오면서 전통공예가 갖고 있는 특수성이 현대인에게 퍼져있는 정신적 결핍에 아주 좋은 치료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촬영장에서 보는 장인의 작업과정은 마치 명상과도 같은 정신수양의 느낌을 받았는데 그건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몰입일 것 같다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지금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들은 아마도 단순한 행동 속에서 잠잠해지는 마음의 고요함이 아닐까?


콘텐츠의 내용을 작품에서 사람 그리고 정신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시킨다면 <KULTURE>는 콘텐츠에서 브랜드로 넘어가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KULTURE>가 단순히 '전통을 기록하는 사람들' 혹은 '멋지게만 담아내는 사람들'로 인식된다면 굳이 사비를 들여가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작업을 해야 할까 싶다. 그럼 우리는 '왜 이일을 하는가?'에 집중해서 자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일이 '무언가를 잘하기 위한 방법' 혹은 '버틸 수 있는 방법' 등과 같은 삶의 가치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그 느낌으로만 전달되는 어떤 것을 보편적인 단어로 (그것이 단어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지만) 표현하기 어렵지만 한 번도 장인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들이 보통 사람들에게 무의미할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그것은 영감일 수도 있겠고, 태도일 수도 있겠다. 나는 가끔 일과 육아, 가정 등 관계에서 오는 것들에게서 버거움을 느낄 때 내가 본 장인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렇게 장인이 보여준 정신과 태도를 조금이라도 삶에 가져오고 싶은 욕망이다. 그렇게 해서 나도 버티고 버텨 결국 미생이 아닌 완생의 길로 가고 싶은 까닭이다.


브랜딩 작업을 하면서 이 부분을 이끌고 있는 'H'형과의 통화 중에 '장인에 대한 헌사'라는 표현을 들었다. 나이키가 유명한 스포츠 스타들과 협업을 하고 그들을 자신의 브랜딩의 수단으로 쓰는 이유는 스포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승리, 도전'이라는 키워드를 이미지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장인에 대한 헌사를 하면서 어떤 분야의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고 싶은 것일까? 완생을 바라는 미생들인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어떤 것이 되길 바란다.


p.s 작년 온에어 한 하나의 작품은 2020년에 촬영한 소목장이다. 내부 사정상 온에어 하지 못했지만 이제 올릴 수 있게 되어서 이곳에도 덧붙여본다. 의도치 않게 소목장 1편 제목이 [기다림]이다. 4년을 기다려 세상에 선보이는 소목장편 감상하시라.

https://youtu.be/U22PJ7M9ILo?si=f7mLjQe2tABoZC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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