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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한식가구] 그 시작

기다림

by Director JI

2020년 5년 전, 처음 '국가무형유산 소목장' 선생님을 만나러 완주로 갔다. 종 선생님의 촬영이 길어지면서 다른 선생님을 찍기로 했는데 그다음이 가구를 만드는 소목장이었다.

첫 방문에 선생님과 공방에 딸려있는 전시장에 들어갔는데 전시장의 문을 열자마자 먼저 느껴지는 것은 수백 그루의 나무가 나를 둘러싼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냄새였다. 제일 눈에 띈 건 장롱이었는데 가운데 넓게 검은색의 무늬가 보였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먹감나무라고 하는 나무의 무늬인데 나무를 켜기 전에는 어떤 무늬가 있는지 그리고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곧은 나무의 프레임 안에 비정형의 무늬가 세로로 뻗은 모습이 흡사 검은 나무가 다시 자라고 있는 듯했다.

KakaoTalk_Photo_2025-01-21-12-20-17.png 먹감나무

그렇게 선생님을 만나고 책을 한 권 받았다. 전주장. 선생님이 쓰신 논문이고 옛날 전주지역에서 유행하던 가구를 복원하고 연구했던 자료였다. 우리는 이 중에서 '태극2층장'을 기록하기로 했다. 몇 달의 기획작업과 제작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소목장의 시작을 '재료'로 하기로 했다. 전통공예는 재료를 빠뜨리고는 설명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재료를 보는 안목과 재료를 다루는 태도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가구의 바탕이 되는 나무들은 공방의 한편에 그리고 창고에 고참과 신참의 순서로 기다리고 있었다. 더 어린 신참 나무들은 공방이 아닌 노지에 보관한다고 하셨다.


공방 인근 고가 밑. 풀이 조금씩 자란 노지에 크고 작은 나무들이 쌓여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 나무들은 껍질이 벗겨져 속살과 분리된 모습들이 보였다. 선생님은 시간을 두면 스스로 옷을 벗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노지에서 10년의 시간 동안 옷을 벗고 제재를 한다고 했다.


KakaoTalk_Photo_2025-01-21-12-01-39.png 노지에서 옷을 벗는 중이다.
KakaoTalk_Photo_2025-01-21-12-07-16.png 제재하고 또 10년
KakaoTalk_Photo_2025-01-21-12-11-33.png 거꾸로 세워 3년

나무가 가구가 되려면 족히 2,30년은 기다려야 하는구나 싶었다. 제각각의 나무들 중에 마음을 사로잡은 나무가 하나 있었다. '용목'이라는 나무인데 벼락 맞은 느티나무가 죽으면서 나이테가 불규칙하게 변해 그 무늬가 기이한 것이 특징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 나이테로 남아있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무늬가 독특하여 가구의 앞면 복판에 쓰인다고 했다.

KakaoTalk_Photo_2025-01-21-12-20-14.png 용목_물방울 같은 나무무늬가 인상적이다

세월에게 나무를 맡기고 선생님은 무얼 할까 생각했다.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 때 제자분들이 나란히 칼을 갈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선생님도 연장을 다듬는 모습을 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재료가 되는 나무가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칼을 갈고 구상을 마친다. 죽은 나무가 다시 가구로 살아남기 위해 아이를 돌보듯 매일 나무의 변화를 살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전통가구를 비유하는 멋진 표현이다. 천 년을 산 나무가 다시 가구로 태어나 천 년을 살기 위한 여정. 그 시작은 바로 기다림이다.

KakaoTalk_Photo_2025-01-21-12-28-39.png 장인은 날을 갈며 때를 기다린다


소목장 1편 기다림 보러 가기


p.s 영상의 첫 장면을 웅장한 나무로 시작하고 싶었다. 원하는 느낌의 나무가 내륙지방에는 없어서 제주에 내려가 촬영을 하고 올라왔다.

KakaoTalk_Photo_2025-01-21-12-32-42.png 이 한 컷을 위해 제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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