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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혜 Aug 13. 2023

조금 격한 나의 모닝 리추얼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건 달리기

새벽 6:30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눈이 떠지는 가장 늦은 시각이다. 매일 목표는 5시 기상이지만, 알람을 못 듣거나 지난 밤 늦게 잠들어 알람을 일부러 끄는 경우에도 이 시각이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본격적인 출근 준비까지 약 1시간 남았다. 이 1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 시간 동안 딱 한 가지만 할 수 있다. 우선순위는 정해져 있다. 밖에 나가서 달리는 거다.


물 한 잔을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와 옷을 챙겨입는다. 그리고 운동 가방을 허리에 매고 가방에 휴대폰을 넣는다. 집을 나서며 '런데이' 어플을 켠다. 오늘도 '매일 30분 달리기' 프로그램이다.

런데이 어플로 달리기를 기록한다. 비 오는 날, 남편이 집에 없는 날 빼고는 가급적 나가서 달린다.


걸어서 딱 오분 거리에 오송호수공원이 있다. 전에 살던 오창에도 호수공원이 있었는데, 여기는 오창호수공원의 약 4~5배 크기다.  바퀴를 달리기로 돌면 딱 30분이 걸린다.

연제저수지 주변에 조성된 오송호수공원. 한 바퀴를 걸어서 돌면 30~40분 걸릴 정도로 꽤 크다.


호수공원 초입부터 일정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이 '시작 구간' 가장 힘들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고, 사전 스트레칭도 부족한 채로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피로감이 갑자기 몰려오지만 그냥 달린다. '달리면서 몸을 푼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시간이 별로 없는 데다, 계속 달리다 보면 괜찮아진다는 걸 하다 보니 알게 다.


달리면서 힘들다는 느낌은 잦아든다. 그러자 머릿속이 수많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찬다. 어제 있었던 일, 만났던 사람들, 날 힘들게 했던 말들과 기쁘게 했던 말들. 아이가 내게 했던 말, 남편이 나를 서운하게 만든 일. 그리고 내가 서운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우려되는 일들. 머릿속이 생각으로 꽉 찬다. 달리는 것도 힘든데 생각으로 꽉 찬 이 머릿속이 더 힘들 때도 있다.


높낮이가 있는 구간에서는 보폭을 조절해 가며 달린다. 얕은 물웅덩이가 나오는 구간은 피하고, 좁은 길에서 마주 오는 사람이 있을 때도 속도를 조절한다.


이른 아침 호수 주변은 고요하지 않다.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아주 크다. 이 주변에 많은 새들은 물까치와 산비둘기다. 어디서든 터줏대감 행세를 하는 참새와 까치들도 한몫 한다. 어찌나 크고 날카롭게들 울어대는지, 아침부터 자기들의 영역을 주장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 주변에 많이 사는 물까치와 산비둘기. 저마다의 소리로 시끄럽게 떠든다. (사진출처=나무위키)

나무가 많은 데크길을 지나, 그늘이 없는 구간으로 진입한다. 햇볕이 가장 따가운 구간이다. 선크림을 아무리 두껍게 발라도 콧잔등에 올라오는 거뭇거뭇한 기미의 흔적은 여기서 잔뜩 받은 자외선 때문일 테다.

호수공원에서 제일 양지바른 곳에서 사람들에게 애교부리며 츄르 얻어먹는 치즈고양이


땀이 나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이 구간을 벗어나면 한 바퀴의 4분의 3다. 그런데  바퀴를 뛰어야 하니 아직 한 바퀴가 더 남았다. 이걸 한 번 더? 도저히 못할 것 같지만 계속 달린다.


두 번째 바퀴에 접어든다. 이제부터 느끼는 피로는 갑작스러운 피로가 아니라 조금씩 누적돼 가는 피로다.


여기서부터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머릿속이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달리기를 하면서 생각들이 바닥으로 떨구어져 나간다. 한꺼번에 몰려들어 나를 괴롭히들이 점차 사라진다.


앞선 한 바퀴와 똑같은 길. 똑같은 새소리를 듣고 똑같은 공기를 마시며 한 바퀴를 더 달리는 동안 땀이 더 나고 숨이 더 차고 콧물이 나온다. 벌어진 입에서 갈무리되지 못한 침방울도 나온다. 허옇게 바른 썬크림과 땀이 범벅된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가벼워진다. 생각과 마음이 비워져서다.


두 바퀴를 다 돌 무렵에는 비워진 걸 '느끼는' 것조차 버겁다. 오로지 힘든 내 몸뚱이를 목표 지점까지 굴리는 데만 체력과 정신력이 다 동원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책에서 그의 달리기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풀코스는 물론이고 100km 울트라마라톤에도 도전한다.


구간에서 나는 종종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린다. 책에서 그는 100km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한 일화에 대해 얘기했다. 그도 이렇게 무지무지 힘들 때마다 눈 앞에 한발자국에 집중했겠지 하며 달린다. 나의 달리기는 그에 한참 못 미치지만 말이다. 하루키 생각을 하며 나도 한발한발 내딛다 보면 어느새 힘든 구간을 지난다.


마지막 약 400미터 구간. 새로운 그늘길이 다시 나온다. 이제 곧 이 고통이 끝난다는 희망이 보인다. 그러자 완전히 비워진 머릿속 한 자리에 새로운 생각이 차오른다. 꽉 찬 상태로 나를 괴롭게 하던 좀전의 생각 한결 다르다.


새롭게 차오르는 생각은 내가 겪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가깝다. 뭐 엄청 구체적인 것이라기보다 내가 가져야 할 태도나 방향성에 가까운 문장들이 튀어오른달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그냥 냅두자! 그건 내가 지금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늘 가서 ○○○라고 말해주는 게 낫겠군.'

'글을 좀 더 자주 써야겠다.'

'□□□에 대한 글을 써 보면 좋겠다.'


결국 목표 지점에 골인한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다시피 걸어온다. 온몸에 땀이 솟고 숨이 거칠다.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 찬물로 몸을 씻는다. 그리고 출근 준비를 하고 아이를 깨워 등교 준비를 하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완전히 비워내고 나서 약간의 새로움으로 채운 머릿속은 하루를 시작하기에 딱인 상태다. 힘든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게 이런 메카니즘인 건가 싶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는 내게 이미 '완성된' 하루다. 어떤 모습으로 보내더라도 (심지어 하루종일 누워 있더라도) 하루 치 성실함의 의무를 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걷는 것보다 숨차고 땀나는 달리기가 좋다. 그리고 이어폰을 꽂고 달리는 것보다 아무것도 듣지 않고 그냥 달리는 것을 선호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며 팔다리 근육에 젖산이 온통 쌓여 고통스러운 상태에 이르렀다가 되돌아오는 경험. 그 과정에서 뇌에 있던 생각의 노폐물을 버리는 경험이 오늘의 나를 건강하게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의 모닝 리추얼은 조금 격한 모양새로 이루어진다. 이렇 나름의 정화 의식이 끝나면 내 머릿속과 마음이 한결 깨끗해진다. 비록 의식이 끝난 직후 모습은 누가 볼까 두려울 정도로 선크림과 땀으로 범벅된 처참한(?) 모습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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