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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전구 Dec 06. 2023

불안한 감정 속에서 피어나는 결핍

먹구름이 가득한 곳에 햇빛이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 네? 그게 뭐예요? 왜 시든 꽃을 건네주는 거죠? 아.. 아니었네요. 미안해요 하지만 저는 꽃병이 없어요. 꽃을 담아둘 물도 없네요. 햇빛도 없는 동굴에 있어요. 동굴에는 하늘이 없거든요. 알고 계신가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 동굴은 비도 내리고 눈도 내려요. 가끔 우산도 쓴답니다. 우산을 꺼냈으니 신발을 신고 나가봐야겠어요. 아직은 매서운 바람에 날리는 꽃잎도 무섭지만 말이죠”


낯선 땅에 와서 외로웠다. 어찌 보면 외로움이 당연했다. 겉보기에 친구들이랑 잘 놀고 행복해 보일지 몰라도 그렇게 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 쉬웠다. 단조롭고 화려한 포장지에 리본만 매일 다른 색으로 바꿔 포장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어느 날은 매일 비를 내려 호수가 아닌 바다를 만들었다. 파란 청명한 바다도 아닌 회색의 검은 바다를 만들었다. 너무나도 날이 좋은데 햇빛 사이로 비가 내렸다. 눈앞에 너무 뿌옇길래 손으로 저어 바람을 만들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연기인 줄 알았는 데, 안개였던 것이다. 손에 잡히지도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해결되지 않는 뿌옇고 밀집되어 있는 안개. 밤만 까만 것이라고 생각했는 데 그것 또한 아니었다. 안개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는 이것은 불안보다 더한 무서움을 가져오는 어두운 곳이었다.


어느 날 어느 아이가 다가왔다. 고양이가 등을 비비듯 낯선 사람이 다가와 주저 없이 자신의 노란 해바라기를 건네었다. 그리고는 다른 이들에게 ‘햇살’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무엇이지 당황하고 낯설어 도망갔다. 정말 부족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해바라기를 의심하고 부정했다. 건네는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으로 인해 건네는지 말이다. 노란 해바라기가 흑백의 검은 해바라기로 보였다. 아직도 해바라기를 보여주었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때의 그 아이는 정말 주저 없이 보여준 해바라기는 너무나도 빛나고 있었다. 그때는 그런 것은 볼 수 없었다. 그저 그 아이의 해바라기를 받을 수 있는 꽃병도 물도 햇빛도 없었다. 대가 없이 해바라기를 주었는 데, 그 해바라기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해바라기와 비교할 수 없었다. 어찌 그리 노랗고 빛을 내고 있었는지.. 해바라기 덕분인 것도 있지만 못난 자신 때문에 더 기억나는 것도 있다. 보고 감사하고 향 정도 맡아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까. 꽃병은 있으나 어떻게 꽃병에 꽃을 담아내는지 몰랐던 작은 아이가 기억난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그 아이에게 꽃을 건네주었었다. 많은 다양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했는 데, 그가 나눠 준 것이 ‘사랑’인 줄 몰랐다. 노란 해바라기라는 것도 뒤 돌아보니 알게 되었다. 그저 흑백의 꽃이 큰 것으로 보아 해바라기라고 추정만 했을 뿐이었다.  꽃병에 꽃을 어떻게 담는지 몰라서 해바라기에 손도 대지 못하며 추정만 하고, 그 무엇도 못했던 구석에 쪼그려 벽을 보고 있던 작은 소녀가 생각난다.


의심으로 인해 그의 해바라기는 시들기 시작하고 색을 잃었다. 단지 고맙다고 해바라기의 향도 색도 예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두운 동굴에서 빛을 찾기 위해 눈을 감는 행위와도 같았다. 벽을 보고 구석에서 고개를 푹 파묻고 있던 소녀는 고개를 드는 법을 몰랐다. 이 후로도 많은 다양한 꽃을 나눠주러 다양한 이들이 왔었다. 자신을 보게 하기 위해 꽃을 화려하게 포장한 사람도, 소녀에게 이제는 보지 못할 것이라고 꽃을 전해주던 사람도, 가짜 꽃을 꽃이라며 건네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각기 다른 향과 생김새, 색을 가진 꽃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자신의 사랑이 피어나면 사랑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은 ‘ 사랑’이었고 그들이 건네던 꽃에서는 ‘용기’라는 빛나는 색깔들이 있었다.  꽃들 덕에 알아 버렸다.  어둠 속에 갇힌 것이 아닌, 어둠을 찾아 들어갔다는 사실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는 데 동굴이라고 생각해서 고개를 젖히고 어둠 속에 갇혀있었다는 것을.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밝은 빛을 만나자 눈이 부셔 제대로 볼 수 없지만 한 발자국 씩 내디뎌 보기로 했다. 모든 이들의 꽃을 받을 수는 없지만 꽃병에 꽃을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어떤 꽃이 꽃병과 맞지 않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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