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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전구 Dec 13. 2023

같은 시공간 속 다른 공간인 이곳

도망 온 이곳은 어렵습니다. ’ 사랑‘은 어디나 있고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곳이 아니었나요? 저는 분명 여기서 바람이 많이 불고 바람개비가 잘 돌아간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아니었네요. 바람을 찾아 떠났는 데.. 바람이 없으니 제가 바람을 만들어야겠어요. 바람개비는 바람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 바람‘ 개비니까요. 바람을 찾아 떠났더니 바람을 더욱 잃었다는 사실에, 그것들을 찾아 다른 방향으로 향하려고 해요. 전과 같이 잊을 수는 없으니까요 ”


이곳은 참 이상하다. 아니 사실 이런 삶이 더 편안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숙사에 거주하면서 느낀다. 이곳은 샤워실이 1층에만 있다. 화장실은 각 층마다 2-3개 정도 있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님 그냥 나여서 그런 건지, 남자애들은 샤워를 하고  수건만 걸치고 나온다. 물론 우리 기숙사는 여자 남자 모두 거주하고 있다. 나눠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자애들은 샤워하러 갈 때 위에는 속옷만 입고 가기도 한다. 또한 많은 애들이 샤워가 끝나면 샤워 가운만 입고 기숙사를 활보한다. 사실 이런 풍경이 낯설다. 아니면 나만 낯선 것일까? 항상 눈치로 남에게는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럴까.? 옷을 입지 않고 나오는 게 이상하다. 상대의 눈도 생각해라는 말이 있는 곳에서 와서 그런가? 이상하게 평범하고 당연했던 것에 여기서는 항상 물음표를 던진다. 걸어 다니면서 보이는 고양이 귀들의 목도리, 모자 등 눈에 띄고 익숙하지 않은 패션. 내가 편견이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 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잉?이라는 생각, 이상하다는 생각, 편견이다. 이들에게는 당연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곳에서 제일 이상한 사람은 나 일수도 있다. 룸메이트가 옷 정리하는 내 옷장을 보면서 하는 말이 “다른 색은 없어?”였다. 그렇다 색깔이 없다. 흑백 옷장이었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항상 물음표를 던지며 이상하다 생각했는 데, 정작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대로 봐주면 된 다는 것을. 그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나에게 잣대를 들이밀어도 되나, 그 잣대로 다른 이들을 향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것은 스스로를 해치며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 어쩌면 당연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어쩌면 존중 아닐까? 그리고 같은 시공간 속 다른 공간인 이곳이 어쩌면 ‘사랑’이 넘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모든 것을 사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 시공간에서는 내가 사랑받기 위한 발버둥 치며  찾아온 시선인지 아니면 편견과 정해진 틀 속에 갇혀있었던 것인지. 생각이 많아졌다.


이곳으로 도망 왔다고 이야기했다. 참 우스웠다 내가. 북쪽에서 부는 바람이라고 남쪽에서 부는 바람이랑 다르지 않은 바람이라는 것을 까먹었던 것일까.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바람은 이리 많이 부는데 바람개비는 돌아가지 않는다. 바람개비는 종이로 수수깡으로 만든 누구보다 가벼운데. 바람이 불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볼에 스치는 이 것들은 무엇일까요? 이곳이 아니라면 바람개비를 들고 뛰어다닐게요. 이제야 돌아가네요. 하지만 지치고 있어요. 바람을 찾아 떠난 것이 결국 바람을 만들고 있었네요. 가만히 바람개비만 들고 있어도 돌아가게 해 주시면 안 되나요.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고 해서 바람개비가 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또한 모든 이들이 같은 바람개비, 같은 방향으로 있던 것은 아니더군요. 이 방향과 이 것이어야만 하는 줄 알았어요. 바람에만 돌아가는 줄 알았는 데.. 물줄기에도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어요. 바람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어요.


다른 이곳은 정말 다릅니다. 하지만 또 같죠. 사람이 사는 지구니까요. 다른 시간대과 다른 계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니 전 시간대의 시계와 전의 계절에서 입고 있던 옷은 잠시 내려놓아야겠어요. 번호키로 여는 문이 아닌 많은 열쇠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이곳은 참 이상하고 참 다른 곳입니다.


‘사랑’을 찾기 위해 도망온 곳에서도 같은 자세를 취하면 ‘사랑’은 찾아오지도, 지나가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사랑’을 갈구하기에 한 발짝 다가가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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