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을 밝히며 와서 ‘사랑’인 줄 알았건만 밝히며 떠나니 ‘사랑’이었다.
“첫 분홍 빛 장미를 꺼낼 때 피가 많이 묻어있었는 데 보지 못했어요. 그것도 ‘사랑’인 줄 알았거든요.
나무가 필요했고 나무가 되어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제가 나무가 되었네요. 하지만 나무로 있는 동안 많은 것을 알았어요. 손에 대일밴드를 붙이며 깨달았죠. 저의 장미는 떠날 때 꺼낼 수 있겠더라고요. ‘사랑’이란 참 어렵네요. 분홍 장미를 너무 사랑했지만 제 나무가 너무 안쓰러워 마지막일 때 제 장미를 꺼낼 수 있겠더라고요. 장미는 장미지만 나무는 가지가 부러지니 새로운 가지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어요. 고마웠어요. 우산이 되어주어서 하지만 전 종이비행기이기에 비에는 약하고 바람에는 날아가기에 서로 다른 곳을 보기로 해요”
‘사랑’이란 무엇일까 정말 많이 고민했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앞서 많은 이야기를 하듯 붉은 장미처럼 느껴졌는 데, 과연 그런 것일까.
다들 운명을 만나면 종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냥 알아볼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과연 맞았을 까? 첫 장미를 피워내도 되는 사람인지 매우 신중했다. 되는 것인지 그래도 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첫걸음은 언제나 신중하다. 이 길이 맞는 길인지 내가 끝까지 이 길을 걸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니까. 이 길을 걸으면 돌아갈 수는 있으나, 이 길을 걸었던 기억까지는 지울 수 없으니 말이다. 신중했다. 어찌 들어온 그는 별 같았다. 자신이 등불을 켜고 주변을 밝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보기에도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 아니 그건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무가 필요했기에 눈이 오나 바람이 많이 부나 작은 그늘하나 내어줄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길 바랐던 것 같다. 처음이었지만 그런 것을 어느 순간 주변이 들을 보며 알았다. 모든 이들이 그렇겠지만 서로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붉은 실이 언제나 이어져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어디서도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아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만났다. 제일 힘든 시기에 제일 주변에 무엇도 보이지 않고 매일 밤새 땅이 꺼지게 한숨과 비를 내리고 있을 때. 나무가 필요했다. 그때는 나무처럼 보였다.
노력했다. 자신의 분홍빛이 되어가는 장미를 꺼내 주었을 때 알았어야 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로 인해 배운 것은 정말 많기에. 놓아주는 것도 가시가 가득한 장미를 꺼내주며 피를 흘려도 눈에 그것이 보이지 않는 다면 ’ 사랑‘으로 칭한다는 것을. 나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무가 아닌 우산이었다. 내가 잡고 비가 오면 써야 했고 그늘이 필요하면 우산을 찾아 펴야 했다. 나무는 그가 아닌 나였다. 그는 나의 그늘에 들어와 쉬어갔고 어느 순간 많은 것들을 꺼내었다.
어느 순간 뿌리들이 썩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것들을 꺼내놔서 나무 그늘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향하는 나무의 가지를 스스로 꺾었다. 태풍이 강하게 불어 부러지기라도 한 듯.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그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는 등불을 비추며 계속 찾아왔지만 이제 나에게도 등불이 있기에 너와는 다른 길로 나갈 거다. 이 동굴 속에서 등불을 비추고 있어도. 너랑 다른 길을 걸으면 나무가 되어가는 나의 모습이 더 좋기에 그리고 누군가 등불을 들어주면 안 될 것을 알기에 서로 각자의 등불이 밝히는 곳을 향해 걷는 것이 등불을 위한 길이다.
마지막으로 장미를 꺼낼 때 알았다. ‘사랑’은 이별이기도 하다는 것을. 만나, 나무가 되어보고 많은 것을 배웠지만 나뭇가지가 스스로 부러트릴 정도로 무서운 눈이 내리는 지도, 많은 것을 꺼낼지 몰랐기에 그저 바람을 타고 많은 꽃바람이 부는 곳으로 날아가고 있길, 더 많은 등불들을 만나 밝은 곳을 걷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