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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ug 21. 2023

여름이 가는 게 아쉬운 이유

한여름이 이제는 슬쩍 지워지려나 보다. 낮에는 여전히 후텁지근하지만 늦은 저녁, 새벽녘으로는 나무 그늘 밑에서 부는 바람에 온기가, 습기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여름을 가장 좋아하는 나다. 그 이유는 부모님의 유전적인 원인일 텐데, 더위를 잘 타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땀을 잘 흘리지 않는다. 그래서 식구들이 가만히 있어도 내 이마에, 목에 땀이 흐르면 정말 더운 날이라고 자체 측정을 하곤 한다. 


물론 에어컨을 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활용되는 수단이 되기도. 에어컨 바람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를 위한 배려(?)일 거다. 여름용 재킷을, 얇은 긴 팔을 애용하는 나를 위해. 나는 그렇게 추위보다는 더위에 강하다. 더울 때 움직이면서 운동하고 땀 흘리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여름이 지난 후 가을 들어 겨우내 검게 탄 얼굴이 서서히 원래의 피부톤을 찾아가는 걸 보는 게 시간 흘러가는 거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게 변하는 날씨가 움직이기에 딱 좋아라 하면서도 아쉬운 이유는 또 있다. 옷이다. 반팔에 반바지. 린넨 셔츠 하나, 얇은 바지 하나. 이거면 여름을 난다. 그런데 선선하다 추워지면 이런저런 옷을 다 챙겨 입어야 한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둔해지는 것 같다. 게다가 옷도 비싸고 피부가 금방 건조해지는 걸 느껴 더욱 거시기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름을 보내기 아쉬운 이유는 과일이다. 수박, 자몽, 자두, 체리, 포도, 키위, 블루베리, 토마토, 복숭아. 다른 어느 계절보다 제철 과일이 넘쳐나서 너무 좋다. 과일만 먹고살아도 좋겠다, 고 자주 이야기는 하는 아내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과일이 참 좋다. 물이 많고 달아서 더. 그런데 여기서 여름 대표 과일 중 딱 하나 빠진 게 있다. 바로 참외.


물론 여름 과일의 대표는 뭐니 해도 수박일 테다. 수박의 수는 물. 영어 명칭 watermelon에도 물이 가득하다. 박은 한해살이 박과 식물의 총칭이다. 호박, 대박, 쪽박의 박이 다 같은 박이다. 크고 속은 비어 있는. 오이, 참외, 수세미, 호박, 멜론, 여주 등이 다 박과 식물이다. 속살에 숨어 있는 자잘한 씨앗들이 얼추 다 비슷한 이유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참외를 좋아하지 않았다. 참외를 왜 먹지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참외를 아주 맛나게 먹은 게 지난달 밴쿠버에 머물면서였다. 우리 동네에서도 잘 먹지 않던 여름 과일을, 아내덕에 억지(?)로 먹던 걸 숙소 냉장고에 한 박스 넣어 두고 말이다. 한인 마트에서 박스째 할인해서 판다며 처형이 사야 한다 - 아 그러고 보니 이 자매님들이 모두 참외를 좋아하는 거였다 - 고 해서. 고향을 만난 듯 그렇게 먹었나 보다. 


그런데 참외는 왜 참외일까에 대한 오랜 궁금증은 몇 해 전 세계 문화 수업을 준비하면서 해결되었다. 참외는 인도가 원산지.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통해서 들어왔다. 중국어로 '긴 아래 오이'에서 유래한 명칭인데 최고를 의미하는 순우리말 '참'에 오이를 뜻하는 '외'가 합쳐진 '최고의 오이'란 의미다. 사실상 지금 주변에 흔한 노란색 참외는 우리나라에서만 먹는다. 그래서 국제 식품 협회에는 코리아 멜론 korea melon으로 등재되어 있다. 


어릴 적 아버지는 호박을 심을 때 우선 거대한 구멍을 하나씩 만드셨다. 다 자란 호박이 늙은 호박이 될만큼한 크기로. 그리고 그 속에 어디에선가 가져온 천연 오가닉(?) 거름을 한 바가지씩 퍼 넣었다. 그리고는 지독한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 비 오고, 햇빛 받고 한 뒤 그 자리에 호박 씨앗을, 모종을 심고 물을 충분히 주었다. 호박 하나하나는 다 인간이 되돌려준 덩 호박이었던 거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엄마 심부름을 하면서 생각했다. 호박은 자라날 때 좀 다르다고. 다른 애들처럼 높다란 나무 위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태양을 바라보지 않는다. 항상 덩굴 사이에 땅을 기다시피 하면서 숨어 있다. 어릴 적 밭에 들어가 앉다시피 하고 넓적한 잎들과 덩굴들을 헤쳐 찾아내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살아내는 게 참 슬기롭다는 생각이 든다.


보란 듯이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기의 고유한 성품을 그대로 간직한 채 찾아내 주기를 얌전하게 기다리는 모습이다. 게다가 그 알알이 들이 한줄기에 몰려 서로 위로하는 포도, 사과, 배처럼 모여 있지도 않다. 그래서 그런가. 좀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멜론 melon의 론.... 이 영어 단어 lone, 즉 외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내가 기억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다. 


그런데 그 외로움을 달달하게 극복해 낼 수 있는 넉넉한 물을 가득 담고 있는 단단한 박. 가끔은 들짐승들이 먼저 그 단맛을 보기도 하지만 항상 낮은 자세로 자신의 무게를 이겨내려고 숨어 있듯 바닥에서 자라나는 참외도 그래서 더 달고 맛있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좋아하는 참외에는 슬기롭고 지혜롭게 외로움을 홀로 이겨내는 힘이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인지도. 


참외로움을 슬기롭게 묵묵히 이겨내면서 만들어진 달달한 물. 그 단물의 힘이 더 단단하고 당당하게 들어차 있어 좋아 보이는 참외. 이제 다시 일 년여를 기다려야 제대로 만나겠다 싶다. 참고로 달달하게 맛난 참외는 물에 뜬다. 물에 가라앉는 참외는 발효가 많이 진행이 되어 상하기 직전이다. 뭐, 물론 과일가게에 갈 때 물동이를 들고 다닐 수는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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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셋이서 피어 있는 꽃보다

오직 혼자서 피어있는 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울 때 있다.


너 오늘 혼자서 외롭게

꽃으로 서있음을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혼자서(나태주)




------(한줄요약)

혼자서 꽃으로 서있음을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여름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 올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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