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Aug 20. 2023

아내가 살린 봉선이, 선화, 화롱이

[풀하우스]13

한달 전 아드님에게로 날아가면서 혼자 남는 아내에게 몇가지 당부를 했었습니다. 첫번째는 혼자 있어도 매끼 잘 챙겨 먹기, 두번째는 반려견 타닥이와의 매일 산책, 그리고 마지막으로 봉선이, 선화, 화롱이 삼남매를 포함한 화분들에게 물주기. 원래 집안일이라는 게 하는 일은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기 마련이지요.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어찌어찌 하다 보면 말입니다. 


타닥이와의 산책은 주로 나와 열여덟 따님의 몫이었습니다. 타닥이가 첫 반려견이라 아가때 너무 아가아가 하느라 다른 반려견을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따님말로는 타닥이는 자기가 사람인 줄 안답니다. 그래서 다른 강아지들을 만나면 사람인 자기를 공격하려는 줄 알고 그렇게 사정없이 짓어댄다고. 하지만 나와 산책을 나가면 그런 성향이 덜합니다. 


따끔하게 혼내는 훈련을 여러번 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힘으로 제압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 부분에서 타닥이를 가장 사랑스러워 한다고 주장하는 아내는 힘겨워 합니다. 그러던 아내가 글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책을 하면서 인증샷을 매번 보내주더군요. 역시 사람은 궁하면 통한다 했지요. 시작하고 며칠 고생을 하더니 혼자만의 요령이 생겨 둘다 편안해지는 모양이었습니다. 이제, 아내와 내가 나눌 수 있는 영역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어서 괜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암수술후 회복중인 어머님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인 어른. 두분만 집에 계시면 음식을 만들고 치우고 하는 게 일이 되어 버립니다. 평소에는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몸이 불편하면 양치하는 것조차 힘겨울때가 있습니다. 몸살 감기에만 이라도 걸리면. 그래서 한 열흘 정도를 어머님과 장인 어른을 아내 혼자 있는 집으로 모셔와 식사를 해드리려고 시도(!)했나 봅니다. 그 기간 사이에 퇴원 일주일후 통원 치료 일정도 있어서 겸사겸사. 그렇게 며칠 와 계시는 동안 식사를 해드리고 말동무가 되어 드리는 대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셔야 했었나 봅니다. 


오전 스트레칭 후 식사, 산책, 식사, 거실 걷기, 색칠하기, 보드게임, 음악듣기, 드라마 보기

오후 스트레칭 후 식사, 거실 걷기, 보드 게임, 낮잠, 자유 시간

저녁 식사 후 산책, 씻고 자유 시간, 켈리그라피, 자기전 휴대폰은 거실에


아내가 가족톡에 올린 두분의 하루 일과입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그럽니다. 할머니 집에 가고싶다셔ㅋㅋ. 보고만 있어도 재미 있는 일정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익숙한 루틴을 하지 못하는 게 가장 아쉬우셨는데 일주일을 다 채우지 않으시고 통원 치료를 핑계로 다시 오시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음식 장인이지만 일정을 철저하게 지키는 오십넘은 따님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건 아마 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가장 먼저 살펴본 게 봉선이, 선화, 화롱이 삼남매가 나란히 있는 모습입니다. 폭염에 살짝 쳐져 있긴 했지만 한달 가까운 시간동안 아내가 매주 한번씩, 일요일마다 물을 준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부모님을 위한 그것처럼 그렇게 정성을 드린 모습이. 아내도 원래의 저처럼 싱싱하고 예쁘고 울창하게 크고 있는 화분을 눈으로만 보는 걸 더 좋아라 합니다. 그래서 눈에 띄는 게 있으면 하나 둘씩 구입해서 집으로 옮겨다 놓습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화분이 어떻게 혼자 항상 그렇게 예쁘고 싱싱하고 전성기마냥 자라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러다 여타 집안일처럼 마음이 급한 이가 먼저 그 역할을 맡게 됩니다.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지요. 뭐 그리 거창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지만도 않은 그런 자잘한 동작들이죠. 샤워하고 나오다 분홍색, 빨간색 물조리통에 수돗물 미리 가득채워두기, 아 오늘 일요일이지?, 외출하기 전에 물을 미리 줘야지, 집안 대청소 끝나고 나면 물을 줘야지. 뭐, 이 정도를 미리 신경쓰는 거지요.


그런데 화분도 보살핌을, 사랑을 듬뿍 받는 사람처럼 그렇게 변해갑니다. 그저 때맞춰 물만 줬을 뿐인데, 불소 가득한 수돗물을 그저 일주일전에 미리 받았다 줬을 뿐인데, 가끔 환기를 위해 문을 열어줬을 뿐인데, 화분 방향을 이리 저리 돌려줬을 뿐인데, 뽀얀 먼지가 잎에 쌓이기 전에 가끔 닦아줬을 뿐인데,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그렇게 싱싱하고 예쁘고 울창하게 자라나 줍니다. 첫째 봉선이보다 둘째 선화, 막내 화롱이가 더 크게 부쩍 자랐더군요. 특히 화롱이는 누나들하고는 다르게 진한 보라색 꽃을 폭폭 피어 오르고 있더군요.


집에 도착해서 다음 날. 창틀에 나란히 있던 삼남매를 들어다 욕조안에서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내 온 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것 같더군요. 그런 다음 살짝 거실 안쪽으로 옮겨다 놓고 하루, 이틀 정도를 지났습니다. 그러는 사이 삼남매는 며칠 사이 더 굵어진 줄기위에서 빳빳하게 꽃고개를 들고 이제 오셨어요, 보고 싶었어요, 고마워요 하듯 하루 종일 신나게 소리없이 아우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엊그제. 밴쿠버에서 신청했던 바질 세트가 한 박스 가득 도착했습니다. 아직 지피펠렛에 옮겨 심는 작업을 하지는 못했지만 삼남매옆에 나란히 모셔 놓았습니다. 


생명이 생명답게 유지되는 건 스스로의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하지 싶습니다. 온 마을이 함께 한 아이를 키운다고 했지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 생명의 숨소리를 귀담아 듣고 옆에서 크지는 않지만 이어지는 자그마한 사랑의 행동, 관심이 있으면 그 생명은 절대 사그러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이렇게 또 배워갑니다. 나를, 나의 생명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단 한 사람. 그것만으로도 생명이 좀 더 싱싱하고 예쁘고 울창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건 어찌보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님도 삼남매도 다 아내덕입니다. 그 아내의 생명꽃은 그래서 내가 지켜야 하는 행복한 숙명입니다. 모든 생명은 다 각자의 색깔과 향기를 머금고 있는 꽃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구름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