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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14. 2023

묶어 줬을 뿐인데

[풀하우스]11

집에 있는 벵갈 고무나무(이하 벵갈이). 분갈이를 해서 자그마한 모종을 키웠는데, 네 살이 넘어 간다. 아, 모종때부터 따지면 다섯살은 되었겠다. 처음에는 베란다 창가쪽에 있었다. 그때는 지금 키의 삼분의 일 정도였다. 새순이 올라오는 것도 드문 드문. 그런데 타닥이가 넓디 넓은 배변 패드에 들락거리면서 볼 일을 보다, 두서너번 쉬를 한 자리가 넓어지면 다리만 한 개 슬쩍 패드위에 걸쳐 놓고 쉬를 한다. 자기딴에는 나 패드위에서 볼일 보는 거예요 한다. 하지만 쉬 절반은 패드밖 거실위로 주르르. 


그래서 창가에 있던 이 벵갈 고무나무를 타닥이 패드를 포위(?)하는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 중문쪽으로 옮겨 놨다. 그렇게 몇 개월을 타닥이 배변 패드옆에서 타닥이 응가와 쉬를 다 들여다 보면서 같이 크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리만치 벵갈이의 위치를 옮긴 후 성장 속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마치 타닥이가 볼 일을 패드안에서 잘 보는지 지켜보듯 패드 아래를 향해 새순들이 마구마구 솟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키도 하루가 다르기 쑥쑥. 지금은 키가 내 어깨 가까이 와 있다. 혼자 생각했다. 타닥이가 제공하는 페르몬 효과인가 하고. 그러다 보니 벵갈이가 자꾸 패드 아래쪽으로 기우뚱 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내 마음속에 축 늘어진 갸녀린 새순처럼 보인다. 그래서 몇번을 패드 반대쪽으로 돌려놓기를 반복. 그러다 보니 윗부분 연초록 새순이 아기 손바닥 만하게 펼쳐지는 부분에서는 줄기가 이리 저리 방향을 트느라 S가 곡선을 만드는 것처럼 휘청인다. 허릿병 때문에 여전히 고생인 내가 S자 벵갈이한테 감정이입이 되는가 싶다. 그러면서 몇번이고 몇날이고 얘를 보면서 바로 세워야지, 세워져야지 하다가 또 몇주다. 


마음속에 들어찬 미안함이 금세 잊힌다. 내 몸이 아니니, 내 마음이 아니니 그런거다. 두고 두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지만, 또 나갔다 다시 들어왔다 하는 동안 또 잊힌다. 몸이 기우니 마음이 기우는 건데, 몸나이를 통해 몸으로 배우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잘도 모른다. 하기사 차 안에 넣어 둔 짐도 집으로 올려야지, 올려야지 하면서 일주일, 열흘이 후다닥이다.  



벵갈이를 데리고 온 화분집에 들러 단돈 천사백원을 주고 지지대를 하나 샀다. 집 주방 서랍에 언제나 있던 빵끈 딱 세 개만 사용해서 지지대와 벵갈이를 고정시켜줬다. 그리고 사흘 째.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주니, 왠지 맨 꼭대기에 있는 연초록 새순이 금방 방글거리면서 웃는 것 같다. 그렇게 넓어지고 깊어지고 환해진다. 


언제나 그렇다. 마음 먹는게 가장 힘들고, 마음 먹는대로 움직이는 게 그 다음 쉽지 않고, 그 마음 그대로 계속 가지고 가는 게 제일 어렵다. 그래서 반려식물을 반려동물을 키우려 하는 가 보다. 그래도 양심은 살아있어서 얘들아 내가 또 그 마음 먹지 않고, 먹은대로 움직이지 않고, 그 마음 그대로 계속 가지고 가지 않으면 신호를 주거라 할려고. 얘들이 나를 키우는 게 분명하다. 


오늘 새벽에 다시 한번 들여다 봤다. 내 어깨 높이만큼 올라 온 맨 꼭대기 잎들이 세 장이나 넓직하게 손바닥을 쫙 펼치고 있다. 그 사이로 물에 젖었다 금방 마른 까실한 한지처럼 포슬포슬하게 네댓개의 새순이 옴~파 하면서 서로 모였다 터질듯 올라오고 있다. 그러면서 속삭인다. 신난다, 신나. 어깨 펴고, 가슴 펴고, 솟아 오를 시간만 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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