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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11. 2023

그래, 너답다

[라이브 다이어리] 4_사진:unsplash

음주 측정에서 일반적으로 0.3% 이상이면 인사불성 상태로 심신을 가눌 수 없는 상태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이가 혈중알코올농도 0.334%로 운전면허가 취소되었단다. 1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되었는데, 그 형이 너무 가속하다면서 항소를 했다.


그런데 항소결과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그 두 배인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혹 때려다 더 큰 혹을 붙인 꼴이다. 그 판결을 맡은 이도 술을 참 좋아한다. 주종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원칙이 하나 있다. 혼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가 나와 고향 친구인 ** 판사이다. 네모 대기업에서 고문 변호사를 하다 판사로 갈아탔다. 기업의 불합리한 면을 알면서도 변호를 해야 하는 게 천성에 맞지 않아서다. 그는 어릴 적부터 바람직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기준점이 되곤 했다. 


사법 고시가 있던 시절에 신림동 옥탑방에서 6전 7기 끝에 법조인이 되었다. 일곱 번의 여름과 겨울에서 옥탑방의 뜨거움과 냉정함을 그대로 몸으로 기억하면서. 그동안 옆에서 같이 지켜보면서 그런 바람직한 흙수저가 중요한 결정을 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자연스레 다짐하게 되었다. 


관사에 올려오라 해서 같다. 그 흔한 오피스텔 원룸을 하나 받아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한참을 살고 있다. 그런데 냉장고에 그 좋아하는, 그 흔한 자그마한 캔 맥주 하나도 없다. 나보다 술을 더 좋아하고, 그 친구덕에 와인을 마시게도 되었지만 한 번도 흐트러지는 걸 본 적이 없다.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형제들 챙기고, 천천히 천천히 부모님 두 분 다 잘 보내드리고, 세상이 제대로 잘 돌아가는 데 아주 아주 아주 작은 역할 하나 하고 있다고 늘 겸손한 친구덕에 내가 더 빛난다. 그 친구를 보면서 사람이 가장 가치로울 때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맞게 행동할 때라는 평범한 진리를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된다. 


바로 '답다'라는 말은 그 친구에게 정말 잘 어울린다. 이번달이 가기 전에 우리 집과 더 가까이로 이사를 온다. 오십이 넘어 처음으로 자기 이름의 자그마한 아파트를 마련해서. 절반이 은행 꺼라지만. 그래서 더욱 너답다. 어서 와라, 친구야. 



- 관련 뉴스 : https://www.sedaily.com/NewsView/29R161NFNW


한참 전에 써 놨던 일기를 꺼내 다시 읽어 보다 **이네 가족 이야기가 있어 옮겨 본다.


< 2019년 0915 일요일....추석다다음날 

오전 11시. 아내와 수업준비를 하려고, 노트북 가방을 챙겨 싣고, 유학파 출신의 건물주님 아들이 운영하는, 만화카페로 향했다. 문이 닫혀 있다. 여유롭게 쉬는 가 싶다. 순간, 아내와 나의 눈이 맞닿았다. 그리고 방향을 틀었다. 하얀 들판아래 뻥 뚫린 도로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아내의 제안으로 강화도로 향했다. 큰아이, 작은아이, 막내 코코가 모두 좋아하는, 강화도 그 집에서 고구마도 한 박스 사고, 섬쌀도 사고, 드라이브도 하자고.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는 노트북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일산으로 향하는 외곽도로로 올라설 때 아내가 말했다. **이가 오늘 10시에 관사로 돌아갔단다. 일이 많아서. **이는 7년 차 판사다. 대법원으로 옮긴 후 일이 너무 많아, 일산집에도 오지 못하는, 주말부부처럼 살고 있다. 4학년, 2학년 두 형제와도 놀아주지 못한다. 집에서도 판결문에 매달린다. 


아내에게 형제 데리고 강화도 같이 가자고 했다. 아내는 얼른, 재수 씨에게 톡을 했고, 30여분 뒤에 일산에 들려 재수 씨와 두 형제를 태웠다. 그렇게, 우리 다섯은 파란색 위에 펼쳐진 하얀 들판 아래를 부드럽게 달렸다. 젓갈시장에 들러서 두 형제가 좋아한다는 오징어젓, 낙지젓, 명란젓을 샀다. 부장연수 때 몇 번 들렸던 단골집 노파께서 내가 같이 왔던 일행들을 기억하신다. 그 덕분에 뚜껑을 닫지 못할 정도로 명란젓을 담아 주신다. 


내친김에 아내와 재수 씨는 경쟁이라도 하듯 꽃게도 샀다. 트렁크에 가을이 가득 실렸다. 햅쌀, 고구마, 꽃게, 명란젓, 낙지젓, 오징어젓. 점심은 길가 편의점에서 컵라면 파티를 했다. 어린 형제는 자주 못 먹는 컵라면 짜장을 바닥까지 다 긁어먹는다. 우리는 장화리 일몰조망지로 향했다. 마침, 물이 빠져나가 맨발로 진흙 속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반듯한 형 00 이가 먼저 들어오고, 마지막까지 엄마한테 허락을 구하던 00 이도 맨발로 뻘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뻘의 부드러움을 만끽했다. 노을 앞에서 형제들을 바라보는 재수 씨의 눈빛이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다시 일산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형제는 노곤하게, 행복하게 잠들었다. 장화리 노을이 우리를 내내 따라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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