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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10. 2023

사랑이 녹아 있는 장소

[일상여행8]...사진:unsplash

나의 일상을 잠깐 벗어나 타인의 일상 곁으로,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게 여행의 시작이다. 그러나 결국 나의 여행과 타인의 일상이 겹쳐 펼쳐지는 것, 그게 여행의 끝이다. 나의 일상에 겹쳐진 여행자들을 만날 때를 생각해 보면 된다. 결국 여행은 공간, 장소에 버무려진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움직임이다. 여행의 본질은 낯설고 익숙함의 구분이 아니다. 익숙함은 그저 낯익은 것일 뿐, 그 본질을 이해하고 본성대로 움직이고 생각한다는 것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니까.                  


인간은 누구나 장소감placeness을 느끼는 곳에서 안정과 안전, 안락함을 느낀다. 특정 장소에서 가지게 되는 인간의 정서적 감정. 그 감정을 좇아 그런 장소를 찾으려고 평생을 여행하는 것이다. 이미 찾았다면, 그곳에서 되도록 오래 머무르기 위한 묘안을 만들고 실천하는 게 바로 일상이 된다. 그것이 바로 여행을 통해 얻는 궁극적인 것, ‘토포필리아’(topophilia)이다. '사랑philia이 녹아 있는 장소topos'이다. 곧 사람이 장소와 맺는 정서적 유대다. 


가끔은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은 이유다. 우리는 어느 한순간도 나, 우리, 사랑이 정서적으로 유대감을 가진 장소를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그렇게 느끼지 못하거나 덜 느낄 뿐이다. 나의 토포필리아는 내 컴퓨터 안 폴더 속에도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나만의 토포필리아를 두드린다. 사랑이 넘치는, 정서적 유대감이 깊은 나만의 공간 찾기, 갖기, 살기. 자기만의 토포필리아Topophilia는 살아야 찾을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이게 여행의 본질이다.   


우리 생의 첫 여행은 가족과 함께 한 공간과 시간이었다. 그래서 여행은 가족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너무나 익숙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장소, 활동, 시간. 같이 걷고, 먹고, 일상에 얹혀진 비트를 공유하고, 생각을 나눈다. 위로를 주고받고, 서로의 안정과 안전을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정서적 유대감을 갖는다. 갈등을 통해 조정의 시간을 갖는다. 그 경험치의 누적이 여행의 결과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라는 별의 모든 이들은 가족 안에서, 가족을 떠나 이미 여행 중이다. 태어난 자체가 운명적인 여행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오늘도 운명적인 여행을 위해 떠나고, 걷고, 탐색하며 산다. 먹고사는 과정에서 언제나 나만의 토포필리아를 찾아서. [지금, 여기, 언제나의 오늘]에 '잘 다녀오겠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 


다음주에 태평양을 날아 다른 이들의 일상으로 잠시 옮겨 갈 예정이다. 열여덟 따님과 함께. 그곳을 여전히 자신의 일상으로 잡아두는 데 서투른 아드님. 그 옆에서 지켜보느라, 지켜주느라 애쓰는 처형, 조카를 만나러. 내가 가져간 일상이 그들의 일상과 겹쳐지면서 그들의 토포필리아를 나눠갇는 경험. 언제나 그 경험은 내 인생의 가장 훌륭한 영양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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