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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ug 18. 2023

진정한 해방

한참을 지났나 싶은데 이제 딱 일주일입니다. 한 달 전 오늘. 아드님, 처형, 조카가 함께 3년 동안 살고 있는 동네로 출발한 게. 미래(?)를 도모한다며 열여덟 따님도 같이 동행을 했네요. 갑작스럽게 결정한 일정이라 예산 확보(!)도 없이. 무작정. 하지만 아드님을 보고 3년 만에 3주를 같이 살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부쩍 커버린, 이제는 어른이 된 듯한 아드님 덕에 오히려 나 스스로가 충전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한참을 그때의 나를 더듬더듬 기억이 나고, 비춰 보이기도 하더군요. 


어제 스물아홉 조카한테 연락을 받았습니다. 12월 중에 3주 정도, 처형은 1주 정도 한국에 나올 수 있다고. 그러면서 일정을 알려줬습니다. 티켓팅을 좀 해달라고. 알았다, 알았다 했습니다. 벌써 12월에 기대됩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국에서 재회하는 거라. 조카가 보내 준 링크로 들어가 봤더니 1인당 직항 왕복이 220만 원 정도로 나와 있습니다. 한 달 사이에 정상이 되었네요. 한 달 전 갑자기 티켓을 구할 때 직항 가격이 극성수기라고는 하지만, 600만 원이 넘었습니다. 국적기도, 에어캐나다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난생처음으로 환승 티켓으로 다녀왔습니다. 거의 절반 가격이었으니까,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한 달 전 갈 때는 아시아나를 타고 LA 탐브레들리 공항에서 유나이티드 항공으로 환승해서 밴쿠버로, 지난주 나올 때는 에어 캐나다를 타고 시애틀 터코마 공항에서 아시아니로 환승해서 인천으로 오는 일정. 그 노선에 3년 전 아드님과 탔던 에어캐나다가 들어 있어서, 아시아나가 들어 있어서 심리적으로 좀 편하다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그렇게 일주일 전. 밴쿠버 공항에서 시애틀로 하는 에어캐나다 노선에서 짐을 실었습니다. 밴쿠버 공항에서 주로 국내선이 날아다니는 자그마한 터미널에서 말이지요. 한산했습니다. 따님이 키오스크에서 체크인하고 출력된 boarding pass와 baggage 영수증을 들고 데스크로 걷는데 나이 지긋한 에어캐나다 여직원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직접 우리 캐리어 두 개에 수화물 스티커를 붙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탑승 게이트로 이동해 근처에서 아이쇼핑도 하고 오랜만에 국내 뉴스도 들여다봤습니다. 


그때 메일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보니까 에어캐나다에서 보낸 거더군요. 옆에 있는 따님한테 보여줬더니 그럽니다. 아빠, 우리 시애틀에서 캐리어를 찾아서 뛰지 않아도 된다는데, 하고. 잉, 무슨 말이지?. 네. 그랬습니다. 갈 때처럼 미국 내 환승 구간에서는 직접 캐리어를 찾아서 다시 바꿔 타는 비행기로 직접 실어야 했었습니다. 한 달 전 환승할 때는 그나마 환승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환승구를 찾아 삼십 분을 넘게 걷고 다시 붙이고 해도 시간이 괜찮았는데, 일주일 전에는 환승 시간이 2시간이 채 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신경이 쓰였습니다. 갈 때처럼 짐이 많지 않아 가벼운 캐리어 두 개였지만 말이지요. 여전히 환승 방법을 찾고, 동선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는데, 우리가 짐을 알아서 아시아나로 연결해 줄 테니까 당신들은 편안하게 안전하게 여행을 즐기라, 는 아주 친절한 메일이 왔던 겁니다. 그것도 수화물을 붙인 지 채 삼십 분이 지나지도 않아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건 물론 터코마 공항에서 텀블러에 시원한 물을 한번 더 채우고, 나와 앞뒤로 하루 차이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향수 브랜드를 생일 선물로 사느라 구경하는 여유까지 생겼었습니다. 그렇게 11시간 넘게 비행을 하고 오후 6시쯤 인천 공항에 도착했지요.


5번 벨트에서 이십여분을 기다리다 수화물을 토해내는 벨트가 멈추었는데도 선물이 담겨 있는 캐리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내 캐리어 저 안쪽에 넣어 주었던 환승 티켓 뒷면 baggage 영수증을 찾아냈습니다. 친절한 그분이 직접 붙여주었던. 그리고 바로 앞 아시아나 데스크로 갔더니, 피곤한 얼굴이지만 입술에 힘껏 미소를 머금은 나이 지긋한 남자 직원이 눈인사를 먼저 합니다. 그렇게 바코드를 찍어 보더니 이럽니다. 손님 그 캐리어가 지금 밴쿠버 공항에 있다네요. 에어캐나다에서 처음부터 이 비행기에 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일 AC8883 편으로 보낸답니다. 그러면 아마, 언제쯤 도착할 건데, 그걸 우리가 댁으로 딜리버리 할 겁니다,라고. 그러면서 끝에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그런다고 하는데 저희는 에어캐나다가 일하는 걸 잘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ㅎㅎㅎ 하고. 


다음 날, 일요일 아침. 아내와 동네 근처에 새로 생긴 산책로를 걷고 있을 때 인천 번호가 찍힌 일반 전화가 왔습니다. 대부분 이런 번호는 받지를 않는데 그날은 받아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아시아나 직원이었습니다. 남자 직원의 웃음소리에 섞였던 말처럼 에어캐나다께서 하루 늦게 붙였답니다. 그래서 언제쯤 올 거라고. 하루 늦건 어쩌건 붙였다는 데 괜찮다 했습니다. 그리고는 황토가 깔려 있는 길을 아내와 앞뒤로 맨발로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이번에는 모르는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받아야겠다 싶었습니다. 딜리버리 직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자연스럽게 내 캐리어를 집 앞에 배송할 예정인데, 그 시각이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랍니다. 아파트 현관 비번을 문자로 좀 남겨달랍니다. 네? 했더니, 툭 하고 끊겼습니다.


아마 네?를 못 들은 모양이었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소리는 바빴고, 몇 군데를 더 그렇게 전화를 해야 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처형이 생일 선물로 사 준 신발, 아내가 지인한테 부탁을 받은 영양제들, 스낵류, 친구한테 줄 아이스 와인, 따님이 한 박스 챙겨 담은 에너지바가 들어 있는 캐리어는 그렇게 우리 나라가 해방된 지 72년째인 날 새벽 2시 02분에 우리 집 문 앞에 도착해서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펼쳐진 캐리어를 보면서 따님도 아내도 즐거워합니다. 나도 살림 팍팍한 처형이 거금으로 써 사준 새하얀 운동화가 눈에 팍 들어와 그 매장이, 처형의 어색한 영어 발음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일은 에어캐나다가 저질러 놓고, 고생은 아시아나 직원들이 하는구나 해서. 물론 낮에 푹 쉬고, 자기 삶을 꾸리고 새벽에만 그렇게 전담을 하는 팀에 속해 있을 것 같습니다만. 갑작스럽게 동포애가 흘러넘쳐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한 달 가까이 그 동네에서 살면서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본 것들 속에 묻어 있는 확실한 경계들이 떠올라서였습니다. 단순 접촉 사고만 나도 트라우마 예방을 위해 정신과 상담이 필수라는 그 동네에서. 무엇보다 사람과 환경을 가장 먼저 우선시하는 그들의 삶의 가치관 때문에 말입니다. 


두 살, 세 살, 네 살 아이들을 돌봐주는 조카는 정기적으로 마사지, 물리치료 등을 받으러 다니더군요. 그런데 그 비용의 20% 정도만 본인이 지불한다고 합니다. 그게 거기 룰이라네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뭐, 나중에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 싶은 시스템입니다. 여하튼 이제 우리도 좀 천천히 받고, 새벽에는 좀 푹 쉬고, 편안하게 자기 삶을 꾸릴 수 있는 그런 시스템으로의 해방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그려려니 하는 시간도 우리의 인생속에 넉넉하게 들어차 있을 수 있는 진정한 해방. 그게 진정한 인생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의 삶이 누군가의 삶으로 인해 밀려나고 찌그러져서는 안되니까요. 불편해져서는 안되니까요. 그런걸 의식하지 못한 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더더욱 안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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