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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ug 16. 2023

더 위험한 무의식

낯선 사람들이 불쑥 우리 집에 들어왔다. 강제로. 칼을 차고, 총을 들고. 그리고는 내 집에서 자기들과 같이 살아야 한단다. 그러지 않으면 집을 통째 빼앗아 간단다. 머리채를 잡고 발로 차고 욕지거리를 하는 건 일도 아니다. 잠도 못 자게 하고 식구들을 야밤에 하나둘씩 어디론가 데려가 실컷 일 시키고, 줘 패면서. 그것도 모자라 내 말도 못쓰게 하고 지들 말로만 살아야 한다고. 그러는 사이 이게 다 같이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그들의 말에 동의하고 앞잡이 노릇을 하는 식구들도 생겼다. 다행히 살아 돌아 온 식구들은 몸도 마음도 지금껏 정상이 아니고.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내 집을 마음대로 휘저어 돌아치다, 동네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렇게 내 집에서 도망쳐 나갔다. 그 이후 7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우리 식구들끼리 싸우는 커다란 아픔도 수차례 이겨내면서 나도 내 집도 이제 내 것으로 정말 평화롭게 살아왔다 싶었다. 그런데 그것들은 완전히 내 집에서 나간 게 아니었다. 우리 집을 헤집어 놓는 동안, 나의 생각과 의식 속에서도 마구마구 돌아치고 있었다. 나와 우리 식구들의 무의식 속에. 말로, 표현으로, 정서로. 어떤 게 맞는 건지 분간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장들이 그때의 아픔은 집주인인 내가 먼저 잊고, 잘 지내보자고 강요한다. 그리고 그 제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그것들보다 더 못된 사람들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런 무의식이 가장 많이 표현되는 게 말이다. 배워서 쓰는 말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알고 있는 말. 원래 그렇게 쓰게 되는 오랜 시간 동안 참 많은 표현들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마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어릴 적 음식맛을 기억해 내는 것처럼. 무의식이 무서운 이유다. 교실에서 어린 세대들이 쓰는 표현 역시 스스로가 어디에서 출발해서 자기 것이 되었는지 모르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5년이 훌쩍 넘은 내 기억 속의 또렷한 한 장면 이후에 그렇게 나는 우리가 쓰는 말의 어원을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메모를 해 놓는다. 지금도. 이유는 단 하나. 어린 세대들에게 전하려고. 


와꾸->액자(틀), 가꾸목->각목, 가다마이->양복재킷, 쓰봉->양복바지, 우와기->상의, 에리->옷깃(카라), 가라->가짜, 간빠이->건배, 겐세이->방해, 마끼->말이, 곤로->화로(풍로), 곤조->근성, 구라->거짓말, 기도->문지기, 삐끼->호객꾼, 기지->옷감, 나가리->취소, 나베우동->냄비국수, 나와바리->세력권, 노가다->막일, 돈부리->덮밥, 다꽝->단무지, 다다미->온돌방, 다라이->대야, 다마->전구, 다마네기->양파, 다이->받침대, 타스->12개, 닭도리탕->닭복음탕, 단도리->채비, 차단스->찻장, 덴뿌라->튀김, 뎃빵->우두머리, 도나스->도우넛, 도라이바->드라이버, 따불->더블, 뗑깡->생떼, 뗑뗑이->물방울 무늬, 로타리->로터리(둥근거리), 리야카->리어커(손수레), 마후라->소음기, 만땅->가득채움, 앵꼬->바닥남, 입빠이->가득, 바께쓰->양동이, 바리깡->이발기, 보루->포, 부라자->브래지어, 비니루->비닐, 빠꾸->퇴짜, 빤쓰->팬티, 빵꾸->펑크, 뼁끼->페인트, 뽀롱나다->들통나다, 사라다->샐러드, 사바사바->뒷거래, 사시미->생선회, 스시->초밥, 아나고->붕장어(바다장어), 사쿠라->벚꽃, 샷시->창틀, 세꼬시->뼈회(막회), 쯔끼다시->기본안주, 센베이->전병과자, 소바->메밀, 쇼부->승부(흥정), 시다->보조원, 아다리->적중, 앙꼬->속을 채우는 물건, 앗사리->시원스럽게, 야끼만두->군만두, 오뎅->어묵, 와리바시->나무젓가락, 요지->이쑤시개, 유도리->융통성, 야메->뒷거래, 요이 땅->준비 탕, 자바라->주름물통, 자꾸->지퍼, 찌라시->전단지, 찐빠->절름발이, 추리닝->운동복, 쿠사리->면박, 테레비->TV, 함바->현장식당, 화이바->안전모, 호로->덮개, 후까시->부풀머리, 후앙->환풍기, 히마리->기운, 기라성->두드러진, 다대기->다진 양념, 모찌->찹쌀떡, 와사비->고추냉이, 가봉->시침질......


물론 이 중에서 지금 세대들과 세대를 구분하는, 우리 세대만 알아듣는 일본어도 꽤나 있다. 하지만 세대 구분 없이 마치 우리말처럼 쓰이는 것 역시 꽤나 있다. 구라 치지 마, 뎃빵이 누구야, 한 타스가 12개네, 따불로 드릴 테니, 여기서는 뗑깡 쓰지 마, 뗑뗑이 치지 않기, 담배 한 보루, 사람이 사바사바 해서 그러면 안 되지, 샷시를 바꿔야 하는데, 아다리가 딱 맞아서 다행이야, 앙꼬 없는 찐빵 같아, 연예인 찌라시에 보면, 학교에 추리닝 입고 오면 안 되지, 후까시 좀 그만 잡어,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배출한, 사람이 와사비를 듬뿍 넣은 초밥......


문제는 이런 단어들에 그치지 않는다는 거다. 우리의 구어적 말투와 문어적 기술 속에도 맥락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런 상황은 참 애매하다, 날씨 때문인가 갑자기 센치해지네, 나는 원래부터 곤색을 좋아했어, 자기야 이 소라색 어때, 에구 새건데 벌써 기스가, 이건 귤이 아니라 낑깡이라고 부르는 거야, 어이 후배 요번에 들어온 신삥 맞지, 우리 아버지 십팔번이었는데, 눈만 마주치면 쎄쎄쎄 하던 친한 사이였는데, 몸에 좋은 엑기스, 초밥 먹을 때 나는 락교가 그렇게 좋더라구, 어 새로 샀어 간지 나네, 이건 가죽이 아니라 레자네, 그 친구는 원래 그렇게 무대포였나, 이 가게는 미싱사를 한꺼번에 3명이나 뽑는구나, 너의 농담은 항상 식상해, 그 사람은 생각이 항상 전향적이야.....


지금까지 든 사례는 그래도 조금 낫다. 대체할 수 있는 우리말이 있으니까. 그런데 버스, 택시처럼 아예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본어도 여전하다. 우리가 즐겨 먹는 짬뽕. 표준국어사전에는 초마면으로 불러야 한다고 나와 있지만,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여기 초마면 곱빼기 하나,  짜장면 하나. 쉽지 않다. 또 있다. 지리탕. 복지리, 대구지리할때의 그 지리다. 복냄비 요리, 대구냄비요리를 의미하는 말이라는 걸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 글을 쓴 결정적인 이유는 아드님 방문을 준비하면서였다. 오빠를 만나러 가면서 따님은 캐리어 한가득 자기 짐을 챙겼다. 몇 번을 넣었다 풀었다 하다 갑자기 그런다. 아빠, 고데기뒤에 뭐라고 쓰여 있는 줄 알아? 머리 인두기야 인두기. 그래서 살펴봤다. 진짜 그렇게 쓰여 있다. 교실에서 가끔 보이는 그게 머리카락을 지지는 인두기였던 거다. 아, 그러고 보니 고데기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싶었다. 버스를 버스라고 불렀던 것처럼. 따님이 찾아낸 고데기. 이 단어는 심지어 고데하다라는 동사까지 데리고 있다. 


또 있다. 여전히 쓰이는 말인데 일본어 같지 않은 일본어들. 가정(집안), 가계(생계), 가처분(임시처분), 각서(다짐글), 견적(추산), 견출지(찾음표), 계주(이어달리기), 고수부지(둔치), 고지(알림), 고참(선임자), 공임(품삯), 공장도가격(공장값), 기합(혼내기), 납기(기한), 납득(이해), 낭만(로망), 내역(명세), 대금(값), 대절(전세), 대하(큰새우), 대합실(기다리는 곳), 도색(색칠), 매립(매움), 매물(팔 물건), 매상고(판매액), 매점(가게), 명도(내어줌), 부지(터), 사물함(개인보관함), 시건장치(잠금장치), 생애(평생), 세대(가구), 세면(세수), 수당(덤삯), 수순(차례), 승강장(타는 곳), 시말서(경위서), 식상(물림), 역할(할 일), 오지(두메), 육교(구름다리), 입구(들머리), 입장(처지), 잔고(잔액), 절취선(자르는 선), 지분(몫), 차출(뽑아냄), 체념(포기), 추월(앞지르기), 축제(잔치), 출산(해산), 할증료(웃돈), 학부형(학부모), 회람(돌려보기), 택배(가정배달), 잔업(덧일), 각선미(다리맵시), 집주호우(장대비).......


마지막으로 우리말의 문장 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 '~적'이라는 어미 역시 일본어의 잔재이다. 예를 들면, 감상적(감상에 빠져있는), 정치적(정치에 관련된) 문제, 과학적(과학에 바탕을 둔) 지식, 개별적(개개의) 사건, 개방적(열린) 문화, 주관적(주관에 따른) 견해, 경험적(경험을 통한) 연구, 구조적(구조상의) 특성, 감각적(감각이 잘 뭍어난) 문체, 폐쇄적(닫힌) 사회, 설명적(설명이 주가 되는), 구체적(자세히 묘사된) 설명.......


언어는 작게는 그 사람의 마음을 크게는 그 공동체의 정신을 반영하는 위대한 유산이다. 나라가 나라답게, 사람이 사랍답게 되는 수많은 기준 중 으뜸은 아마 그 사람이 어떤 언어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일거다. 품격말이다. 우리도 아직 틀리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버려야 할 단어, 표현들을 구분하는 모습만으로도 아이들이 어린 이들이 덜 틀려 먹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길일 꺼다.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동네에서. 꼰대라고 밀어내는 걸 두려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그렇게 품격 있는 언어를 쓸 수 있도록 자주 안내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많다면 그 심성이 덜 모가 나고 공격성이 누그러질 것은 확실하다는 생각이다. 말투가 인상이고 인상이 인성인 건 주변에서 너무 흔하게 목격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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