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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07. 2023

이제 이틀하고 2개 남았다

[풀하우스]15

일은 없다가 한꺼번에 몰리는 것. 그게 일이지 싶습니다. 이번주가 그렇습니다. 원래 이 맘 때면 비슷한 모양새였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일이 이가 되고 삼이 되는 것 같네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대학 진학하는 아이들 수시 접수가 시작됩니다. 유니(버시티)는 금요일까지 딱 5일간입니다. 


내일까지 모든 아이들의 상담을 마쳐야 합니다. 학과, 대학은 물론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지원 유형을 선택해야 합니다. 진학을 하지 않는 아이는 더더욱 학부모와의 상담도 병행해야 합니다. 간혹 집에서 대화가 없어 아이는 진학하지 않겠다는데 학부모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8월 여름 방학. 전체 건물에 에어컨 공사를 하느라 거의 모든 건물이 찜통이었습니다. 본 건물에 붙어 있는 별채 3층. 2개의 교실에서만 기존 에어컨이 작동되었지요. 그곳에서 오전에 첫 번째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에 한 명씩 4-5명. 오후에는 방과 후 수업이 있어서 오전에만 가능했습니다. 


그 무렵 바질이 도착했습니다. 개학을 며칠 앞두고. 눈으로만 쳐다보다 도착한 지 일주일 뒤에 펠렛에 바질 씨앗 10개를 펠렛 하나에 한 개씩 심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낮에 상담이 이어지는 동안, 펠렛 속에 씨앗들도 꿈틀거렸나 봅니다. 사흘이 지나면서 씨앗이 하나둘씩 빼꼼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보통 여섯, 일곱의 아이들과 상담을 합니다. 이것저것 찾아보고 자기 생각이 또렷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거나 욕심이 아예 없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준비하고 집안 회의까지 마친 아이들은 두 번, 세 번의 상담을 진행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상담이 완료된 아이들도 서넛.


일주일 동안 10개의 펠렛에서는 순서대로 싹이 올라왔습니다. 새벽 공간에서 거실로 나가는 시각이 보통 6시입니다. 거실에 불을 팍 하고 키면 마치 가녀린 바질이 눈을 찔끔하듯이 고개를 숙입니다. 그 고개들이 두 개, 네 개, 일곱 개. 엊그제 월요일부터는 여덟 개로 늘었습니다. 아직 두 개의 펠렛 속에서는 초록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들 상담은 선착순입니다. 칠판에 상담이 가능한 시간대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러면 상담을 원하는 아이들이 직접 원하는 시간대에 이름을 씁니다. 다른 아이들도 같이 볼 수 있게. 그러다 보니 준비성이 뛰어나고 급한(?) 아이들은 여러 번 하게 됩니다. 물론 비는 시간에 지나치다가, 일부러 불러서 짧은 상담도 병행하지요. 


오늘, 내일.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올해 진학 상담이. 공교롭게도 앞뒤 번호인 여리와 벼리(가명, 둘 모두 여학생) 두 명을 제외하고는 1회 이상의 상담이 끝났네요. 상담이 완료된다는 건 대입상담시스템에 관심 대학을 등록한 후 개별 리스트를 출력하는 것까지를 의미합니다. 


바질 펠렛 10개는 아내가 파스타 전용으로 새로 구입한 하얀 접시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물이 마르면 물을 흥건히 뿌려주면서 일주일째 수경재배(?) 중입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까지 두 개의 펠렛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 분명 일주일 전 씨앗을 물에 불릴 때 쭉정이가 되어 동동 뜨는 씨앗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지난 주말. 유약을 바르지 않아 진흙 질감이 묻어나는 자그마한 화분 3개를 이미 구입해 두었습니다. 옆 책상 위에서 3개의 진흙 화분이 아래 테이블 위 펠렛 10개의 접시를 내려다보고 있네요. 이럴 경우에는 판단을 해야 합니다. 펠렛을 이제 옮겨 심을까 아니면 기다려 볼까 하고. 그렇게 사흘이 나흘째가 되고 있습니다. 


여리는 엄마가 러시아인이지만 본인은 한국인입니다. 당연히 한국어, 한국말은 잘합니다. 엄마와 통화를 할 때 옆에서 엄마한테 번역을 해주는 정도로 소통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국에서 무엇을 하며 살지는 정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5월 축제 때 칠판에 분필로 그려낸 그림이 예술의 경지였습니다만. 제 눈에는.


벼리는 잠 때문에 서너 번 지각을 한 것 빼곤 학교 정말 열심히 다닙니다. 이번 생은~, 청춘~ (갑자기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이런 드라마에 엑스타라로 출연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말없는 아이입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지 틈만 나면 자면서 방학 때부터 상담 신청을 한 번도 하지 않네요. 복도에서 슬쩍 두 번 말을 해 두었는데도 말이지요.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내일까지 상담을 완료하면 주말에 아이들의 개인적으로 준비를 해두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가장 큰 부분은 원서 접수비 준비.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개인적으로 온라인상에서 접수를 시작합니다. 접수가 완료되면 관련 서류를 출력해서 다시 우편으로 발송하는 절차가 완료되어야 지원 완료가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 하는 지원 유형을 선택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말입니다. 


이제 두 명 남았습니다. 벼리와 여리. 물론 확정 짓지 않은 아이들이 아직 절반 이상이지만. 한두 곳만 더 결정하면 되는 게 대부분 아이들의 상황이라 별 문제는 없지 싶습니다. 2회 미만의 상담으로 거의 확정된 아이들은 여섯 정도입니다. 지원 횟수, 지원 유형에 거의 제약이 없는 컬리지로 처음부터 진학하려고 하는 아이들입니다.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새벽 공간에서 거실로 나가 잠깐을 바닥에 무릎 대고 앉아 들여다보면 보입니다. 차이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쪼옥 올라오는 싹이 있습니다. 어떤 싹은 일주일 사이 너무(!) 커버려  머리를 펠렛 위에 살짝 올려놓고 쉬고 있습니다. 어떤 싹은 딱 봐도 참 조심스러워합니다. 팍 솟아오를까 말까를 항상 염두에 두는 것 같이. 이제 2개 남았습니다. 주말 아침까지 펠렛 두 개를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주말에 한 달여간의 상담을 결산하려 합니다. 그러는 사이 펠렛을 이제는 옮겨 심을지를 결단해야겠지요. 아니, 화분으로 옮기는데 두 개의 펠렛을 어찌할지를 결정해야겠지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 다른 상황에서는 물론이지만 비슷한 상황이어도 자기를 발현하는 방식, 태도, 순서가 다 다르다는 것 자체에서 진짜 평화를 느낍니다. 그래서 더 좋은 새벽입니다. 



--------(한 줄 요약)

평화는 희망이 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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