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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29. 2023

추추, 추추~ 추추, 추추~

[#알쓸#지리]6




2023년 9월 29일. 불금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불금이 아니지요. 온 동네가 고마워하는 날, 온 나라가 감사에 들뜬 날. 그 고마움과 감사함을 퍼주고, 나누고, 받고 하기를 수 천년동안 이어 온 오늘. 우리 고유의 감사절, 추석날 아침입니다.


올해 추석에는 55백만 인구 중 80%가 넘는 4천만 명 이상이 전국 구석구석으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중 92% 이상이 승용차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어릴 적 추석 하면 떠오르는 교통수단은 기차였습니다. 부모님이 은퇴 후 우리 집 근처로 상경하기 전까지는 계속 그랬습니다.   


어릴 적 살던 고향에서 어디론가 이동할 때,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로 홀로 유학을 갈 때, 군대를 갈 때, 서울로 상경을 할 때도 항상 이용하던 교통수단은 기차였습니다. 차도 없었지만, 몸은 물론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이지요. 올 추석에도 1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자기 동네를 찾아갑니다.


기차 하면 그냥 좋습니다. 앉을 수 있고, 잘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쉴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통로를 쉼 없이 왔다 갔다 하던 먹거리 카트도 추억입니다. 추추추추, 추추추추 하는 리듬감 좋은 잔잔한 쇠바퀴 소리도 정겹습니다. 무엇보다 기차를 타면 '만난다'는 기억 속에 설렘과 위로를 한꺼번에 경험했던 추억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세요? 한옥 골목을 걷다 보면, 라이딩을 하다 보면, 지역 문화재를 돌아보다 보면 셀프로 또는 직원이 찍어 주는 스. 탬. 프. 그 스탬프가 우리나라 기차역 구석구석에도 있답니다. 그런데 기차역 스탬프가 다른 점은 바로 스탬프 하나하나 마다 그 지역의 대표적인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거예요. 자, 어디 한번 볼까요?




인천역은 차이나 타운의 거대한 아치형 입구가 그려져 있습니다. 부천역은 판타스틱 국제 영화제 관련된 소품과 복사꽃이, 평택역은 대중국 무역을 담당하는 경기도 유일의 국제항인 평택항이 도안되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 지역의 특성, 즉 지역성을 반영하는 도안들입니다.


그래서 철도스탬프만 보고 아 이 지역은 말이야, 할 정도면 지리적 감수성이 매우 높은 겁니다. 잣이 그려진 가평역,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 부근을 그려 넣은 양수역, 끊어진 철길 앞서 멈춰서 있는 문산역, 평화의 상징 비둘기와 함께 신의주까지 날아갈 듯 철길을 그려 넣은 경의선 마지막 역 도라산 역, 별산대 탈을 담은 양주역.


KTX를 자랑하는 광명역,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그려 넣은 옛 서울역, '봄봄'과 '동백꽃'으로 유명한 작가 김유정이 태어난 춘천을 기념하는 김유정역, 거울 같은 호수 가운데 정자를 그린 경포대 강릉역, 동강 래프팅을 역동적으로 그린 영월역, 어릴 적 추억이 가득한 Z자 스위치백 기찻길이 그려진 삼척 도계역, 추암 촛대바위가 떠오르는 태양을 받고 있는 새해 아침맞이 명소 동해역.


수백 미터 지하에서 석탄을 캐내 올리던 거대한 크레인이 그려 넣어져 있는 정선 사북역, 다섯 그루의 소나무와 KTX의 콜라보를 강조하는 청주 오송역, 일병 휴가 때 아내인 그때의 친구와 놀라 갔던 대전엑스포 마스코트 꿈돌이가 그려진 대전역, 수도권과 KTX, 전철로 연결되면서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천안아산역, 토굴 안에서 젓갈을 발효시키던 전국 3대 젓갈 시장 중 하나인 광천역, 백제왕국의 왕관이 그려진 공주역.


도담삼봉 위 정자를 도안한 단양역, 진짜 새우로만 만들어요를 강조하는 새우젓의 강경역, 육군공군해군 장병을 상징하는 호국이가 그려진 계룡역, 독립기념관의 겨레의 탑이 도안된 천안역, 걷기 여행의 메카 근대로를 표현한 대구역, 공장 굴뚝이 즐비한 공단을 그려 넣은 기계 로봇 산업의 메카 창원역, 하회탈춤을 추는 안동역.


석굴암과 불국사 삼층석탑의 경주역, KTX가 지나는 신경주역, 마늘의 의성역, 인삼의 풍기역, 수박의 함안역, 스탬프 도안 자체가 배모양인 나주역, 양파가 그려진 무안역, 누렇게 익은 고개 숙인 벼이삭을 묵직하게 느껴지는 김제역, 다기를 그려 넣은 녹차의 보성역, 꼬막이 넘치는 뻘과 소설 태백산맥을 도안한 벌교역, 호남선 기차에 타고 있는 세발 낙지가 그려진 목포역.


갯벌의 갯골이 역동적으로 도안된 순천역, 용광로에서 쇳물이 쏟아져 내리는 그림의 광양역, 세계문화유산 고인돌을 머리에 이고 있는 화순역, 소싸움 하는 장면이 그려진 청도역,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하면서 배웠던 부석사가 들어가 있는 영주역, 쌀 수출 항구의 배를 역동적으로 표현한 군산역, 성춘향이 그네를 타고 있는 남원역, 섬진강 기차마을이 도안된 곡성역.


우리나라 전국의 기찻길은 4,900km가 넘습니다. 서울과 부산의 10배의 거리네요. 그 거리 사이사이에 위치한 역은 무려 1,253개. 크건 작건 그 역 하나하나 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또 살아온, 살아가는 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지금 전국 방방곡곡, 동네 구석구석에서 메아리치겠다 싶어 집니다.


그 메아리는 다시 도로와 기찻길을 따라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어제에서 오늘을 지나 다시 내일로, 당신 마음에서 내 마음으로 이어지겠지요. 그 메아리 덕에 항상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는 또 그렇게 살아내는 거겠지요. 아름다운 메아리를 잘 간직하면 다음을 살아낼 세대들에게 기찻길처럼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겠지요. 아마 하늘 높이 날아올라 내려다본다면 온 나라가 달빛처럼 밝고 은은한 잔칫날, 불금일 듯합니다.




------------(한 줄 요약)

추추추추~, 추추추추~. 이 소리는 설렘 가득한 마음의 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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