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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28. 2023

물은 셀프가 아냐

[풀하우스]17

동물원. 예전에 한참 이슈가 되었던 문제다. 아니, 지금도 진행형이다. 다만 우리가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마음으로 외면하고 있어서 그렇지. 그래서 그렇지 싶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동물원에 갇혀 있는 동물들의 복지, 잘 살아가는 모습, 행복한 모습 등을 자주 접할 수 있게. 특히 어린이들한테. 아마 지금 어린이들은 내가 엄마덕에 어릴적 식물원 같았던 우리집덕에 식물원이 뭔지 몰랐듯이 동물들이란 원래 동물원에서 자라는 존재인 것으로만 알고 어른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진다. 진짜, 지금에 와서 이 거대해진 문제들을 몇 컷 더 추가해서 만화처럼 한방에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는 하다. 진짜로.


그런데 같은 맥락에서 식물원도 그렇게 보인다. 그곳이야 말로 철저하게 인간 편의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곳이다. 식물원이라기보다는 식물들 인큐베이터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강제로 불빛을 습기를 온도를 스마트하게 조절하면서까지 모아두는 곳이니까. 동물들은 불편하면 소리라도 내고, 상처가 내 눈으로 보이기도 하니까 측은지심을 유발해서 공론화할 수 있으니까. 생명이니까. 그런데 생명인 건 식물도 마찬가지인데. 물론 동물원, 식물원 자체는 문제가 없다. 잘 관리되고 도움을 받으면서 인간의 여가에 도움이 될 수가 있으니까.


문제는 우리 집이다. 아니, 나다. 식물 원까지는 아니어도 자주 보고 싶은 마음에 스무 개 가까운 화분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다. 그 사이를 반려견 타닥이가 돌아다닌다. 우리 집도 여느 집 못지않게 타닥이와 식물들이 뒤섞여 있는 반려관이다. 반려식물,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 반려인이 사는 집이다. 결론은 뻔하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사랑을 먹고 산다, 는 건 아름답게, 그냥 좋게 표현한 것일 뿐. 물을 먹어야 하고 사료를 먹어야 한다. 그것도 따박 따박 정기적으로. 그러면서 바람도 맞고 햇빛도 적당히 쬐고. 이 대목에서는 우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딱 하나 차이점은 당연히 반려식물, 반려동물 스스로 하지 못할 뿐.


처음 우리 집을 반려관으로 만들면서 모른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 가만히 나를 반성하면서 들여다보면 꼭 집에 설치해 놓은 와이파이 단말기 같다. 반려식물과 반려동물이. 언제나 소리 없이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내가 마음이 좀 생기면 눈에 띈다. 그런 면에서는 타닥이 보다는 화분들한테 더 많이 미안해진다. 혼자 옮기기 어려운 아레카 야자수, 지난주 5년 만에 분갈이 한 뱅갈 고무나무 원, 투, 너무 잘 자라서 커다란 화분이 좁아지고 있는 스파티필룸, 임파첸스 데즐 원(윤봉선), 투(윤선화), 쓰리(윤화롱), 이제 막 새순이 신나게 줄기가 되고 있는 바질 원, 투, 쓰리 - 얘들은 아직 이름이 없다. 한창 바쁜 따님이 신경을 전혀 쓰지 못하고 있어서 -. 여기에 스투키, 산세베리아, 다육이들, 벤자민, 크루시아, 인도고무나무까지.

 

얘네들은 아무래도 집을 잘못 선택했지 싶다. 하기야 선택하라고 누군가가 기회를 줬다면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식집사 40년 차 엄마가 그러신다. 식물을 저렇게(?) 키우는 게 아니라고.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아내는 당당하다. 내가 다 데려온 아이들이니까. 타닥이 때문에 문을 활짝 열어 놓을 수 없는 우리 집과 달리 엄마의 화분들은 환기는 기본이다. 엄마는 환기가 식물 기본권이라 신다. 갇혀 키울 거면 왜 갇다 놓느냐고 타박하신다. 거기에 며칠을 간격으로 분무기 샤워를 시킨다. 이파리 하나하나에 내려앉은 미세먼지를 닦아 내신다. 까맣게 묻어 나는 하얀 수건을 보여주시는 건 잊지 않으시고.


그뿐이 아니다. 거기에 아버지 도움을 받아 제철 분갈이 해줘, 화분 개수를 늘리는 재미를 알고 계신다. 엄마네 집이야 말로 반려식물관 같다. 그다음이 포인트다. 식물들을 집에 들여놓은 이유를 증명하신다. 꽃이 피면 꽃이 이쁘다고 칭찬하고 피었다고 칭찬하고 떨어지면서 스스로가 거름이 된다고 칭찬하고. 새순이 밀어내는 줄기가 기특하다고 칭찬하고 하루가 다르게 커 올라가는 모습을 하루도 놓치지 않고 확인하면서 다시 칭찬하고. 이 대목에서 그 뭐 양파 실험을 언급할 필요도 없지 싶다. 엄마네 집 식물들은 언제나 반짝반짝 윤기가 나는 건 물론,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화알짝 밝아 있다.


다시 우리 집. 기껏 내가 해주는 게 일주일에 딱 한번 물 주는 것. 그뿐인 것 같다. 그 외에는 거의 없다. 물끄러미 13층 아래를 내려다보며 창틀에 앉아 가끔 짖는 타닥이 때문에 출근하면서 창문도 활짝 열어 놓지 못해 환기도 그 나 저나다. 그러니  바람도 햇빛도 다 셀프다. 물도 셀프면 좋으려면 하고 게으른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지난주 5년 된 뱅갈이(뱅갈 고무나무) 분갈이가 나비 효과를 일으키는 걸까. 축 처져 있던 우리 집 반려식물들이, 내가 엄마의 반에 반에 반도 하지 않는데, 일주일 동안 일제히 새순을 열심히 밀어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항상 벵갈이 옆에 있던 인도 고무나무. 얘는 원래 크는 건지 뭔지 모르게 5년간 그렇게 있었다. 도톰한 잎을 보면 물을 머금고 잘 사는 것 같은데 키도 이파리 개수도 늘 같았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벵갈이 분갈이를 하려고 준비할 때 가운데에 뽁하고 새순이 손톱만큼 생기더니 일주일 만에 아기 손바닥 만하게 연하디 연한 새잎이 펼쳐졌다. 키가 나만해지고 있는 뱅갈이를 올려다보면서 많이 부러웠나 보다, 분명. 여기에 바람과 햇빛을 바질에게 양보한 임파첸스는 연분홍빛이 감도는 하얀 꽃봉오리를 여섯 개 넘게 터트려 놨다.



그게 고마워서일까. 새끼손가락 끝마디 만했던 바질 새순 여덟 개가 전부 새끼손가락 만하게 쏙 올라왔다. 두 개의 널찍한 큰 잎 사이사이에 적보리만 한 연한 잎들이 서너 개씩이나 달려 있다. 원래 물만 줘도 신나 하는 스파티필름은 화분이 터질 것 같다. 한꺼번에 부풀어 오른 듯 풍성해졌다. 가운데에서 돌돌 말려 올라오던 연초록의 연한 잎이 스르르 풀려 펴지기를 반복한다. 아레카 야자수는 꼭 억새 같은 새순을 밀어낸다. 가운데가 누가 장식하느라 억새 하나 새로 꽂아 놓은 것처럼. 그렇게 꽂힌 듯한 새순은 목도리도마뱀 양 갈퀴처럼 파사사 하고 갈라져서 펼쳐진다. 지난주에만 그렇게 세 개가 더 늘어났다.


일과 일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 그게 일상의 가장 큰 과제이지 싶다. 그 구분을 좀 더 여유 있게, 신나게, 행복하게 밟는 게 가장 좋은 여행이지 싶다. 그러면서 좀 더 어른스러워지는 과정이지 싶다. 우리 일상은, 일생은 바쁘기만 해도 바쁘지 않아도 문제다, 분명. 그렇게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뭐 특별하게 잘못한 게 없는 데 미안해질 때가 있다. 나 열심히 잘 살아내고 있는데, 왜 이리 헛헛하지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새순들을 들여다보다 보면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고 여전히 모를 것도 같다. 그러면서 이 메시지를 셀프로 느끼면서 조금은 더 철든 어른이 되볼라고 나 스스로 반려인을 자처하고, 우리 집을 반려관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 누가 데려다 키우라 그랬냐고. 네가 좋아서 데려다 놓은 거잖아. 아, 누가 쓰라 그랬냐고. 네가 좋아서 그냥 쓰는 거잖아. 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 환청인가.




---------------(한 줄 요약)

말 안한다고 함부로 대하면 안되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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