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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Oct 08. 2023

기잘잘

[읽고 쓰는 일요일]7_꿈의 도시(오쿠다 히데오)




소설 속 가상도시 유메노 시는 늘 날씨가 흐리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이 도시에 살고 있는 높고 낮은, 부유하고 가난한 이들의 삶, 그 속에서 얽혀 있는 군상들의 팍팍한 일상, 삶과 죽음의 이야기 역시 날씨처럼 우중충하다.      


욕심을 가졌지만 열정적이지만은 않은 공무원,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 병든 노모를 위해 벗어나려는 여성, 시골 동네를 벗어나고 싶은 고등학생, 이권에 둘러싸인 불륜남 시의원, 폭주족 출신 세일즈맨. 이들의 삶의 고뇌가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고뇌는 도시 속 꿈이 되어 버린다.

     

그들의 우연히 한 사거리에서 만난다. 우연한 교통사고로. 그때도 역시 하늘은 흐리다. 우리 주변에서 교통사고는 늘,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 속에 우리가 포함되지 않았을 뿐, 지금은. 그러나, 누군가는 그 속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있다.


넓은 도로는 좁은 골목, 도로에서 출발한다. 그 덕에 삼거리가 되고, 사거리, 오거리도 된다. 그 덕에 사람들은 이어진다. 각자의 길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서로 이어진다. 스쳐 지나치는 타인.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이어져 있다. 멈추기만 해도, 부딪히기만 해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스쳐 지나가는 익숙한 타인에게는 그리움이 묻어난다. 잊었던 추억이 솟아난다.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해져 한참을 멍하니 서 있어야 할 때도 있다. 얼른 외면하고 싶은 때도 있다. 마치 자신이 금방이라도 물들 것 같은 불안함에 먼저 혼자 서두른다. 모든 것은 다시 자신만의 좁은 골목, 도로에서 출발한 망상의 결과다.  


모든 사람들은 꿈을 꾼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꿈을 꾼다. 그렇게 살아내다 서로 연결된다. 일이 없으면 모르지만, 일이 생기면 그 연결고리를 명확하게 현실 속에서도 인식하게 된다. 연결 고리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면서 이어가면서 끊어내면서 다시 살아낸다. 그리고 다시 꿈을 꾸려고 한다.


운전을 한다. 길을 달린다. 골목에서 작은 길로 다시 큰 길로 다시 골목안으로 지하로. 그러는 사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넘쳐난다. 원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내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수가 없는 거라는 것을. 엄연한 규칙과 기준, 엄격한 지침, 엄중한 절차에 둘러싸여 있는 세상 속이라는 것을.


나로 인해 따님, 아드님, 아내는 야잘잘에 푹 빠져 있다. 원래, 야구는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는 의미. 그런데  특히 두 여인에게는 야구는 잘 생긴 사람이 잘한다로 더 잘 통한다. 어찌되었건 야잘잘이 우리 가족을 더욱 강한 한 팀으로 만들어 주었다.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항상 추켜세워주는 따님, 25년 무사고라고 항상 함께 하려고 하는 아내. 두 여인들에게 나는 운잘잘로 통한다. 운전을 잘 생겨서 더 잘 하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항상 운전의 끝은 짧건 길건, 아주 길 건 웨이팅이다. 기다림이다. 요리조리, 이 길 저 길로 다 잘 빠져 나왔다 하더라도.  

     

반차를 내고 이리저리 뛰어다녀보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보고, 무작정 거대한 대문 앞에서 노크를 해본다. 무한 반복되는 ARS속 기계음이 자동차 안 가득하게 채워져도 차창 한번 열었다 닫으면 되는 거니까. 살다 보면 그 힘을 어떻게 나누어 쓰는지가 참 중요하다는 걸 내 마음대로 되는 게 별로 없을 때 더욱 느낀다. 


운전은 기다리는 힘이 필요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한 심장이 더욱 많을수록. 그래서 진정한 운잘잘은 기잘잘이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도로에서, 사거리에서 깨닫는다. 차 안에서도 차 밖에서도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으려면. 


이런 삶의 궤적을 꿰뚫는 통찰력을 지닌 히데오는 픽션으로 가장한 이야기 속에서 강조하고 있다. 지금, 인간이어서, 인간으로 살아있을 때, ‘사랑을 표현하라”라고.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면서, 한참을 휘돌아 내려가는 깊은 지하 주차장으로 빨려 들어가면서도 이 뻔한 명제를 다시 한번 가슴속에 깊게, 깊게 새겨 본다.



...........(한 줄 요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고 표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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