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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Oct 07. 2023

어! 종기 아니었어?

[동네 여행자] 12

짧지 않은 추석 연휴를 잘 보내고 나간 엊그제. 수업을 다녀오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 번 와 있었습니다. 따님이었습니다. 문자나 톡은 없었습니다. 낮에 가끔 안부 전화를 그냥 합니다. 타이밍이 잘 맞으면 바로 통화를 하곤 했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후 4시가 조금 안된 시각이었습니다.


어, 아빠. 나 지금 피부과야. 무슨 진단서 써 준데. 아, 아니 전원서.

그게 뭐야? 전원서? 의사 선생님이 뭐라 그러시는데?

어, 여기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큰 병원 가보래. 얼른

어? 그래? 뭐라시는데?

크기나 모양을 보니까 염증은 분명 아닌데, 정확한 건 조직검사를 해 봐야 한다고 해.

조직검사? 아, 그래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서류 잘 챙겨서 와.


그리고는 얼른 검색을 해봤습니다. 시내에 있는 피부과 다른 전문의를. 그리고 후기가 많고 꽤 큰 피부과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저녁 7시까지 진료를 보고 있었습니다. 따님에게 링크를 걸어 보내면서 톡을 함께 보냈습니다.


걱정하지 마. 이 병원으로 한번 더 가봐. 다행히 늦게까지 하네. 지금 거기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면 되지, 뭐. 그려, 그려.   


우리 따님은 06년생입니다. 고2 나이지요. 하지만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결국 최종 스스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작년에 고졸 검정고시를 잘 치르고 친구들보다 두 살 일찍 고졸이 되었습니다. 다다음주 목요일에 열일곱이 되네요. 5월 말쯤 등을 보여주면서 물었습니다. 아빠, 여기, 여기 뭐 났어? 뾰루진가. 누우면 아프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없고, 돌출된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추석 연휴에 다시 보여 준 그 부위가 새카맣게 몽우리가 져 있었습니다. 만지면 아파했습니다. 그래서 피지낭이나 종기구나 했습니다.


그렇게 무심히 연휴 끝난 수요일, 영어 학원에서 자습 안 하고 일찍 집 근처로 돌아와 혼자 피부과를 간 겁니다. 마침 그날 송선생님을 초빙해 큰 행사를 진행하고 있던 아내도 간단하게 우리 셋 톡에서 걱정 말라고 따님을 다독이는 짧은 톡을 올려놓았었습니다. 3시간짜리 강의 진행을 하느라 짬이 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한테서 다시 톡이 온 건 퇴근하는 차 안에서였습니다. 신호 대기 때 확인해 보니, 나와 같이 늘 만나던 그곳으로 송선생님과 같이 이동 중인데 저녁을 함께 할까였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송선생님을 소개해 준 이가 저이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 아내와 결혼하기 전이었습니다. 교사가 된 지 3년째. 연수 제목에 이끌여 일정보다 늦게 찾아간 곳에서 처음 만난 영어선생님이 송선생님이었습니다. 나흘간의 연수 마지막에 송선생님이 호기롭게 한 스스로의 약속 한마디가 25년간 저의 교직 생활의 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오랫동안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전국으로 다니면서 저도 꼭 같은 약속을 드렸습니다. 그 약속은 송선생님처럼 제가 말씀드린 이야기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지고, 말한 대로 살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한 것처럼 해도 잘 되지 않을 겁니다. 그게 학교란 곳입니다. 그럴 때는 주저 말고 연락하세요. 그렇게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해결책이 나올 겁니다. 우리 인연은 지금부터니까요.


그렇게 지금껏 인연을 맺고 있는, 십여 년 선배인 나의 멘토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따님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참통이라는 전국교사모임을 만들어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해 왔습니다. 학교 현장을 참여와 소통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어 가자는 취지지요. 그러는 사이 20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선생님은 은퇴를 저도 직접적인 활동은 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그 모임은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해주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최00 선생님. 7월 9일 좀 전에 임종하셨습니다.


같은 모임에서 처음 만난 부산 아우님이 몇 년 만에 보낸 문자였습니다. 새벽 3시에. 그렇게 한참만에 보낸 문자가 안부도 묻지 못하는 문자였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날도 아내처럼 최00은 송선생님을 부산까지 모셔다 자기 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날이었답니다. 그리고 송선생님을 KTX로 배웅을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뒤 교실에서 쓰러져 사흘을 응급실에서 보내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답니다. 오십도 되지 않은 나이에.  


후텁지근한 짙은 새벽의 허망함을 어찌할 수 없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식도로 위산이 역류하는 것처럼 답답한 가슴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답답함으로 써 내려간 글을 제수씨가 브런치에서 우연하게 본 모양입니다. 그렇게 송선생님이 연락을 해 왔습니다. 그 글( https://brunch.co.kr/@jidam/1068)을 영상으로 만들어 아우님 49제에 제수씨와 남매들 앞에서 낭독하겠다고.


오후 6시가 다 되어서 아내와 A강사분을 만났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한 저보다 두 분은 먼저 막거리를 한잔씩 하고 계셨습니다. 무엇보다 표정도 말투도 25년 전 여름, 배화 학당에서 만났던 그대로였습니다. 짙어진 주름만 빼고. 막거리를 두 잔, 세 잔 하는 동안 처음 만난 나에게 - 물론 나를 포함한 모든 수강생들에게 한 - 약속대로 살아가시는 모습을 25년 넘게 보여주고 있으신 게 너무 고맙고,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은퇴하시고 얼굴이 더 좋아지셔서 더욱 말이지요.


송선생님을 연수밖에서 처음 만난 곳도 아차산 막걸릿집이었습니다. 여전히 막걸리를 좋아하시는 덕에 우리 부부는 덩달아 세 병이나 같이 비웠습니다. 두부 김치에 이어 닭볶음탕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구포까지. 안주를 저녁 삼아 셋이어 그렇게. 그러는 사이사이에 아내는 연신 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른 읽고 얼른 보내고 다시 대화에 같이 나누면서. 긴 연휴 끝이고 이른 시각이라 넓은 포차 안에는 우리 셋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잠깐 송선생님이 화장실을 간 사이 아내는 여전히 톡을 보내고 있습니다.


몇 분 간이나. 그러다 다 보냈는지 잠깐 나를 쳐다보면서 표정으로 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눈빛이 촉촉합니다. 왜?라고 짧게 물어보려는 데 송선생님이 다시 자리로 돌아옵니다. 안자마자 항상 강의 때마다 끌고 다니시는 자그마한 캐리어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십니다. 스티커, 장난감 마이크 등을 아내에게 건네면서 그럽니다. 아까, 학교에서는 너무 많아서 못 드렸다고. 수업할 때 요긴하게 쓰시라고. 아내는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고마워합니다. 그런데 그 표정이 참 많이 어색해 보였습니다.


포차밖으로 나오니 빗방울이 하나 둘 날립니다. 지하철로 향하는 송선생님을 배웅하고 우리는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얼른 이야기를 꺼냅니다.


자기야, 대리기사 먼저 불러. 얼른. 빨리 집에 가야 해. 빨리. 두 번째 찾아 간 병원에서 악성종양 그랬데. 큰 병원으로 얼른 가서 조직 검사를 해 보라고. 뭐, 뭐라고?


아내는 송선생님 앞에서 울음이 터질까 봐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거였습니다. 두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면서 아내 등에 손바닥을 가져다 올리고 천천히 천천히 쓸어내렸습니다. 그러면서 나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악성종양? 그거 종기 아니었어? 어?



                                                                                                                      (다음이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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