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Oct 09. 2023

행복 연습

[다시 쓰는 월요일]  7_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오늘 다시 쓴 글]

'오늘 14:00 경기(가평, 양주) 호우 경보, 산사태, 상습 침수 등 위험 지역 대피, 외출 자제 등 안전에 주의 바랍니다'


윙윙. 교실 여기저기서 동시에 울린다. 아이들과 나의 폰에 안전 문자가 날아든 거다. 친구가 보낸 거다,라고 아이들한테 사족을 붙인다. 그런데 진짜다. 고향 친구가 국민안전처에서 안내 문자 발송 담당 역할을 하고 있다.(5년이 지난 지금은 다시 고향 도청으로 옮겼다)


어제 오후 이후 5번째 문자다. 지금 학교는 체육관 터파기 공사 중이다. 그래서 운동장 서편에 잇던 비가림 캐노피가 모두 철거된 상태다. 그 자리에 체육관이 기다랗게 들어설 예정이어서. 신관에서 본관으로 이동 수업을 오려면 공사 중인 곶 맞은편 매점 앞으로 돌아서 걸어 다녀야 한다. 


갑작스럽게 다시 내리기 시작한 폭우를 뚫고, 투덜거리는 대신 웃음으로 넘겨준 아이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내려왔다. 그러자 갑자기 또다시 빗줄기가 거세지더니 이내 3층 교무실 앞 창틀과 이어진 조회대 양철 지붕을 요란하게 두드린다. 땅땅땅 땅.. 따따땅... 땅... 땅땅. 그 소리에 창문을 조금 더 닫을까 하고 내다봤다.


그때 내가 서 있는 발 아래쪽에서 쑤욱하고 다섯의 아이들이 하나 둘 운동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섯 모두가 우산을 쓰지 않았다. 마치 대단한 경기를 위해 입장하는 선수들 같았다. 수업 때문에 이동하는가 싶었다. 어 그런데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나, 온몸으로 비를 다 맞으면서, 했다.   


다섯 아이들의 머리에는 머플러 같은 수건이 둘러 있었고 바지는 파란색 여름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마 얼마 전 있었던 체육대회 때 맞춘 유니폼 같았다. 상의는 동복 체육복 차림. 약속이라고 한 듯 맨 앞에 선 아이가 멈춘 곳에서 일제히 신관 4층을 올려다봤다. 내 시선보다 한층 더 높게. 


한 아이가 나의 시선을 살짝 가져갔지만 이내 다시 한층 더 높은 곳으로 옮겼다. 교무실 위 층. 고3 교실이다. 다섯 아이들은 이내 약속이라도 한 듯 굵은 빗줄기를 맞으면서 한 명, 한 명 포즈를 만들었다. 동그라민가 싶더니 하트가 되고, 짧지만 운동장 쪽으로 이리 저리 쪼르륵 쪼르륵 앞사람 허리춤을 잡고 뛰어다녔다. 


다섯 아이들은 시종일관 서로 웃으면서 뭐라 이야기를 나눴다. 그 말소리가 전혀 들리지는 않았지만 웅웅 넓은 운동장에 뭉쳐서 울려 퍼졌다. 그 사이사이를 굵은 빗줄기가 촤아 촤아 소리를 내면서 가득, 흠뻑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이 입은 얇은 파란색 바지는 이내 짙은 회색으로 물들었다. 다리가 운동장 빗물을 빨아들이듯이.


순간 거대한 그라운드 위에서 현란하게 손이 그려내는 샌드아트처럼 보였다. 그러면서 다섯 아이들과 나의 시선 사이에서 비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치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정말 신나 보였다. 마치 아주 기분 좋은 짧은 동영상 하나를 감상한 것처럼 내 기분까지 좋아졌다.  

  

그러다 말캉거리는 나의 기분 사이에 훅하고 끼어드는 장면이 하나 올라왔다. 생각 속으로. 고1 때 우리 반. 키가 엄청 컸던 그 아이는 항상 혼자였다. 스스로가 자신을 혼자이게 만드는 아이였다. 그 당시에는 인권, 복지 이런 표현은 물론 ADHD란 처방도, MBTI란 용어도 학교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때다. 


그 아이는 학교에 일찍 온다. 교문 앞에 살던 나만큼. 그런데 오면 엎드려 잔다. 계속 잔다. 그러다 1교시 수업을 시작하면 혼자 스르륵 일어나 나간다. 운동장으로 나간 그 아이는 축구골대 위로 크게 크게 운동장을 빙빙 걸었다. 혼자서 계속. 그렇게 시간 내내 걸었다. 다른 반 체육시간에도 개의치 않고. 


수업이 끝나고 애들이 쉴 때 그 아이는 교실로 들어온다. 그리고는 다시 엎드린다. 정말 깊게 빠져 내내 잠들어 있을 때를 빼고는 그렇게 하루에 몇 번을 반복했다. 그런데 더욱 의아했던 건 어느 선생님도 그 아이를 막아 세우지 않았다. 말을 걸지 않았다. 우리 담임선생님조차도. 


2층이었던 우리 교실에서는 목을 조금만 빼면 그 아이가 걷는 모습이 9시에서 2, 3시 방향 정도까지는 쉽게 보였다. 그 이후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내 기억에는 또렷하게 남아 있지는 않네,라는 생각이 드는 사이.  폭우 속에서 마음껏 웃으며 밀치고 어깨를 치고 춤동작을 하는 아이옆에는 꼭 같은, 꽃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늘 그러듯이 출근해서 운동장으로 나 있는 어제 그 창문을 열었다. 환기를 위해. 그러다 앉은자리에서 고개를 들어 신관을 바라봤다. 4층 오른쪽 맨 끝 교실 창문. 안전바 위에 나란히 파란색 바지가 서너 개 조르륵 걸려 있었다. 어제 그 아이들 바지라는 건 금세 알 수 있었다. 그 행복한 영상을 본 내 눈은.


행복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젖은 바지처럼. 하지만 그 바지를 바라보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보는 건 눈마다 다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눈이 처음부터 그런 장면에서, 상황에서 행복을 찾아보고 마음에 담지는 못했기 때문에 더욱. 이제야 조금 더 깨닫는다. 미래가 항상 낙관적인 사람은 지금 먼저 행복하다는 것을.



---------( 한 줄 요약 )

연습도 실전처럼 행복하자!




[원래 글]

5. 행복이란(2018년 8월 29일 14:56)     

“오늘 14:00 경기(가평, 양주) 호우경보, 산사태・상습침수 등 위험지역 대피, 외출자제 등 안전에 주의바랍니다”     

아이들과 나의 손전화기로 안전 안내문자가 날아들었다. 어제 오후 이후 5번째 문자다. 지금 학교는 체육관을 짓기 위한 터공사중이다. 그래서 운동장 서편에 있던 비가림 케노피가 철거된 상태다. 신관에서 본관으로 이동수업을 오려면 공사중인 곳 맞은편 매점앞으로 걸어다녀야 한다. 갑작스럽게 다시 내리기 시작한 폭우를 뚫고, 투덜거리는 대신 웃음으로 넘겨준 아이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왔다.    

그러자 갑자기 또다시 빗줄기가 거세지더니 이내 3층 교무실 앞 창틀 조회대 양철 지붕에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열린 창문으로 바깥을 잠시 내다 봤다. 그때 5명의 학생들이 무리지어 나오기 시작했다. 수업 때문에 이동하는 가 싶었다. 그런데 다섯명 모두 머리에는 머플러 같은 수건을 둘렀고, 바지는 얇은 파란색 바지를 입었다. 아마 체육대회때 함께 맞춘 단체복 같았다. 그리고 상의는 동복 체육복 차림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성큼성큼 운동장쪽으로 모여 들었다. 그러자 신관 4층에서 몇몇 아이들이 뭐라고 소리쳤다. 고3 교실이다. 무리들도 그쪽을 보더니, 이내 약속이라도 한 듯이 굵은 빗줄기를 맞으면서 한명, 한명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마, 사진을 찍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짧지만 운동장쪽으로 이리저리 쪼르륵 앞사람을 따라 뛰어다녔다. 뭐라고 이야기 하는지는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참으로 신나있는 것 같았다. 파란색 바지가 이내 짙은 회색으로 물들었다. 다리가 운동장에 흐르는 빗물을 빨아들이듯이.  

폭우를 온 몸으로 마음껏 맞으며 까르륵 거리는 아이들을 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고3, 열여덟의 팍팍하고, 밋밋하고, 헛헛하게 불안함 마음한 나이. 혼자 저러고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그 옆에 또 그 옆에 꼭같은 친구들이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걱정이 들었을텐데, 친구들이랑 함께 있는걸 보니까 너무가 예뻐보인다고. 행복해 보인다고. 건강해 보인다고.    

다음날 아침, 늘 그랬던것처럼 출근해서 운동장으로 나있는 교무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그러다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들어 신관을 바라보았다. 4층 오른쪽 맨 끝 교실 창문. 안전바위에 파란색 옷가지에 서너개 걸려있다. 어제 그 아이들이 바지 같다. 행복이란 친구다. 그 친구들이랑 앞으로도 그렇게 비바람 같이 맞으며 언제까지나 행복했으면 하고 바래본다. 

작가의 이전글 기잘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