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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26. 2023

걷는다는 것에 대하여

[동네 여행자]9

누구에게나 시간은 '히루'로 존재합니다. 언제나 '하루'가 시간의 전부입니다. 어제도 하루, 오늘도 하루, 내일도 하루입니다. 지금도, 마침 그때도, 하필 그럴 때도, 타이밍 좋게도, 운이 넘칠 때도 다 '하루'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걷습니다. 나의 '하루'를 많이, 깊게 그리고 천천히 더 만나려고.


조용한 우리 동네에 핫플레이스가 하나 생겼습니다. 여름을 지나면서 100미터 남짓한 거리에 눈사람 모양의 황톳길이 생겼습니다. 가운데에는 봉화대 같은 조각상 분수가 있습니다. 거기서 솟아 나온 물이 호리병 모양처럼 생긴 바닥을 지나면서 짧은 개울을 만듭니다. 그런데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개방되어 있어 더 좋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정신 운동에 더 가깝지 싶습니다. 시작부터가 그렇습니다. 내가 나의 몸을 써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의식이 먼저 작용해야 가능합니다. 나가자, 걷자, 움직이자 하고. 의식하지 않고 걷는 나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움직임이 습관이 되었을 뿐 걷기의 시작은 의식이 먼저입니다. 참 좋은 습관입니다.


하루를 걷고 나서 퇴근한 후 다시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고 나면 이미 늴리리 만보에 가까워집니다. 저녁을 먹고 다시 자그마한 황톳길까지 걸어와 신발을 벗고 걷고 또 걷습니다. 돌고 또 돕니다. 그러다 보면 익숙한 타인들의 '하루'가 잘 들립니다. 분명 같이 걷는 건 몸운동이지만 마음운동 효과가 더 큽니다. 나도 타인도.  


나의 속도에 맞춰 걷다 보면 몸보다는 마음으로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생각으로 걷는 나를 발견하는 건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익숙한 타인들의 대화, 표정, 다 내 이야기 같은 익숙한 노랫말, 맥박처럼 펄럭이는 비트 그리고 바람 냄새, 풀벌레 소리, 목덜미, 겨드랑이, 종아리 사이로 스치는 촉감.


달릴 때보다 걸을 때는 이어폰을 한쪽 귀에다만 합니다. 걸음에는 오감으로 나에게 오는 수많은 것들로 채워집니다. 그래서 이 길이 내 길이 만나 싶을 때는 더 걷게 됩니다. 걷고 또 걷습니다. 그러다 보면 익숙한 타인이 나에게 해주는 말이 들릴 때가 있습니다. 딱 내 이야기일 때가 있습니다.


황톳길로 가는 골목. 그 가운데에 듬성듬성 심어져 있는 나무. 그 나무를 빙 둘러 나무 의자가 있습니다. 그 의자에 발을 안쪽으로 넣고 할머니들이 마주 보고 앉아있습니다. 보행보조기가 할머니들 뒤에, 옆에서 기다립니다. 여지껏 자신의 길을 걸어왔을 할머니들의 걸음을 이어가려고.


할머니들은 서로 자기 말만 합니다. 각자 자기 이야기만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게 나중에 그 이야기를 다 알아 듣고 맞장구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냥 그 광경이 힐링이 됩니다. 눈물 짓게 합니다. 안 듣는 척하면서 지나치지만 잰걸음으로 다시 돌아와 또 듣고 싶어 집니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데도 아장아장 열심히 걷습니다. 쪼그라든 어깨와 허리에서 세월이 보입니다. 잘 살아낸 게 표정에서, 말투에서 다 보입니다.  


병원 다니고 있어, 약이 수북햐, 그이는 요즘 숫제 안 나오더만, 결국에는 허리 수술했어, 엊그제 막 집고 일어서는데 궁둥이가 흔들흔들, 얼매나 구여운지, 그 집 아들이. 아 고 며느리 때문에,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산다자녀 속 터져.  


황톳길 앞뒤로 지나치고 따라오는 이들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기는 마찬가집니다. 아내와 눈이 맞으면 풋 하고 웃을 때도, 떨어지는 눈물을 잡으려고 눈꼬리에 힘을 줄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오천보가 만보되고 만보가 만 오천보가 되면 늴리리야 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싶어지는 저녁이 깊어집니다.


걷는다는 것, 그것은 이동, 움직이는 행위 그 이상이 담겨 있습니다. 걷다 보면 얻어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내 걸음을 차곡차곡 기록해서 돈도 모아 줍니다. 걷기에도 욕심이 체계적으로 달라붙게 만들어 줍니다. 참 좋은 습관이 되게 해주는 고마운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저 걷는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살아낸다는, 살아간다는 것의 총합입니다. 그저 걷는다는 것은 살기 위해 걷는 것과 걷기 위해 사는 것의 절묘한 균형입니다. 일과 일이 아닌 것 사이를 연결하는 오묘한 결합입니다.  


그저 걷다 보면 삶이 충만해지는 걸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 삶도 참 의미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으로 다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일 다시 눈을 떴을 때 기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 다시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침은 항상 벅차오릅니다.    




----------(한 줄 요약)

걷는다는 것은 나의 오늘을 깊이, 가득 채우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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