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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25. 2023

쉘 위 러닝

[다시쓰는 월요일]  5_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부치는 편지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부치는 편지


잘 달리고 나면 뿌듯함 속에 약간의 허전함이 뒤섞여 있다. 기분 좋을 정도로, 살짝 피곤해지는 느낌 때문일 거다. 달리기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준바할 게 꽤나 있다. 물론 그냥 무작정 달리도 그다지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건 몇 번에 만족해야 할 거다. 그리고 몇 분 간의, 잠깐의 달리기에 그쳐야 할 거다. 일단, 달리는 자체가 즐겁기보다는 숙제가 돼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도 무거워진다. 


첫 번째. 오후 6시에서 7시 사이에 달리기를 시작한다고 전제한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오후 3시 이전에 군것질을 최대한 자제한다. 컨디션을 가장 좋은 상태로 유지한 채 달리기 위한 사전 준비다. 그리고 3시 이후에는 물을 최대한 많이 마신다. 하루 섭취량이 100이라면 오후에는 50 이상을 마시는 게 좋다. 나의 경우다. 그래야 달리는 도중에 배에서 어떤 징후(?)도 느끼지 못한다. 예를 들면 가벼운 복통, 근육 경련, 음식물 역류 같은.


두 번째. 달리는 도중에 들을 음악을 채우는 일이다. 채운다는 의미는 폰에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놓는다는 거다. 지금은 10km를 달리는 데 필요한, 스무 곡 정도를 한 폴더에 넣어 '러닝음악, 러닝음악 1~3' 이렇게 네 개의 폴더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자주 듣고 싶은 음악, 달리기에 별 도움이 없는 음악 등을 그때그때 골라서 다시 정리한다. 그냥 들을 때와 달리면서 심장박동을 느낄 때의 느낌이 다른 비트들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세 번째. 달리기를 하다 중간에 블루투스 이어폰이 멈춰 선 게 두 번이다. 물론 음악 없이도 달릴 수는 있다. 하지만 몸의 움직임이 경직되고 스텝이 엉켜버리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다. 1초, 2초... 그 시간들을 계속 카운트하게 된다. 지난주부터는 늘 사무실 책상에 있는 usb 멀티탭 한 칸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종일 충전 중이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효과가 더 나타난다. 업무를 보는 동안에도, 안 달려도 상상 달리기는 계속 이어진다는 거다. 그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네 번째. 나는 혼자 달린다. 여러 동호회가 있지만, 한 달, 열 번 남짓 달린 지금 시점에서는 무리다. 앞으로도 한참 그러지 싶다. 대신 마라톤 대회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달리면서 내가 어느 정도 뛸 수 있는지, 공식 코스를 어떤 느낌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마라톤 대회를 알아보다가 어느 사이트에서 '달리기가 간에 좋은가? 안 좋은가?'라는 글을 우연히 봤다. 글을 다 읽고 나서의 결론. 의학적인 진실은 어떤 건지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해봐야 한다는 것.


다섯 번째. 무엇보다 중요한 준비다. 이거 아주 중요하다. 특별하지 않으면 아내와 보통 비슷한 시간대에 퇴근한다. 차 안에서 아침보다는 조금 이야기를 더 나눈다. 그 이야기 속에 나는 타이밍을 엿본다. 언제 집에서 나와 딜릴까 하고. 마음속에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운동복을 갈아입고, 톡 하고 튀어나오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아내처럼, 아내와 같이 집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늘 어떻게 치우고 빨리 쉴까를 생각해야 하니까. 그 쉴 때가 나는 달릴 때다.  


운동을 즐기지 않는 아내다. 그래서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활용하는 방식을 찾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내의 동선을 유심히 살핀다. 보통 수요일이나 목요일쯤이다. 청소부터. 그러면 얼른 청소에 동참한다. 길어야 30분이다. 아니 집 전체를 청소하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평일에는. 그러면 나도 당당해진다. 내가 쉬는 방식을 존중받는다. '조심해서 다녀와'라는 아내의 응원까지 들을 수도 있다.   


이제는 아내의 평일 루틴에 퇴근하면 내가 달리러 나가는 걸로 자리 잡은 듯하다. '나 오늘 살짝 늦을지도 모르니까 '운동'먼저 갔다 와'하고 메시지가 날아들 때도 있다. 보통은 달리기를 하는데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들어와 샤워를 하고 몇 번 반련견을 데리고 함께 산책을 나갔다. 그랬더니 아내가 변한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를 한 후 저녁 시간에 지쳐 있을 거란 생각을 했었는지도. 그런데 내가 피곤해하지 않고 다시 산책을 나가자고 하니, 자신의 쉬는 방식을 존중받는다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그런데 실제 달리기를 하고 나서는 몸이 훨씬 더 가볍다. 피곤하지 않다. 그리고 수면 안대를 하면 밤에 잠도 잘 잔다. 수면의 질이 달리기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래서 그다음 날 다시 덜 피곤하다. 적어도 달리기 때문에 더 피곤해지지는 않는 거다. 이런 선순환의 고리가 완성되어가고 있는 거다. 이 고리의 완성도를 아내가 옆에서 소리 없이 지켜보고 인정하기 시작한 거다. 세상의 어떤 응원도 가족이 보내는 것만큼 달콤한 건 없다.


달리는 동안 지나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 - 거의 다 익숙한 타인들이다 - 을 바라보면서, 묵묵히 공기 저항을 이겨내는 것은 함께 살이 있다는 희열을 느끼게 해 준다. 공간적으로 막혀 있지 않은, 심리적으로 부담되지 않은, 짜릿한 희열. 혼자 달리지만 나는 언제나 함께 달린다. 달리지 않고 업무를, 일을 하고 있을 때 '오늘도 달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 기대감을 넘어 약간의 흥분을 느낀다. 그 흥분이 업무가, 나의 한주가 리드미컬하게 움직일 수 있는 촉촉한 윤활유다. 



           

    

[원래 글](2018년 9월 13일)

# 달리기를  위한 다섯 가지 준비(180913)     

  계획대로 다 달리고 나면, 잘 달리고 나면 뿌듯함 속에 약간의 허전함이 뒤섞여 있는게 사실이다. 기분 좋을 정도로, 살짝 피곤해지는 몸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요즘은 피곤함도 거의 없지만. 달리기가 체질인가 보다. 그런데, 달리기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준비할 게 꽤 있다. 물론 그냥 무작정 달리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몇 번에 만족해야 할 거다. 그리고 몇분간의, 잠깐의 달리기에 그쳐야 할 거다. 일단, 몸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고, 그 다음은 즐거움이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숙제같은 게 되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첫 번째 준비.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에 달리기를 시작한다고 전제하면, 점심을 먹은 후에는 오후 3시 이전에 군것질을 최대한 자제한다. 특별한 것을, 과식하지 않는 이상 보통의 경우에는 서너시간이 지나면 음식물이 위장에서 소장으로 내려가지만, 컨디션을 가장 좋은 상태로 유지한 채 달리기 위한 사전준비이다. 그리고 3시 이후에는 물을 최대한 많이 마신다. 건강을 위해 하루에 마시면 좋다는 물의 양이 100이라면 오후에는 50이상을 마시는 게 좋다. 나의 경우에는 말이다. 그래야 달리는 도중에 배에서 어떤 징후도 느끼지 못한다. 예를 들면, 가벼운 복통이라든가, 사타구니와 연결된 아랫배가 묵직하다거나, 왼쪽 옆구리가 결릴다거나. 특히, 신물-식도로 위장의 음식물이 소화된 것들이 역류하는 느낌은 달리는 도중에는 가장 큰 곤욕이다. 호흡조절이 매우 힘들어진다-과 같은 증상들 말이다. 

  두 번째 준비. 달리는 도중에 들을 음악을 채우는 일이다. 채운다는 의미는 휴대폰에 괜찮은 음악을 정렬해 놓는다는 거다. 지금은 10km를 달리는데 필요한, 스무곡 정도를 한 폴더에 넣어 ‘러닝음악’, ‘러닝음악1’, ‘러닝음악2’, ‘러닝음악3’ 이렇게 네 개의 폴더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자주 듣고 싶은 음악, 달리기에 별 도움이 없는 음악 등을 그때 그때 골라서 정리한다. 이게, 달리기만큼 큰 즐거움중에 하나다. 음악은 달리기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 문외한인 내게 특별한 선택기준은 그리 있지 않다. 하지만, 선곡을 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아직까지는 손과 다리의 움직임을 리드미컬하게 유지시키는데 도움이 될만한 비트의 음악들이다. 그래서 달리는 도중에 음악 자체에 대한 감흥보다는 비트에 집중하게 되는 단계인 듯 하다. 조금 더 달리기에 익숙해지면 비트보다는 가사나 의미등을 맛보면서 달릴 수 있게되기를.  

  세 번째 준비. 달리기를 하다 두 번이나, 중간에 블루투스 이어폰이 멈춰 섰다. 물론, 음악없이도 달릴수는 있지만, 갑작스럽게 몸의 움직임이 경직되고, 리듬이 엉켜버리는 느낌은 어쩔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난주부터는 늘 사무실 책상에 있는 usb 멀티탭 한칸에는 종일 달리기할 때 사용하는 블루투스 이어폰-모델명:커넥팅 팟-이 충전중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어폰은 세 번째 구입한-물론 아내는 세 번씩이나 이어폰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것이다. 이름이 착하고-회사명이 ‘착한텔레콤’이다-저렴하고, 후기가 좋아 구입했다. 단, 한가지 단점은-아직 나에게 단점은 아니지만-풀레이 시간이 대략 1시간 20분~30분 정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당장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다. 딱 그 시간안에만 달리고 있기 때문에.  

     네 번째 준비. 한달, 열번 남짓 달리고 나서 너무 급한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 가벼운 동네 운동으로 한다는, 전문적으로 무엇인가를 숙제하듯이 하지 않는다는, 무엇보다도 운동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데 한편으로, 달리기는 대부분 혼자 시작한다. 물론, 요즘에는 달리기 동호회가 무척 많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나는 나 혼자에 집중하려는 취향이 강하기 때문에 동호회는 별 관심이 없다. 아마, 직장 동료가 몇 번인가 이야기 한, 배드민턴 동호회-개인적으로는 친한데, 실력에 따라 아예 같이 게임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국대회 결과와 연결되는 실력, 레벨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게임을 하고, 하수는 하수끼리만 움직인단다. 물론 그 사람만의 경험일수 도 있지만-의 이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동호회보다는 마라톤대회에 관심이 생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달리면서, 내가 어느 정도 뛸 수 있는지, 정규 코스를 어떻게 소화해낼 수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라톤 대회를 알아보다가 어느 사이트에서인가 ‘달리기가 간에 좋은가? 안좋은가?’하는 글이 있었다. 3시간만 달리면 간에 저장되어 있는 글리세린이 바닥이 난다는 설명이 붙어 있는 인체사진과 함께. 의학적인 진실이 어떤건지,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봐야 하는 숙제가 생기기는 했다.     

다섯 번째 준비. 무엇보다 중요한 준비이다. 이거 아주 중요하다. 특별하지 않으면 아내와 보통 퇴근도 같이 한다. 퇴근하는 차안에서는 아침보다는 조금 이야기를 더 나눈다. 직장이야기나 저녁 메뉴 이야기 등. 그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타이밍을 늘 엿본다. 언제 집에서 나와, 달릴까 하고. 마음속에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톡하고 튀어나오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아내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아니 싫어하기 때문이다. 보통 아내라는 역할은 집을 먼저 들여다 본다. 그리고, 늘 어떻게 치우고 빨리 쉴까를 생각한다. 계속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자유롭게 하려면 아내의 이 보조에 잘 맞춰야 한다.

  아내의 컨디션을 눈치껏 챙겨본다. 차 안에서. 아내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 준다. 반응을 하려 한다. 집에 들어오자 마자, 아내의 동선을 유심히 살핀다. 아내가 청소하려고 하면-보통 수요일이나 목요일쯤이다-얼른, 청소에 동참한다. 물론 이미 아랫도리는 달리기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에서. 그런데 사실, 마음이 문제다. 언제나. 마음먹고 후다닥-시간적으로 후다닥이고 정성껏 한다-하는데 길어야 30분이 넘지를 않는다. 방 3개, 거실 하나. 그러면 나도 당당해진다. ‘조심해서 갔다와’라는 아내의 격려까지 들을 수도 있다. 아주 가끔.

  이제는 아내의 루틴에 퇴근하면 운동나가는 걸로 정리된 것 같다. ‘나, 오늘 살짝 늦을지도 모르니까, ’운동 먼저 같다와~’. 하고 메시지가 날아 들때도 있으니까. 보통은 달리기를 하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들어와서는 샤워를 하고 몇 번 산책을 나가자고 먼저 이야기를 했다. 반려견을 데리고. 그리고 나갔었고. 아내의 입장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으로 지쳐서 저녁 시간에 늘어져 있을거란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피곤해하지 않으니, 달려오고 나서 다시 산책을 나가자고 하니, 내 운동을 은근히 지지하게 된 것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산책 나가자는 말을 먼저할 때도 생긴다.   

  그런데 실제 달리기를 하고 나서는 몸이 훨씬 더 가볍다. 피곤하지 않다. 그리고 수면안대를 하면, 밤에 잠도 잘 잔다. 수면의 질이 좋아졌다. 그래서 덜 피곤하다. 적어도 달리기 때문에 더 피곤해지지는 않은 것이다. 이를 아내가 옆에서 소리없이, 지켜보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 달려가는 거리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물론, 서로 모르고, 한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고, 그때 그때 대상도 달라지지만-을 바라보면서, 묵묵히 공기 저항을 이겨내는 것은 함께 살아있다는 희열같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공간적으로 막혀있지 않은, 심리적으로 부담되지 않은, 짜릿한 희열. 달리지 않고 업무를, 일을 하고 있을 때 ‘오늘도 달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 기대감을 넘어 약간의 흥분을 느끼는 것 자체가 좋다. 그리고 그 흥분이 좋은 윤활유가 된다. 한주를 리드미컬하게 보낼 수 있는 윤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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