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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24. 2023

왜, 뭐 먹지?

[읽고 쓰는 일요일]4_공지영 레시피(공지영)




뭐 먹을까?. 지상 최대의 난제이자 언제나 행복해지는 고민이다. 이 시간을 살아내는 모든 이들에게는. 엊그제는 아내와 바삭하고 촉촉한 전기 구이 통닭을, 어제는 친구와 칼칼한 바지락탕을 먹었다. 일단 만나면 된다. 그러면 그 질문은 나만의 고민에서 우리의 행복이 된다. 그냥 만나면 된다. 오늘은 엄마, 아버지와 시래기 코다리를 먹을 계획이다.  


그런데 무엇을 먹는 건 어떤 기준으로 결정되는 걸까. 계절적인 특성, 개인적인 식성, 누구와 함께 결정해야 하는 필요성, 알레르기 반응 여부, 한정적인 예산, 아니면 이런 기준들이 몽땅 한방에 날아가고 괜찮을 만큼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그. 사. 람. 의 결심. 다 좋다.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먹던. 왜. 일단 먹는 거니까. 만난 거니까. 함께 할 수 있는 거니까.


여기서부터는 퀴즈다. 지금 제시하는 레시피를 보고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의 이름표를 한번 연결해 보시라. 그리고 그 이유를 한 줄 정도로 써 보시길. 단, 옆에 있는 책 목록을 펼쳐 보는 건 반칙이다. 나의 감정이 어떤 통로를 통해 거기에 가 닿는지 나 혼자 살펴보는 희열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 버릴 테니까.  


자, 그럼 이 책의 주인이, 자기 마음대로 제시한 음식 이름표는 총 다섯 가지다. 우울한 날을 위한, 엄마 없는 아이 같을 때, 자존감이 깎이는 날 먹는, 복잡하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위로해 준 고마원 친구들과 먹는. 이렇게. 이 이름표를 아래에서 제시하는 간단한 레시피와 연결해 보자. 마음 닿는 대로.


지금부터는 역시 작가가 제시한 레시피다. 긴 내용을 만드는 순서 위주로 단순하게 줄여 봤다. 


레시피1_시금치 샐러드

시금치 한 단 씻어 한입 먹기 좋은 크기로 손으로 뜯어 접시에 담기 – 올리브유 뿌리기 – 파르메산 치즈 가루 성질대로 뿌리기 / + 아몬드 슬라이스, 땅콩가루, 방울토마토, 그냥 토마트 + 아보카도, 오이 + 바삭한 바게트, 잘 구운 토스트 + 화이트 와인          


레시피2_어묵두부탕

멸치+다시마 우린 국물 또는 그냥 물에 – 손가락 굵기 무에 된장과 고추장을 2대 1 비율로 1 티스푼 정도, 어묵도 비슷하게, 두부도 비슷하게, 마늘 1 티스푼, 파 적당량 넣고 끓여 – 국간장(또는 소금, 천연양념)으로 간 맞추기          


레시피3_훈제연어

접시에 양파를 가늘게 채 쳐서 납작하게 깐 후 – 냉동실에서 꺼내 미지근한 물에 담가 녹인 연어를 펼쳐 놓음 – 레몬즙 듬뿍 뿌림 – 케이퍼 흩뿌리기 / + 양상추, 파프리카, 날치 알, 연어 알 / + 바싹 구운 토스트나 바게트, 달지 않은 비스킷 / + 잘게 다진 양파(또는 검은 올리브)를 넣어 버무린 마요네즈 소스 / + 화이트 와인, 탄산수


레시피4_애플파이

사과 1개 4 등분 후 5밀리 정도로 얇게 썰어 – 그라탱 그룻(없으면 오목한 접시)에 얇게 펴서 깐다 – 계핏가루(없으면 패스) - 깨끗한 비닐봉지에 밀가루 수북하게 두 숟가락, 버터 수북하게 두 숟가락, 설탕 수북하게 두 숟가락 – 봉지째 조몰락조몰락 – 사과 슬라이스 위에 솔솔 뿌리듯 펴서 올려 – 오븐 토스터 220도로 예열한 데다 그릇째 넣어 – 15분 후 완성 / + 커피, 차


레시피5_안심스테이크

3센티 이상 두툼한 안심을 먹기 좋게 썰어 준비(1시간 전에는 꺼내놓기. 냉동고에서는 3시간 이상전에) - 접시에 놓고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듬뿍 뿌려놓기 – 미리 후추⋅로즈메리⋅오레가노 등등 허브나 허브 말린 것 뿌려 놓기(소금은 꼭 구울 때 뿌리기) - 프라이팬을 뜨겁게 달군 후 중불로 줄이고 – 올리브유 두르고 – 고기 올리기(소금은 이때 뿌림) - 5~6분 후 뒤집기(미디엄 레어쯤 됨) - 빨간 고깃살이 희미하게 흔적(웰던쯤 됨. 더 익으면 질겨져 맛없음) / + 샐러드, 감자, 김치, 스테이크 소스 + 레드 와인, 맥주, 소주  







..............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언제나 쏜살같이 흘러간다. 하루하루는 참 더딘 데 지나고 보면, 이라는 말을 하는 이유이지 싶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결정하고 그 결정대로 실천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이 빠르게 사라진다. 곶감을 벌써 몇 개나 빼먹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떻게 좀 연결해 보셨는지. 이유를 한 줄로 정리해 보셨는지. 눈치 챙기셨겠지만, 연결 자체는 사실 의미가 없다. 레시피와 음식 이름표를 연결한 이유가 더 중요하다. 아니, 나만의 음식 이름표를 만들어 보는 거다. 나는 이 책을 두고두고 그렇게 읽어 본다. 그 순간에 나도 작가가 되어 보는 거니까. 그 순간에 오로지 내 감정을 읽어 내고 표현해 보는 거니까. 


엄마 없는 아이 같을 때 애플파이를 먹을 수도 있다. 문제는 되지 않는다. 내 어릴 적 먹은 애플파이는 항상 엄마표 애플파이였으니까. 복잡하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묵탕을 끓여 먹을 수도 있다. 불지 않게 탱탱하게 하는 것마저도 누군가에게는 결코 쉽지 않을 테니까. 자존감이 짓밟혔을 때 안심 스테이크를 우걱우걱 씹으면서 분노를 목구멍으로 삼켜버리고 싶은 날도 분명 있으니까.



                                                                                                          (다음 주 일요일에 이어짐)



-------------------------(한 줄 요약)

같은 음식도 그때그때 이유가 다르고 맛이 다르다.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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