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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23. 2023

늴리리 만보

[동네 여행자]8

그제부터 우리는 1일이다. 다시 못 올 이천 이십 삼 년 가을 1일. 오늘은 2일. 차 안에서만 보더라도 아침과 한낮의 온도차가 크다. 내 차가 알려주는 차이만 12도다. 맞다. 가을은 그렇게 온도 변화로 1일, 3일, 10일, 한 달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세상 만물 전체에 알려준다.


하늘반 구름반이다. 나빠진 눈에도 멀찍이 새파랗게 보인다. 입속이 자주 마른다. 입술이 바싹하게 당긴다. 씻어 낸 얼굴에 물기가 메마른다. 저녁에는 코 속이 선선하다. 재바른 나뭇잎들이 산책로로 이미 낙엽이 되어 수북하다.


뜨거운 여름은 또렷한 기억으로 남는다. 내 몸에서 빠져나간 땀, 눈물, 열정. 어제부터 시작된 올해 가을은 무엇을 남길까. 하지만 무엇을 추억하건, 잊건 그때의 나는 무조건 하루를 채워냈다. 살아냈다. 오늘이란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는 것처럼.


하루는 참 많은 것들로 채워진다. 쨍하게 차가운 현실과 잠시라도 보들거리는 이상이 공존한다. 무엇이 남고 모자란 지 항상 모르겠는 자신과 또렷한 평가의 대상으로 다가오는 타인이 공존한다. 숨어들고 싶은 눅눅한 어둠과 고마움과 감사함이 뒤섞여 행복을 선사하는 밝음이 공존한다.


눈물 대신 흘린 땀과 깊은 호흡이 공존한다. 아쉬움과 절묘함이 공존한다. 강점이 단점이 되고 약점이 쓸모 있어지는 순간이 공존한다. 서 있는 도전과 앉아 있는 안도감이 공존한다.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한 시간이 공존한다.


오늘도 공존의 틈을 이어 보려 두 발을 내딛는다. 그러는 동안 해, 별, 달, 구름이 바람 속에 숨어 이 나무, 저 풀, 발아래 이름 모를 야생화에 튕겨서 나의 살갗에 닿는다. 끈적한 모기 대신 내 마음을 살살살 간지럽힌다. 그렇게 이 하루도 나갔다 오느라 몇천 걸음, 선물 받은 베이지색 운동화 덕에 몇천 걸음 더.


눈시럽게 아까운 가을 저녁을 만끽하느라 다시 몇천 걸음 더. 그 걸음 걸음에 늴리리야, 늴리리야. 마음으로 노래를 채워 넣는다. 함께 하는 이에게, 널찍하게 맞아주는 이 길에게, 미움없이 항상 허락하는 자연에게 들려주기 위해.


내 삶의 수많은 오늘은 항상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채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를 사랑하고 나를 내가 더 사랑하는 방법이 늴리리 만보다. 어제 걸은 그 길보다 옆 길, 다른 길, 반대 길을 걸으면 더 깊게, 오감으로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난 늴리리 만보다.




----------( 한 줄 요약)

그제부터 매일 저녁이 추. 석이다. 짧은 추. 석, 만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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