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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22. 2023

우리 같이 1일 해요

[#알쓸#지리]6

2023년 9월 21일 수요일. 오늘부터 우리 1일 하자.라고 어제 우리는 그렇게 속삭였다. 가을한테. 퇴근하고 잠깐 졸다 내려간 산책로. 아내는 처음으로 얇은 긴 팔 옷을 입었다. 나도 후드를 입었다. 그런데도 저녁 공기가 전날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내는 양손을 바람막이 주머니에 집어 놓고 어깨를 목안으로 집어 넣으려 했다. 앞서 가는 타닥이도 인도옆 풀숲으로 냉큼 뛰어 들어가지 않고 경계에서 자주 멈칫한다.


맞다. 오늘부터 여름 사이사이에 숨어 있던 진짜 가을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올 가을은 우리에게 어제부터 1일이다. 풀숲에 나무뒤에 건물 사이에 아스팔트 위에 숨어 있는 남은 여름을 말끔히 씻어 내린 가을비 덕분이다.  또 그 덕에 하루 종일 하늘은 높게 넓게 구름이 맘껏 그림을 이리저리 그려내는 새파란 도화지가 되어 주었다. 이제 높아진 하늘을 보며 온몸이 마비될 것 같은 전율을 자주 느끼기만 하면 될 거다. 잠깐 멈춰 자주 올려다보기만 하면.


비, 눈, 우박 등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든 것들의 총량을 강수량이라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비양만을 강우량이라고 별도로 부른다. 강우의 원리 역시 수요-공급의 원칙을 따른다. 태양에 의해 지표 위에 존재하던 물기가 증발해야 한다. 수증기 공급이다. 그러면 상승하는 수증기는 어느 정도 고도에 다다르면 자그마한 얼음 알갱이로 변한다. 그 얼음 알갱이가 계속 뭉쳐지면 진해지고 커지고 굵어진다.


그렇게 얼어붙은 수증기들끼리 뭉쳐 느슨한 연대를 하는 상태가 구름이다. 그러니까 비 온 뒤 맑게 갠 날 새파란 도화지를 새하얗게, 이리저리 구름 그림을 마구마구 그려 되는 건 당연하다. 가끔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자욱한 안개 지옥이 되는 원리와 같다. 안개 지옥이 펼쳐지는 날은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 정도를 지나면서 쨍하게 해가 나는, 때로는 더운 날이 된다.  


구름이 된 수증기에 계속해서 수증기가 공급되면 당연히 구름이 무거워진다. 이런 상태를 포화, 과포화 상태라고도 부르는데 이 조건이 충족이 되면 다시 강수가 발생하게 된다. 그게 비가 되고 눈이 되는 건 떨어지는 고도의 온도가 결정하게 되는 거다. 어제 1일부터 앞으로 한두어 달간은 그렇게 새파란 도화지가 연신 뭉게구름이 넘쳐나는 아주 멋진 시간이 될 거다. 하늘은 높고 말도 나도 살찌는 시간 말이다.


우리나라 가을은 이동성 고기압이 지배한다. 쉿, 아빠 오늘 고기압이야. 하고 말하는 경우는 없지 싶다. 저기압일 때는 나를 둘러싼 공기층이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이리저리 산란하면서 변화무쌍해진다. 비가 왔다 바람이 불었다 갑자기 멈췄다. 그런 아빠옆에서 누구 건 불안하지 싶다. 그런데 고기압은 그렇지 않다. 시종일관 하강 기류를 발생시킨다. 구름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에어캡 역할을 하던 공기층이 대기 중의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를 씻어내면서 내려앉는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더 높은 고도까지 구름이 움직이고 빛이 구름에 부딪혀 반사되고 구름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모습까지 잘 보이기 때문에 높아 보이게 된다. 태양빛이 산란하는 높이가 제거된 대기층의 먼지층 덕분에 더 높은 곳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을 가을하기 전 우리가 올려다봤던 높이가 아파트 120층 정도 높이였다면 어제부터는 한 300층 정도까지 올려다 보이는 거다.


일하다 말고, 기다리다 말고, 걷다 말고 잠깐 멈추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탁 트인 하늘을 끝까지 올려다볼 수 있는 하늘의 영광이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미 그렇게 꼭 실천하자고, 이 시간을 아낌없이 쓰자고, 나누자고, 우리 매일 1일 하자고 약속한 사람들이 있다. 아니, 약속만 한 게 아니라 아예 모여서 팀까지 만들었다. 바로 구.름.감.상.협.회. Cloud Appreciation Society. 2005년에 만들어진 이 협회에 120여 나라 6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회원으로 있다.


분명 이 협회는 구사모일 거다.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 협회 정신이 딱 내 마음에 든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그런 날을 거부한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은 하늘이 아니라고. 하늘은 구름이 있어야 하고, 구름은 지구인에게 가장 역동적이면서 시적인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 적극적인 사람들, 구사모의 정신은 지구과학적으로도 맞다. 새파란 하늘이 계속 지속되면 강수가 발생하지 않는다. 땅은 갈라지고 생명체는 타 죽어 간다.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하고 생명체가 없는 사막, 극한 오지들의 하늘은 언제나 눈물이 날 정도로 새파랗다. 수요-공급이 원활하게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 대다수의 10대들은 뭐, 저런 별난 엑스. 이런 반응들이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서 이미 창밖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맑은 아이들이 있다. 그러면서 눈빛은 이미  협회에 가입 완료한 아이들. 그 아이들 눈빛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맞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사모처럼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를 표현하고 살지는 못한다. 구름에게마저도.


하지만 깊게 들숨 한 번 들이마시고 후하고 내뱉은 시간만큼만이라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나보다 한참 여유로워 보이는 구름에게 말을 걸어 본다. 그 구름을 눈에만 담기 아까워 연신 셔터를 눌러본다. 그리고 갤러리 속 수십 장의 구름 사진을 위로 삼아 다시 걷는다. 걷기 힘들지만 걸어야만 하는 나의 길을.  



---------(한 줄 요약)

구름은 (지구인을 버티게 만드는) 사랑이다. 자, 우리 같이 오늘부터 셀프 구사모 1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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