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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Oct 24. 2023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동네 여행자] 17

회장님도, 나도, 도시녀도, 아랫집 사장님도, 남매들도, 라이더도, 현역 군인들도, 러너도, 밭일하는 이모님도 항상 자기 몸처럼, 아니 자기 몸보다 먼저 챙겨 다니는 것.  한 시도 떼어 놓으면 불안해지는 것. 그 앞에서도 언제나 찾아 헤매는 것.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나의 오감이 가장 집중되는 곳. 이제는 없던 시절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 참 멋진 발명품. 보고, 듣고, 읽고. 나와는 다른 세상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소통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나와 스스로 대화를 하게 만들어 주는 것. 청바지에 검은 반폴라 니트로 각인된 첨단 세상. 


휴. 대. 폰이라고 편하게 부르는 셀룰러폰 celluar phone


그런데 이 분이, 아니 그다음분들이 한 가지 고민을 하지 않은 게 있다. 안 하고 있는 게 있다. 그건 바로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방식, 편의성에 대한 제안. 뭐, 한참을 이동하거나 공식적인 활동을 할 때는 문제가 거의 없다. 재킷 속에, 가방 속에, 핸드백 속에 넣으면 되니까. 이와 관련한 편의 사양이 반영된 디자인들이 있긴 하니까. 문제는 동네 여행자의 입장이다. 산책을 할 때, 운동을 할 때, 이 사무실에서 저 사무실로 잠깐 움직일 때. 휴대폰을 항상 손에 들고 다녀야 하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다. 밖에서 만나는 타인들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매우 전투적(!)으로 느껴진다. 하기야 운동, 독서, 공부, 업무 등 많은 앱들이 실제로 몸 어딘가에는 붙어 있어야 제 기능을 하기도 하니까. 


글을 쓰는 지금도 내 폰은 책상 위 왼쪽 위에 올려져 있다. 편리한 휴대성은 불편리한 상시 작동, 항시 대기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분명, 계륵이다. 앞으로는 더 그럴 거다. 아마 몇십 년이 지난 후에는 그러지 않을까. 어, 그때 사람들은 이걸 들고 다녔다네. 신기하지?  나도 많은 사람들처럼 바지를 입으면 휴대폰을 뒷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아주 오랫동안. 그런데 일 년여 전부터 허리통증으로 재활을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이 습관이 안 그래도 없는, 흐물거리는 엉덩이 근육을 빠지게 하는 아주 좋지 않은 습관 중 하나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걸을 때, 앉을 때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지켜내기 위해 그 반대쪽 몸에 힘을 더 줘서 움직이게 된다고. 습관은 무의식적이다. 의식적이면 습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일 년, 십 년 동안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거다. 몸이, 마음이 아프다고 반응할 때까지. 결국 현실적인 대안은 다시 손. 하지만 언제나 열일하는 내 손은 항상 바쁘다. 커피 텀블러도 들어야 하고, 책도 들어야 하고, 서류도 챙겨야 하고, 악수도 해야 하고, 글씨도 써야 하고, 하이파이브도 해야 하고, 바디랭귀지 용도로 사용하기도 해야 하고. 


지난주 어느 날. 퇴근 후 아내와 산책을 할 때도 의식적으로 휴대폰 먼저 챙겨 나갔다. 그렇게 얼마 정도 들고 걷다가 트레이닝 바지 앞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잠깐 걷다가 휴대폰을 꺼내 보니 화면이 잠겨 있었다. 처음에는 30초인가 했는데 다시 한번 보니 30분. 뭐, 가끔 패턴을 잃어버려서 그런 적은 있는데 한방에 30분은 처음. 그리고 며칠 후. 무의식적으로 집어 든 휴대폰을 들고 얼른 바지 앞주머니에 넣은 채 5층 사무실에서 2층 사무실가지 계단으로 잠깐 내려갔다. 사람이 없어 바로 다시 2층에서 5층 사무실까지 계단으로 바로 올라왔다. 


그랬더니 휴대폰이 1시간 59분 뒤에 열린단다. 아래 긴급전화 버튼만 살아 있고. 헉. 하고 있는 나를 옆에 아이들이 쳐다본다. 그리고 묻는다. 왜 그러세요? 얘들아, 이것 봐.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너흰? 그러자 서넛의 아이들이 찍어도 되냐고 물으면서 동시에 찍었다. 잠긴 내 폰 화면을. 하기야 아이들이 두 시간 가까이 패턴을 잊어버려서 화면이 잠길 정도로 폰을 안 사랑하진 않았을 테니까. 기껏해야 몇십 초의 대기도 안, 아니 못 기다릴 테니까. 그러다 갑자기 잠긴 화면에서 아내 사진이 떴다. 뭐야? 하는데 아내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여, 여보세요? 전화 수신은 되는 거였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한테 대뜸 그랬다. 통화가 되어서 다행이야, 하고. 


갑분 사랑 고백 한번 더 한 걸로. 퇴근 후에 다시 산책을 하면서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찍어 둔 화면을 보여줬더니 그런다. 대박이다. 아, 그런데 우리 남매들 어릴 때 했던 뭐, 그 프로그램 있잖아. 사용시간 설정해서 잠기게 하는 거. 그런 거 강제라도 휴대폰에 있었으면. 맞다. 정말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정말로. 내가 주도하는 생산적인 사고보다는 잘 만들어진 것들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시각과 운동의 황홀경에 빠져 허우적 되다 잠드는 시간이 때로는 많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내가 사는 동네는 커다란 셀(구획)이 이어진 구조다. 블록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동네라고도 표현하지만 골목과 도로로 이어져 있다. 나는 그 셀을 넘나들며 걷고 뛰고 달린다. 하지만 비슷한 요일, 비슷한 시간대에 움직이는 셀은 일정하다. 다른 동네, 나라로 이동하지 않는 이상. 몇 개의 셀 안에서 붕어빵도 사 먹고, 산책도 하고, 친구와 소주도 한 잔 한다. 다시, 내일도 힘차게를 다짐하면서 스스로를 부팅시킨다. 그럴 때마다 항상 휴대폰은 내 곁에 있다. 휴대폰이 원래 셀룰러폰인 이유다. 


갑자기 예전 광고가 떠오른다. 소중한 사람과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고 했던. 이제는 셀프로 그럴 때가 종종 더 필요해지지 싶다. 열혈 청춘, 혈기 왕성한 일팔 청춘 따님조차도 '기 빨린다'는 셀룰러폰. 세상을 그 바깥세상과 그 속 세상으로 나누는 것을 이제는 조금 쉬어야 하지 않을까. 참 편리한 셀룰러폰. 참 나쁜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다음번에도 언제 한번 일부러 며칠 전 입었던 그 바지 앞주머니에 넣고 자체 실험(?)을 다시 한번 시도해 볼까 생각 중이다.  


참, 이번에 강제로 1시간 59분이 잠기면서 알게 되었다. 아는 분들도 있으실 테지만, 적어도 나도 우리 사무실 동료 넷도 모두 처음 알게 된 사실이란다. 화면이 잠기면 화면 하단에 긴급전화 버튼만 활성화된다. 화면이 잠긴 상황에서도 이 버튼만 누르면 경찰서, 소방서에는 발신이 된다, 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긴급 전화에 미리 가족, 지인을 등록해 놓을 수 있다. 잠기기 전에 미리. 잠긴 상태에서는 등록된 번호만 뜬다. 때로는 경찰, 소방관보다 아내가, 동생이 더 빠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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