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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Dec 15. 2023

내 마음의 놀이터

[오늘도 나이쓰] 5

내 마음속에는 우리 동네 지도가 여러 장 있습니다. 내가 직접 그려 넣은 지도입니다. 몸으로 몇 번을 실제 움직이면서 그린 지도입니다. 혼자 산책할 때 지도, 아내와 같이 걸을 때 지도. 짧게 달릴 때 지도. 좀 더 달릴 때 지도. 제대로 달릴 때 지도. 이 동네에서만 세 번을 이사하면서 25년이란 시간 동안 만들어 넣은 지도입니다. 이 지도덕에 운동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아내는 조금씩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지도 구석구석에 아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발견해서 봄-여름-가을-겨울로 이어지게 넣어두었거든요. 봄꽃들이 늘어지게 피는 코스, 한여름 뜨거움을 가려주며 산들바람이 부는 숲 속 벤치, 폭신 거리는 가을 낙엽을 밟으면서 눈으로 힐링할 수 있는 코스, 가장 먼저 밟아 보는 뽀드득 거리는 새하얀 눈길.  


이 중에서 아내와 같이 산책을 할 때 지도는 총 세 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 동을 나오자마자 왼쪽으로 돕니다. 그리고 갈림길에서 흰색으로 그려진 넓은 도로 횡단보도를 건넙니다. 이 횡단보도를 건너면 느릿한 찻집 근처까지 가겠다는 겁니다. 쌍화탕, 대추탕이 가래떡, 누룽지와 함께 나오는 목공예 사장님 댁입니다. 전통찻집입니다. 그런데 목공 작품들이 주르륵 매달려 있는 공방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우리 부부만 있는 게 아니라 2030 커플들도 자주 눈에 띕니다. 차를 마시지 않고 그 근처까지만 갔다 오면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공간입니다. 


그렇게 건너지 않고 아파트 정문 앞에 노란색으로 그려진 좁은 횡단보도를 건너면 흩어진 생각을 좀 더 오래오래 같이 정리해 보겠다는 겁니다. 인상 좋은 경비반장님과 인사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타닥이가 냄새 맡는 걸 좋아라 하는 초록 마트옆을 지나 다리 하나를 건넙니다. 그리고 올려다 보이는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면서 오른쪽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길게 뻗은 도로 옆으로 널찍한 인도가 한참을 가지런히 이어져 있습니다. 끝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다리 하나를 건너기 전까지 짧은 횡단보도 하나뿐입니다. 이 길은 가로수와 오른쪽 제방 사이로 빠져들듯 걸을 수 있어 사계절을 가득히 느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아내도 참 좋아하는 길입니다. 


이 길은 퇴근이 늦은 날이나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날은 거기에 맞춰 짧게 걸을 수도 있습니다. 중간에 하나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으면 됩니다. 오른쪽으로 돌아 우리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치킨집 앞으로 지나면 됩니다. 여사장님이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서서 왔다 갔다 하십니다. 모퉁이에 있는 형제 정육점 앞 더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면 됩니다. 진짜 두 형제가 운영하는, 우리 동네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가게입니다. 그렇게 건너 공원안쪽으로 틀어 걸으면 내 추억 속 유적지(?)를 밟고 지나갑니다. 여섯 살 아드님의 목소리가 여전히 쟁쟁하게 들립니다. 아드님의 절친이었던 새하얀 예람이의 잘 알아듣지 못하는 고함소리도 여전합니다. 예람이는 노르웨이에서 왔었습니다. 엄마를 따라온 아빠를 따라.     


바로 통. 나. 무. 놀. 이. 터. 꽤나 굵은 통나무를 그대로 이어서 만든 온통 검은색의 육중한 설치물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다다다 뛴 뒤 두 손으로 잡고 올라갈 수 있는 밧줄이 두 개가 늘어져 있었습니다. 어린 날 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줄다리기할 때 잡아봤던 그 밧줄입니다. 아드님과 예람이 가 누가 먼저 뛰어 올라가나 내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통나무놀이터를 만든 이는 분명, 군대에 있을 때 영감을 얻었지 하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훈련 코스 중 하나였던 통나무 건너기 구조물과 흡사하게 생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뛰어 올라가 둘은 마치 하늘을 걷는 듯했습니다. 양팔을 벌리고 둘이서 나란히. 


그 모습을 옆 벤치 - 그 벤치도 지금은 사라지고 봄을 기다린다는 그늘막으로 바뀌었습니다 - 에서 나란히 보고 있던 예람이 엄마와 아내. 예람이 만큼 자그마했던 예람이 엄마보다 아내가 먼저 위험하다고 항상 걱정하더면서 엉덩이를 들썩이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물론 아이들 옆에는 제가 딱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검은색 고목나무에 매달려 있는 장수풍뎅이처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예람이 가족은 사라졌습니다. 마침, 어제 퇴근을 하다 아내가 자기야, 어 여기 마트 봐봐. 오, 이 큰 마트가 어떻게 일주일 만에 텅 비어버리지. 참. 하는 것처럼. 


파란 눈이 움푹하게 들어간 예람이는 삼 남매였습니다. 예람이는 코리언이었지만, 여동생 둘은 국적이 노르웨이 었습니다. 특히, 늘 유모차에 앉아 있던 막내는 정말 귀여웠습니다.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만났다고 인사하는 표정과 손짓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3년여의 시간이 지나면서 노르웨이 국적의 아빠가 한국 적응에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IT 관련 업계의 전문가였는데 말입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예람이 엄마도 삼 남매를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는 게 안타까웠을 겁니다. 아빠와의 시간이 거의 없는, 저녁이 없는 삶에서 말이지요.


그게 벌써 십오 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사라진 예람이(네) 때문에 아드님이 한참을 통나무 놀이터에서 허전해하던 눈동자가 눈에 선합니다. 그 눈빛은 지금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예람이 도 스물 하나가 되었을 텐데. 아빠의 나라에서 더 잘 살고 있겠지 싶어 집니다. 짙은 하늘에 총총이 박혀 있는 별들을 가끔 올려다보면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여덟 개의 통나무 기둥을 받치던 주춧돌 위를 걸을 때마다 예람이(네)가 떠오릅니다. 예람이(네)가 떠오를 때마다 아드님이 보입니다. 그 아드님이 다음 주에 한국에 옵니다. 열흘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러면 통나무놀이터로 같이 한번 더 걸어가 봐야겠습니다. 아내는 그 열흘의 일정을 촘촘하게 마음속에 그리느라 아주 분주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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