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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Dec 22. 2023

고마워요 타인님

[올해도 나이쓰]6

[ 우리는 그저 살기 위해 살지는 않습니다. 왜 사는지 묻고 따지고 싶어 산책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으려 합니다 . 이래 저래도 이유는 분명하지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사는 건가에 대한 물음에 자기 자신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나를 제외한 모든 인간은) 타인의 안녕도 챙기면서라고 대답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느덧 열흘뒤면 2023년이 각자의 갤러리 속 한 장면, 한 장면으로 잠깁니다. 한 해 동안 내가 '오늘도 안녕'하게 살아내는데 도움을 준 모든 것(표상뿐만 아니라 물자체까지도)에 대한 인사를 해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늦더라도 열흘 안에는 그 고마움을 고백해야겠습니다.

_________2023년에게 보내는 공개고백_2 ]



00 정형외과 원장님 그리고 김** 물리치료사님 올해 너무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서 있는 걸 알았고, 덕분에 원래 즐기던 달리는 게 저에게 참 좋은 운동이라는 걸 잘 알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제대로 달리지는 못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평생 달릴 수 있는 계기가 시작될 거라는 내 안의 신념이 스물 거리고 있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올해처럼 많이 안 뵙게 되길 응원해 주신 것 또한 고맙습니다. 



2024년이면 벌써 10년이 넘어가는 거 맞죠? 이 단지로 이사 온 후 어느 눈 내리던 일요일 아침, 우리 동 앞에서 눈을 쓸다 처음 만나 인사 나눴던 때가. 그때는 반장님은 우리 동 담당 경비원이셨죠. 저도 그때는 모든 게 지금보다 덜 채워진 주민이었겠죠. 올해도 지난 시간처럼 언제나 '어디 가셔?' 하시면서 일하시다, 걸어가시다 환한 표정으로 반갑게 언제나 인사를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올해도 자리를 잘 지켜내 주셔서 더욱 고맙습니다. 



뜨거운 여름날이었죠. 타닥이와 함께 산책하던 어느 날 아침. 짧은 골목에 잠깐 멈춰 섰을 때 느릿하게, 조용히 다가와 한참을 기다려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그 이후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 사장님은 언제나 운전석에서 저와 타닥이를 내려다보시면서 부드러운 손동작으로 '먼저 지나가요, 안전하게'해주시는 표정이 왠지 힘을 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언제나 정확한 시각에 정확한 위치에서. 내년에도 자주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제법 일찍 일어나는데요, 기사님은 너무 일찍 오시는 거 아닌가요. 비가 와도, 눈이 날려도, 훅하는 뜨거움과 한파가 절정이어도 항상 그 시각에 문 앞에 가져다주시는 새벽 찬거리를 덕분에 올해도 든든한 아침을 꼬박 챙겨 먹을 수 있었습니다. 넉넉한 점심 도시락을 손수 챙겨 하루도 빠짐없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사님과 저는 내년에도 그렇게 새벽으로 이어져 있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 건강하세요.  



'선생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고. 맙. 습. 니. 다.'. 아침마다 듣기만 해도 뱃속이 단단해지는 목소리. 월, 화, 수, 목, 금. 일주일 다섯 번의 이른 아침을 언제나 저보다 십 분 정도 일찍 시작하시면서도 항상 그렇게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눠 주신 지도 한 해가 다 지나갑니다, 급식 식자재 납품이 그렇게 꾸준하게 한 곳에 이어지는 게 쉽지 않다는데, 사장님은 참 대단하십니다. 어느 날부터는 출근해서 주차장에서 내리면서 언덕 위를 먼저 올려다보게 되더군요. 사장님, 오셨나 하고. 아침 시작을 참 기분 좋게 만들어 주시는 게 2024년에도 이어가 주실 거죠?



여사님, 내년에도 더 많은 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출근을 언제 하시는 건가요? 7시 조금 넘게 1층에서 올라가면 3층 복도에서 불빛이 저를 먼저 반겨 달려 내려오네요. 여사님이 청소 도구 세척하는 경쾌한 소리가 달려와 인사를 해주네요. 하루도 빠짐없이, 아주 정확하게. 정확하게 눈을 쳐다보시면서 천천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인사말 속에 위로와 고마움이 가득하다는 걸 매일 아침 느끼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신 게 벌써 3년이 넘어갑니다. 여사님,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여리야, 벼리야.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네. 올해 정말 고생 많이 했는데, 내년에는 제대로 한번 더 도전하겠다는 결정. 쉽지는 않았겠지만 샘이 내년에도 하루하루 계속 응원하고 있을 테니, 정말 잘해봐. 1학기 내내 삐쭘하던 너희가 지금은 너무 살갑고, 눈 맞추면서 설명 잘하고,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해 줘서 많이 흐뭇하고 행복하다는 거 말한 적 있었나? 내년에도 다시 꼭 보자. 



원장님, 올해도 잘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대장검사를 안 한다고 윽박지르실 때는 사라졌다 한참만에 나타난 형 같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동갑이라고 했죠. 비타민 D를 권유한 덕분에, 짧은 상담 시간이지만 몸보다 안부를 종종 물어봐 주신 덕분에 올 한 해는 몸은 물론 제 마음이 더 건강해진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전공을 내과에서 상담으로 바꿔보시는 건 어떨까요? 순간순간 약 주고 마음 주는 상담사 갔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환자들이 너무 많이 올해는 원장님도 꽤나 피곤해 보이셨네요. 틈만 나면 자주 뵙겠습니다.  내년에는 우리 같이 더 건강해지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2023년도 저의 시간을 옆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익숙한 타인씨들 덕분에 울적함이 옅어지고, 걱정이 작아지고, 억지 미소도 나에게 효과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는 제임스의 말을 조금은 더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 더욱, 습관적으로 인상을 써서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그의 경고도 온몸으로 새기는 시간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쓰는 대로 사는 시간보다 사는 대로 쓰는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더 짙어지는 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2024년에도 각자의 플레이리스트에 서로가 포함되어 멋진 합주가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내년에도 정말 모두 잘 '오늘도 우리 같이 안녕'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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