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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Dec 08. 2023

어서 와, 면접은 처음이지?

[오늘도 나이쓰 ] 4 _여리, 벼리, 신통이의 생애 첫 면접을...

                       향이 참 좋아



엊그제 사무실에 원두를 새로 구입했습니다. 다행히(?) 사무실에 있는 이들 모두가 커피를 즐깁니다. 취향도 비슷합니다. 풍미보다는 산미, 양보다는 질을 더 선호하는. 그중에서 2잔을 마시면 제가 하루 커피양이 가장 많네요. 가장 먼저 출근을 해서 사무실 가득 커피 향을 채워놓는 역할이 은근히 참 기분 좋습니다. (어제 이미 담임들에게 배부된 올해 수능 성적표를) 오늘 개별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수능 성적 발표일입니다. 오늘을 기다리면서 지난주, 이번 주 아이들은 면접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이름 있는, 서울에 있는) 주요 대학의 면접 전형은 1단계 통과자를 대상으로 하는 단계별 전형입니다.


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 성적을 중심으로 보통 3배수~5배수의 인원이 1단계 통과대상입니다. 최종 선발 인원이 10명이라면, 서류(에 기록된 성적)상 30등~50등에 속한 아이들이 2단계 면접 대상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1단계 통과한 아이들을 랜덤으로 팀을 꾸려 담당 교사를 배정하는 식입니다. 올해 이렇게 꾸려진 팀이 열댓 개 팀인가 봅니다. 이런 스케줄이 벌써 스무 해 가까이 반복되었나 봅니다. 그렇게 1단계 발표전 처음 저에게 배정된 아이들은 총 일곱 명. 그중에서 1단계에 탈락한 아이들이 네 명. 이제 세 명이 남았습니다.

                         

이 아이들과 함께 지난주부터 매일 면접 준비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어느 대학의 면접을 보면 올해 대입 수시 일정이 끝납니다. 다음 주 중 발표만 남습니다. 그러면 올해 대입 수시 일정은 마무리됩니다. 동시에 오늘 받는 성적표를 가지고 최대 3개의 정시 지원을 위한 전략을 짜야하는 상담이 연말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면접. 마주 보고 앉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설명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세 명 아이들이 지금 준비하고 있는 면접은 대부분 생애 첫 면접입니다.


얼마나 떨릴까요. 다 큰 것 같아도, 본인은 다 컸다고 해도 말을 주고받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지요. 그냥 생각으로만 면접을 준비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잘 되겠지 하는 넉넉한 스타일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괜찮지만 짧은 시간 자기를 알려야 하는 면접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반면, 잘하는데 자신이 자기를 못 믿는 아이도 있습니다. 불안증상이 심하고, 하루하루 갈수록 더 나빠지는 아이도 있어, 만나내는 게 쉽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급기야 어제는 예상 질문 답변 도중에 코피도, 울음도 터져 버린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냥 보는 것만 해도 안타까워요.


                       

         아, 하, 제가 왜 이것밖에 안되는지....모르겠어요, 컥, 허, 흑


그런데 대입용(?)에만 국한해서 말하려는 면접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아주 명확합니다.

면접관들은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듣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 내가 어떤 아이인지를 말로 잘 설명하면 되는 겁니다. 이 명확한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냥 (나 학교생활 정말 열심히 했는데, 잘했는데 하는) 마음으로만 달려드는 아이들이 꽤나 많습니다. 그냥 긍정적인 방향으로, 옳은 이야기만 하면 되겠지 하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답게 순수합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결과가 좋지 않은 게 일반적입니다.


면접은 크게 제시문 면접과 서류기반 면접으로 나뉩니다. 전자는 말 그대로 짧은 글이 제시됩니다. 그 글을 읽고 그와 관련된 작은 질문에 대한 자기 생각을 구술하는 겁니다. 이 면접은 주로 자연과학 계열(의치약한수, 공학계열)에서 진행됩니다. 이게 뭐게? 하면 이건 뭐다!라고 답변하는 식입니다. 개념에 대한 정의, 그리고 그 개념을 알게 된 과정에 대한 추가 설명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알고, 모르고 가 명확한, 심리적으로는 매우 안정적인 면접입니다. 끝나고도 내가 잘 봤다, 못 봤다를 (아이 스스로도) 판단할 수 있는 유형입니다.


후자의 서류기반 면접은 '생기부'에 기록된 내용을 근거로 한 열린 질문이 대부분입니다. 기록된 내용이 사실인지 검증하는 면접이지요. 그리고 기록과 기록 사이에 숨어 있는, 그 아이만의 학교 생활의 강점과 단점을 극복한 과정을 듣고 싶어 하는 면접입니다. 그래서 제시문 면접에 비해서는 스스로가 답변을 잘한 건지, 못한 건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면접입니다. 두 면접 유형은 우리 학교의 경우 약 4대 6 정도의 비율로 팀이 꾸려져 있습니다. 제가 맡은 팀은 사회교육계열 학과를 지원한 아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먼저, 첫 만남에서 활동지 하나를 나눠 줍니다. A4 용지 한 면에 있는, 제가 만든 학교활동 정리 양식입니다. 여기에 자신의 생기부를 일주일 동안 '꼼꼼하게' 읽고 양식에 맞춰 '스스로가' 기록하고 싶은 내용을 기록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작성한 후 '언제까지' 제 메일로 제출해 달라고 합니다. 그 메일이 도착해야 다음 스케줄을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게 팀이 꾸려지고 첫날, 한 시간가량의 첫 만남입니다. 이 시간에는 다 잘 오고, 또렷한 눈동자로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아이들이 지금껏 살아 본 방식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해마다 제출 기한을 지키는 아이들의 비율은 절반이 조금 안됩니다. 그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꼼꼼하게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3이 되기 전까지, 아니 많은 아이들이 고3이 되어서도 자신의 학교 생활을 교사들이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날밤을 새면서 기록한 내용들을 읽어보지 않습니다. 대국민서비스로 읽힐 수 있는데 말입니다. 주로 1-2월 겨울방학 사이에는 열람이 원활한 데 말입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학교 담당 교사에게 신청을 하면 방학 전에는 출력이 가능한 데 말입니다.  


거의 처음 보는 '자신'을 접하게 되는 겁니다. 뭐,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면 그럴 수 있지요. 그런데 제출한 아이들도 손이 가야 할 곳이 아주 많습니다. 그렇게 손을 봐주고, 피드백을 왔다 갔다 하는, 첨삭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면접 준비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첨삭받은 거 바로 오늘 중으로 업데이트해서 내일 등교 전까지는 다시 보내야 하루라도 놓치지 않을 테니까요. 그다음은 발성법, 워킹, 복장 등 면접 태도에 대한 연습도 몸에 익혀야 하니까요.



         나에게 의미 있었던 그 장면


(대입용) 면접관들이 궁금해하는 건 딱 한 가지입니다. 서류에 기록된 내용이 맞는지, 맞다면 어떤 의미가 너에게 있었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첨삭 피드백 속도를 잘 따라오는 아이들에게는 몇 가지 중요한 팁을 알려줄 수 있게 됩니다. 이럴 때는 옆에서 도와주는 저도 아주 신이 납니다. 올해도 그런 아이들이 우리 팀에 셋이나 있어서, 어제도 일과 외에 3시간 가까이를 지도를 했나 봅니다.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참 이럴 때 아이들이어서 순수하다, 참 좋다 느끼게 됩니다. 고스란히 쪼옥쪼옥 빨아들이는 모습이 보이거든요.


서류기반 면접은 기본 질문과 심화 질문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기본 질문은 자기소개, 지원 동기, 학업 계획 등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지원학과와 관련 없이 받을 수 있는 질문입니다. 반면, 심화 질문은 기본 질문과 연계된 꼬리 질문과 지원 전공과 관련한 간단한 지식을 묻는 추가 질문입니다. 말이 좀 통하는(?) 아이에게 면접관 입장에서는 꼭 되물어 보고 싶게 만드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까지 받았다면, 일단은 럭키한 상황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합니다.


일단 자기의 장면을 떠올리라고 합니다. 생기부에 기록된 내용을 읽다 아, 이때 이런 걸 했었지 하는, 자기만 아는 그런 장면들을 뽑아내자고. 면접관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게 바로 이겁니다. 아이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의미 있었던 그 장면 묘사를 듣고 싶은 겁니다. 그렇게 듣다가, 아 이 학생이 저래서 이렇게 하려고 하는구나, 가 보이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게 되는 겁니다. 그런 장면을 보통 3개에서 5개 정도를 준비하자고 합니다. 면접 형태에 관계없이 아이 한 명당 주어지는 일반 서류 면접은 약 7-8분 이니까요. 두세 개의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첨삭 피드백 속도를 잘 따라오는 아이들도 왕왕 실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그 장면 묘사를 마치 대사처럼 문장으로 만듭니다. 시나리오 작가가 된 듯이.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수십 장의 시나리오에 촘촘히 박혀 있는, 자연스럽지도 못한 그 문장을 마구마구 외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모의면접 리허설을 해보면 다른 팀의 아이들 경우에는 어둠 속에 자동차 불빛을 동공에 가득 받은 길고양이 같이 멈춰버립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 버리는 거지요. 호흡 연습을 통해 그나마 누그러뜨린 홍조증이 심해지는 건 당연합니다.

                   

                         나만의 향


이런 블랙아웃을 방지하는 건 의외로 쉽습니다. 어떤 질문이 나올 때 어떤 대답을 할까를 준비하지 않으면 됩니다. 거꾸로 어떤 질문이 나오든지, 그 7-8분 안에 내가 대답하고 싶은 것을 대답할 준비를 하면 됩니다. 개념을 확인하는 면접이 아니니까요, 생각을 물어보는 열린 질문의 향연이니까요. 그렇게 하는 게 안전하고, 성공률이 높습니다. 너에게 의미 있었던 그 장면, 그 장면이 뭐였니? 그 장면을 통해 어떤 아이가 되었니? 그래서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서 우리를 찾아온 거니? 이게 이런저런 모든 질문의 핵심이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향을 피우는 겁니다.


(생기부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 중) 자신에게 의미 있었던 장면을 묘사할 때 꼭 표현하고 싶은 키워드를 뽑아냅니다. 문장이 아니라 단어입니다. 그래야 잊지 않습니다. 나는 그 장면에서는 이 키워드, 이 단어 세 개는 반드시 말하고 싶다, 는 걸 정해 놓는 겁니다. 그러면 그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으로 구술하는 건 면접관 앞에서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그 키워드에 같은 책이지만 자신에게만 전달되었던 자기만의 메시지, 다 지나쳐가는 박물관 광고 전단지 앞에서 느꼈던 전율, 자신이 고민했던 흔적과 관련한 게 포함되면 되는 겁니다. 그게 자신만의 명장면을 채우는 키워드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3개-5개 장면을 키워드로 정리합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다시 자기만의 랭킹을 정해 놓습니다. 장면 오브 장면이지요. 다른 장면보다 이 장면은 반드시 말로 묘사하고 싶다, 는 순서를 마음속에 반드시 정해 놓습니다. 그러면 면접관의 돌발 질문에서도 당당하게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나올 수 있습니다. 지난주부터 벼리와 여리 그리고 유일한 남학생 신통에게 이 연습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이 혼도 나고 잔소리도 잘 참아내 준 셋의 마지막 연습이 오늘입니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최종 리허설을 하면 추석 이후 진행된 긴 과정을 끝이 나는 겁니다.


특히, 벼리와 여리는 저의 첨삭 피드백 속도를 잘 맞춰왔습니다. 약 3중 동안 면접준비용 활동지 업데이트를 11번 이상 해왔습니다. 거의 첨삭받은날 매일 업데이트를 해서 저에게 메일로 보내는 과정을 반복했던 겁니다. 이러다 보니 광고홍보학과를 지원한 벼리는 거의 아나운서가 다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 주 금요일 최종 발표가 벼리, 여리, 신통이의 끝없이 푸르고 진하게 향유하게 될 나이쓰 한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 최초의 닻을 올리고 벼리, 여리, 신통이만의 향을 찾을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벼리, 여리, 신통이 너무 고생 많았습니다. 여리는 이제 그만 울어도 될 것 같습니다. 나의 기도와 응원이 모여 생애 처음으로 정해진 기간, 마감 시한에 초집중했을 너희들이 앞으로 수없이 만나게 될 더 중요하고, 위협적이고, 의미있을 면접 - 사람(회사)을 사귈 때, 사람(회사)과 헤어지는 모든 순간 수간을 잘 만나고, 잘 떠나보내는 - 에서 아주 나이쓰 한 추억으로, 요긴한 팁으로 자리 잡기를 해와 별, 바람과 공기가 도와줄꺼라 확신하니까요. 우리 모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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